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달 Apr 29. 2022

기역부터 히읗까지: ㄱ

가방

  가방은 누군가의 삶에서 ‘시간’이라는 요소를 가장 충실하게 함의하고 있는 물건이다. 한 문장에 가둬보자니 이런 표현이 되고, 곱씹어 보아도 과연 그렇다.


당신이 평생 써온 가방이 몇 개인지 나는 대강 알 것만 같다. 부모님이 써준 이름이 또박또박 적힌, 알록달록한 원색의 유치원 가방이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좋아하는 캐릭터가 큼지막하게 인쇄된 것 하나, 캐릭터가 부끄러워질 나이쯤 하나 둘 더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처음으로 브랜드를 따져가며 새 신발과 함께 하나씩, 아마 그 사이에도 '멀쩡한 가방 두고 왜' 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겪으며 유행 따라 몇 개 더 장만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18살, 오랜만에(혹은 처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수하물로 부쳤을 당신의 첫 캐리어도 역시 가방이다. 스무 살이 넘어 샀을 책 한 권이 채 들어가지 않는 그 가방도, 가장 아끼던 후임에게 물려줬을 태극기가 달린 그 국방색 가방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가방은 시간ㅡ특히 그 가방과 만났을 '점'으로써의 시간ㅡ을 굉장히 착실하게 반영하는 물건이다. 당신이 평생껏 써온 가방을 나란히 놓아두기만 해도 마일스톤이 되고, 그걸 멀리서 보면 점과 점이 만나며 보다 입체적인 당신만의 연표가 된다.


앞으로도 우리가 갱신할 연표는 이만큼이나 남아있다. 이 나이에 결혼식에 가려면 하나쯤 사야 할 백, 취미나 비즈니스를 위해 장만할 골프 백이 그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도 있겠다. 혹은 당신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과 똑 닮은 어린 것의 머릿돌을 골라 주는 일이 다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2021년에 멈춘 내 연표는 언제 어떤 기념비로 갱신될지, 프라이탁 사이트나 괜스레 쑤셔보는 중.


제발 다음 성과급까지만 팔리지 말고 버텨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