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대학교에서

<자유를 향한, 마음지도>21

by 이기담

이야기


“저기 저 건물 보이지? 저 언덕 위에 높이 솟은 건물이 네가 다닐 대학교야.”


언니와 함께 다닐 대학을 처음 와 본 날, 째째는 멍했다. 멍한 마음에 얹히는 설렘, 두려움. 긴장하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풍경과 상황들. 세상 전체를 알고 싶다는 열망은 변함없는데, 알지 못하는 거대한 세상을 눈앞에 두고 선 기분이었다.


학교는 언덕에 있었다. 교문을 지나 가파르게 난 계단이 있고, 계단 옆에는 잔디밭이 있는 구조.


(그 잔디밭은 째째가 2학년일 때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 곳이 된다. 마산 한일여실고에서 함께 대학을 다닌 같은 과 친구와 함께 빈속에 낮술을 마시고서. 이때 째째는 그 사건 이후 째째의 음주 기호에 큰 스크래치를 낼 줄 알지 못했다.)


째째가 언니와 함께 사는 자취방은 보문동이었다. 째째는 버스를 타고 숭의문을 지나고, 종각도 지나고, 광화문을 거쳐 서대문에 내려 학교에 올랐다.


째째의 같은 학번 국문학과 동기들의 나이는 다양했다. 졸업을 하고 바로 학교에 들어온 동기부터 직장을 다니다 입학한 사람들에까지. 대부분 혼자 힘으로 돈을 벌어 대학을 다녀야 하는 사람들. 그래서 야간대학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 간 나이 차이는 적게는 한 살, 많게는 10여 년까지 나기도 했다.


호칭은 자연스레 나이를 두고 이루어졌다. 대체로 제 나이에 들어온 사람들은 나이 많은 같은 성의 동기를 ‘언니’ ‘형’으로 불렀다. 그런데 색다른 건 나이 많은 남자들에 대한 여자 재학생들의 호칭.


“형!”

“남수 형!”

“정남이 형!”
“효민이 형!”


숫기 없이 촌스러웠던 째째는 왜 그러는지 묻지 못했지만 곧 이유를 짐작했다.


‘페미니즘.’


해방된 새로운 세계가 대학에 있었다. 어릴 때부터 ‘당한’ 남녀차별에 멋진 오버헤드 킥 날리는 실천이 대학에 있었다.


일곱 살에 초등학교를 들어간 째째에게 많은 남자 대학생은 ‘형’이었다. 째째는 원 없이 그들 이름 뒤에 ‘형’을 붙여 불렀다.


“정수형!”

“남일이 형!”

“형!”

“형!!”

“승태 혀어엉!!!”


통쾌한 부름이었다.






덧붙이는 생각


대학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을 안겼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교수들, 새로운 이념들. 무엇보다 대학은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환경이었다.

2학년까지 대체로 대학만 다녔다. 돌이켜보니 달달한 시간이었다. 물론 그때는 새롭게 펼쳐진 세상에 꿈을 투영하느라, 그곳까지 다다를 지도를 찾아 헤매느라, 내내 암중모색에 다른 고통을 겪은 시간이었지만.


언니는 마산 한 일여 실고를 다니며 저축한 나의 돈으로 등록금을 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의 자유 시간을 내게 주어졌다. 일하지 않고 대학을 다닐 자유의 시간.


다시 그 시절 어머니께 불효한 일이 생각난다. 왜 당당히 독립된 삶을 살지 않으셨냐고, 되물었던 불효.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때의 일을 사과하지도 못했는데.


엄마는 남녀를 차별하는 분이 아니었다. ‘여자가’라는 말을 붙여 나의 미래를 제한하지 않으셨다. 대신 엄마는 당당한 사람이 돼라,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돼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엄마는 당신이 살았던 시대의 아들 중심 가치마저 거부하진 못하셨다. 이를테면 학교를 보내는 것도 아들 먼저, 귀한 먹을거리도 아들 먼저.


남녀가 평등한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대학 선배들은 멋있었다. 군부독재와 싸우던 용기는 또 어떻고. 동기와 선배들의 페미니즘의 실천을 되돌아보니 핵심은 ‘남자처럼 행동하기’였던 듯하다. 남자보다 술 잘 마시기, 담배 잘 피우기.


그 시절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채 건들거리며 걸어 다녔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검은색 카고 바지와 윗도리를 입고 다리를 꼰 채 줄담배를 피우던 것도 기억난다. 겉만 닮으려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이었다.


평등은 중심 사색으로 자리 잡았다. 평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모든 존재의 진리. 하지만 눈앞에는 거대한 불평등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조그마한 부엌에 방 한 칸짜리 자취를 하는 보문동 한옥의 집주인 여자는 거구를 흔들며 집주인으로서 우리를 냉대했다. 더구나 그 시기는 전두환이 광주의 5.18 민주혁명을 피로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군부독재 시기. 수많은 사람, 같은 민족을 죽이고도 권력을 휘두르는 불평등이 폭압으로 유지되던 시기.


그 현실에 나는 회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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