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6
“엄마, 어디 가?”
“절에.”
“절?”
그렇게 아홉 살 째째는 처음 절, '사찰'을 구경하게 됐다.
“절이 모야?”
“부처님을 모셔놓은 곳.”
“부처님이 모야?”
“부처님은……나쁜 사람은 벌주고, 좋은 사람에겐 복을 주는 분이지.”
엄마의 눈높이 설명.
집에서 절까지는 걸어서 4리 정도의 거리. 절은 산속에 파묻힌 듯 있었다.
엄마는 절 입구인 일주문에서부터 허리를 숙여 합장을 했다. 이어 들어선 곳은 무서운 형상을 사람들이 째째를 노려볼 듯 내려다보는 곳이었다.
이곳은 사천왕문.
이곳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이 안치된 전각인데, 각각 비파를 들고 있는 지국천왕,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광목천왕, 칼을 든 증장천왕, 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이 있었다.
째째는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무섭지 않아?”
엄마는 무서워하는 째째를 예상했던 것일까. 하지만 째째는 무섭지 않았다.
“아니.”
부리부리한 눈매는 세상 모든 걸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우락부락 커다란 몸집은 나쁘고 힘센 귀신들도 물리칠 것 같았다. 째째도 지켜줄 것 같았다.
“들어가자.”
엄마가 째째의 손을 잡고 절 안쪽으로 이끌었다.
사천왕문을 지나 절 마당에 들어서자 향기로운 냄새가 째째를 감쌌다.
“엄마, 무슨 냄새야?”
“향. 절에서 피우는 향냄새야.”
“좋아. 너무 좋아.”
째째는 눈을 감고 코와 입을 한껏 벌려 냄새를 온몸에 담았다. 향내음이 어린 째째의 온몸 구석구석을 적시듯 스며들었다. 째째가 눈을 떴다. 순간 마당 주위로 들어선 절들이 째째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째째는 팔을 벌려 안아주는 절의 건물들 마당 안에 선 채 형언키 힘든 아늑함을 느꼈다. 따스하고 아늑한 엄마 품과는 조금 다른, 품 큰 아늑함.
째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째째야.”
엄마가 잡은 째째의 손을 잡아끌었다.
“쪼끔만.”
눈을 감고 째째가 말했다.
그때의 기억이 째째의 마음 어디에 자리했던 것일까.
중2, 공부를 내려놓은 째째의 마음은 더욱 마음 안을 파고들었다. 수업 중에도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얼 해야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럴 때면 째째의 마음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떠올랐다. 땅속 깊이 뿌리는 내리고 서 있는 나무, 커다란 둥치의 나무, 수많은 가지와 나뭇잎들을 가진 나무.
'세상은 저 나무 같아.'
째째는 자신이 '나무'의 나뭇잎 하나라고 생각했다. 째째인 하나의 나뭇잎을 놓지 않고 뿌리까지 가 닿는다면 째째를 존재하게 한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뿌리에 가 닿으면 세상을 움직이는 진리가 감춰져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수많은 나뭇잎들은 이 세상에 수많은 존재들 같았다. 각각의 존재들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면 이 또한 뿌리에 가 닿을 것이고, 그러면 뿌리 속 핵심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탐구는 '자유롭고 싶다'는 열망과 '세상 전체를 알아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열망, 그리고 '세상을 알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맴돌았다.
그날은 5교시, 가정 시간이었다.
째째는 다시 깊은 생각 속에 빠져있었다.
열망과 절망 사이에서 의구심의 열망에 오롯이 마음을 두고 생각에 빠져있었다.
순간, 째째의 마음에 폭죽이 터졌다.
'출가를 하면 되겠어! 스님이 되어 수행하고 수행하면 알게 될 거야!'
동시에 째째의 마음에 대자유의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세상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마음, 죽음 앞에서도 거리낌 없을 자유로운 마음이 느껴졌다.
기쁨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째째는 힘껏 눈을 감았다.
어릴 적, 엄마는 나의 전부였다.
다섯 살? 혹은 여섯 살이었던 때, 친구들과 놀다 집에 오니 엄마가 없었다.
나는 곧장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집에 없었다. 나는 담벼락에 기대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엄마가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영영 사라져 버린 것처럼.
무엇 때문이었을까.
돌이켜보니, 엄마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엄마는 불행했다. 늘 우울했고, 생각이 많았다.
가정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와의 불화. 불길한 예지몽을 꾸고도 거부할 수 없었던 결혼. 예지몽처럼 펼쳐진 결혼 이후의 환경.
아버지는 살림을 없앴고, 첩을 보았고, 엄마를 냉대했다.
“네 큰 언니를 낳고 친정에 간 적이 있다. 보따리를 싸서, 네 아버지와 안 살려고 갔지.”
엄마의 그 마음을 나는 느꼈던 것일까. 그래서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토록 두려움에 떨며 울었던 것일까.
이후, 무덤을 보면 늘 아프고 깡마른 엄마의 죽음을 떠올리며 두려웠고, 엄마의 눈물만 보아도 무서웠다.
그러니까 어린 나는 엄마의 고통보다 '나의' 고통이 두려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