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8
중3이 된 째째에게 고등학교는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상관없었다.
왜? 째째에게는 꿈이 있으니까. 하고 싶은 길이 있으니까.
문제는 결단력이었다. 정보의 부재였다.
째째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책을 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째째의 중3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하나둘씩 중학교 이후의 삶들이 정해졌다.
남자아이들 대다수는 고등학교에 진학이 결정됐고, 소수의 여자아이들 또한 고등학교 진학이 정해졌다.
많은 여자아이들의 삶은 미정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알고 있었다. 집에서 농사를 짓거나 도시의 공장으로 나가 돈을 벌 거라는 걸.
“마산 갈래?”
어느 날, 학교에 돌아온 째째에게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표정은 조금 상기돼 있었다.
“마산?”
“그래. 마산에 한일합섬이라는 곳이 있는데, 옷을 만드는 공장이라는구나. 그곳에서 일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구나.”
엄마는 벌써 몇 번 말했었다.
“고등학교에 가야 하는데. 네가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째째는 엄마의 말에서 한탄과 미안함을 느꼈지만 뭐, 상관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이런 소식을 알아낸 것이다.
“갈래?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학교를 갈 수 있으니까.”
째째는 잠시 생각했다.
'스님이 되고자 하는 꿈을 버린 건 아니지만 지금 출가할 것도 아니잖아.'
더구나 공부는 째째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다. 비록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경쟁하는 마음으로 매달리진 않은 지 오래되긴 했지만.
째째는 대답했다.
“알았어. 엄마. 그렇게 할게.”
그렇게 째째는 마산에 있는 한일여실고 입학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입학에는 여러 과정이 필요했다. 우선 학교에서 원서 쓰기. 그런데 원서를 쓰는 데는 나름 성적 기준이 있었다. 이유는 전국에서 지원하는 아이들이 많아 경쟁률이 세기 때문이라는 것. 게다가 입학 시험을 치러 합격을 해야 가능했고, 여기에 공장일을 버텨낼 수 있는 신체검사에서 통과해야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키와 몸무게.
쩨째의 학교에서는 두 명만이 원서를 쓰는 것으로 결정됐다. 째째와 은진. 시험장소는 전주였다.
째째는 은진과 함께 전주 큰 언니네에서 하룻밤을 묶고 시험을 치렀다.
가정법을 다시 써본다.
'그때, 마산에 가지 않았다면.'
'그때, 출가를 했었더라면.'
4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에서 본다면 출가는 하지 않았고(물론 소프트한 시도는 했다), 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자식도 낳았다.
바뀌지 않았고, 버리지 않은 건, 꿈. 세상 전체를 알고 싶어 하는 소망. 대자유를 얻고 싶은 열망.
어떤 면에서 보면 스님이나, 목사 같은 정형화된 직업군과 나의 꿈은 상관없을지 모르겠다.
엄마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 손을 잡고 절에 들어섰던 엄마는 내가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후 누구보다 돈독한 신심을 가진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권사로 생을 마감하셨다.
마지막 운명을 하실 때 내게 한 유언은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 그 약속을 하지 않으면 눈을 못 감을 것 같다는 것.
나는 약속하지 못했다.
내게 깨달음에 대한 추구는 종교를 떠난 것이다. 대자유의 경지를 삶으로 보여준 석가모니는 나의 스승이자, 선지식이다.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석가모니는 우리에게 뭇 생명이 하나임을, 평등함을, 인연과 인연으로 존재하는 존재임을(연기법) 깨달아서 보여준 스승이다.
나의 이익을 위해 무언가를 내려주는 전재 전능의 신이 아니다.
우리가 내 생명을 준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고, 200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온 인류의 역사를 공부하고 그 역사를 이룬 선조들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것처럼 2600년 전 인도라는 땅 위에 태어나 대자유의 경지를 터득하고 알려준 선지식에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 존재한 모든 성인들께 경의와 존경을 보낸다.
예수, 마호메트, 석가모니, 그리고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으나 분명 존재했을 수많은 선지식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