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마음지도>7
“엄마! 엄마!!”
언제나처럼 학교에서 돌아온 째째는 엄마부터 찾았다. 엄마는 집에 없었다.
중2 째째는 이제 집에 없는 엄마가 어디 있을지 알고 있었다.
째째는 뛰어 엄마가 있을 밭으로 갔다. 달리는 째째의 걸음은 통통 가벼웠고, 마음은 날고 있었다.
엄마는 엄마 키만큼 자란 옥수수밭에 있었다.
“엄마! 엄마아!!”
“넘어질라!”
“엄마, 엄마 나 꿈이 생겼어!!”
“그래? 그래 뭐가 되고 싶으냐, 우리 막내딸!”
환한 엄마의 얼굴.
“스님!”
순간 엄마의 얼굴은 얼어붙듯 멈추었다. 째째의 마음도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뭣이라고?”
엄마가 화난 목소리로 되물었다.
“스님이 될 거야. 나 스님이 돼서.”
“이놈의 가시네!”
째째는 뒷말을 할 수 없었다.
“이런 불효 막심한 년을 봤나! 무엇이 될 것이라고?!”
처음 듣는 엄마의 욕이었다.
욕하는 대신 먼저 생각하는 엄마, 화내는 대신 먼저 생각하는 엄마. 화도 한 번 내면 습관이 되니 화를 내면 안 된다, 가르치던 엄마. 그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고, 욕을 했다.
“이놈의 계집애 또 그런 말 했다가는! 응!”
째째는 입을 닫았다.
'엄마는 스님을 싫어한다.'
왜 싫어하는지 묻을 수 없었다. 째째는 엄마가 꿈꾸는 째째의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했다. 왜 스님이 되려 하는지 말할 수도 없었다.
이후 째째는 엄마에게 꿈을 말하지 않았다.
묻는 째째에게 엄마가 했던 말, “크면 알게 돼.” 이후 묻는 횟수를 줄인 것처럼, 그러다 묻지 않게 되어버린 것처럼, 째째는 엄마가 스님이 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영영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알았다.
“엄마.”
'엄마.'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른다.
나의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목숨 따위, 고민하지 않는 분이었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그러할 것이라는 걸 안다.
그 마음은 말로 들어서가 아니라 느껴져야만 알아지는 것.
그래서 나는 엄마의 이런 사랑 밑에서, 안에서, 품에서, 내 꿈을 향해 살 수 있었다.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는 오래 못 살 거야.”
어릴 때 엄마는 자주 이 말을 해서 나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엄마는 그 말씀처럼 일흔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엄마를 그리며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엄마처럼 화초를 기르는 일.
여름이면 엄마가 좋아하는 채송화를 화원에서 사 베란다에 기르는 일. 피어나는 희고, 노랗고, 빨간 채송화 꽃을 보며 엄마를 그리는 일.
엄마처럼 딸을 마음 다해 바라보는 일.
가을이 와 있는 오늘도 선홍색 채송화 두 송이가 꽃을 피웠다. 그 꽃을 어여쁘다, 엄마가 키운 딸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