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게 허락된 텅 빈 수영장.텅 비어버린 몸으로 반짝이는 물비늘 위에 조용히 누웠다. 시간이 물아래로 가라앉았다. 가엾은 시간과 캄캄한 기억들을 이곳에 두고 간다.
허락되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수영장에 왔지만 수영을 하지는 못했다. 도둑이 내 몸을 꽁꽁 묶어둔 채 시간과 공간을 훔쳐간 것처럼 무력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바라만 봐야 하는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수영장에 온다는 것조차 내게는 과분한 일이었으므로 수영하는 사람을아련한 눈빛으로 구경하면서 물속을 걸었다. 물이 무거워 앞으로 잘 나아가지 못했다. 다리 힘이 부족해 발이 타일에 닿지 않았다. 그래도 5분, 10분... 조금씩 시간을 늘려 50분을 걸을 수 있었다.
하지 못하니까 더 하고 싶었다. 수영이 하고 싶어서 걸으면서도 스리슬쩍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해보곤 했었다. 첨벙첨벙. 두 번만 해도 통증이 생겨 그만두었다. 언젠간 저 노란 킥판을 오래 붙잡을 날이 오겠지.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숨이 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두근두근 노크하는 소리를 들으면 살아있는 걸 느낄 수 있을 테니까. 허리가 아픈 이후로 숨이 차본 적이 없다. 운동 같은 운동을 할 수 없었다. 무리할 수 없었다. 무모하게 도전할 수 없었다. 허리는 "아직"이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었다. 나의 에너지는 서서히 꺼져가는 촛불이었다. 그래도 언젠가 하게 될 수영을 위한 준비를 차근히 해갔다. 스스로 몇 가지 테스트를 하면서 내가 진짜 수영을 할 수 있는지 시험했다. 팔, 다리 등 근육을 쪼개서 단련시켰다. 다른 부위보다 상대적으로 어깨 힘이 약해서 허리가 무리가 가지 않는 한에서 어깨 운동도 따로 했다. 저들이 물살을 가르는 동안 1년 7개월 동안 조용히걸으며 나만의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수영장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이 악물고 버티며 일하던 시간도 흘러갔다. 더 이상 수험 생활도 할 필요가 없고 회사도 나가지 않게 된 지금이 수영에 도전해볼 수 있는 때였다.허리가 조금은 나아져서 수영을 도전할 수 있는 날, 수영이라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서 아프면 바로 쉴 수 있는 날, 다음날 또 아파도 또 쉴 수 있는 날, 그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날. 수영을 직업처럼 온전히 정진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물속에서 첫걸음마를 떼고꼬박 3년 만이었다.
음~파읍!음~파읍!오래전부터 염원한 일을 하게 되다니. 끝없이 이어지는 꿈결 속에서 헤엄치는 것 같았다. 수영은 아직 시작도 안 하고 호흡만 배웠는데도 마치 마이클 펠프스가 된 기분이었다. 기분은 기분이고 허리는 허리였다. 허리디스크 환자가 수영을 배운다는 건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허리디스크 환자에게 수영을 권하는 건 원래 수영을 배웠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지, 처음 수영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발차기는 허벅지로 물을 누르는 느낌으로 해야 한다며 엎드려서 발차기를 하고 있는 나의 다리를 잡고 흔들려고 하는 강사는 공포영화 그 자체였다. 한 달은너무 아파 잠도 이루지 못했다.또다시 통증으로 인한 불면의 시간을 맞이했다. 다크서클과 악수를 할 수 있는 지경이었지만퀭한 눈도 수영장에서만큼은 반짝였다. 수영 강사는 어깨를 두드리며 "허리에 힘 좀 빼요"라고 말했다. 버텨보려고 몸이 팽팽하게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니. 가장 연약한 아이가 강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수영을 하는 동안 많은 부위를 번갈아가며 다쳤고 더디게 회복했다. 근육이 없는 몸으로 수영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렀다. 발목이 꺾여서 한 달 동안 절뚝였다. 어깨와 고관절에서는 소리가 났고무릎도 시큰거렸다. 팔이 올라가지 않아 두 달을 고생했다. 허리가 아픈 것을 얘기하자면 입이 더 아프다. 몸의 모든 부위가 유리였지만마음만은비브라늄이었다.이 아픔은 고통이 아니라 낫기위한 행복한 근육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간 수영을 잘하게 될 것이고, 수영을 잘하다 보면 근육도 생길 것이고, 근육이 생기면 아파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전보다 밖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거라고. 아픔을 이겨내고 수영을 하다 보면 더 건강해질 것이라고 수리수리 마수리 주문을 외웠다. 어느 날은 너무 아파 이 주문이 모두 기만이라고 생각되는 날도 있었다. 아파할 수 있는 것도 살아있어서 가능한 것이니 감사하다고 말하는 내가 위선자 같았다.안쪽과 바깥쪽이 구분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느새 긍정이었다 부정이 되었다가 다시 긍정이 되는 날들을 거듭하며 한 해를 보냈다.
수영을 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살아가는 것 같았다. 수영을 하고 싶었던 마음과 실제로 수영을 하면서 느끼는 마음, 더 잘하게 될 것 같은 마음이 하나가 되어 물속을 저어 가고 있는 듯했다. 숨이 찼다. 벅찼다. 짠물을 먹었다.죽고 싶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내내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숨을 쉬기 위해 물밖로 나오는모습을 보며 내게 아직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아프면 수영장에서 울었다. 울어도 물과 물이 섞이는 것일 뿐 티가 나지 않아 좋았다. 물속에서 울다가 나와서 물안경을 쓰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다시 숨 쉬고 싶은 나를 바라보았다.
땅에서 절뚝이던 할아버지가 물개가 되는 곳이 수영장이었다. 수영장에 가면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자신만의 한계를 시험하며 수영을즐기는 사람도 있고, 자동차 와이퍼처럼120도로 팔을 저어가며 수영하는 사람도 있다.물 위에 누워 두 팔을 동시에 돌리며 수영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것처럼 배영을 하는 사람, 제자리에서 점프만 하는 사람, 물속에서 손뼉 치는 사람도 있다. 물 공포증을 이겨내고자굳이수영장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모두 자기만의 방 안이다.같은 수영장에서 저마다의 물길을 열며 나아간다.잠자듯 수영한다. 빨리 가기보다는 오래갈 수 있는 곳으로 숨을 뱉는다. 다가올 물살을 새롭게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