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 하트와 무지개, 그리고 고양이
안녕하세요, 냥이씨. 오늘은 특별한 밈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대중에게 알려진 이상 그 밈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데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요? 아니요, 제가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것들은 오직 냥이씨와 나 둘 사이에서만 성립되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생겨난 순서대로 차례차례 뜯어보고자 하죠.
우선 푸른빛 하트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비 내리던 작년 10월 9일, 구리시의 어느 아늑한 카페에서 말렌카 꿀 케이크를 먹으며 정한 색깔이에요.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닌데 우리의 드레스 코드가 블루로 통일되어 있었으니까요. 우리 디데이 앞의 하트도, 우리 카톡 상태 메시지의 하트도, 우리가 채팅 때마다 매번 쓰는 하트도 모두 푸른빛이죠. 처음 하트의 색깔을 결정했을 때 당신의 직장 동료들은 장난삼아 이렇게들 얘기했다고 했어요. 하트가 왜 빨간색이 아니고 파란색이냐. 알겠다, 저건 우정의 표시다. 고백했다가 차여서 저 하트를 넣은 거다. 사람들이 뭐라 하든 간에 우리가 쓰는 하트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푸른빛이었어요. 수많은 변화와 새로이 떠오르고 사라지는 아이디어들 중에서도 우리 하트의 모양과 색깔만은 한 번도 변한적이 없어요. 나는 이 사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영상통화를 시작하거나 끝낼 때 자주 써먹는 밈은 무지개입니다. 양손 혹은 한 손을 부채처럼 둥글게 여러 번 펼치는 동작인데 우리는 그걸 보고 무지개를 그린다고 합니다. 가끔 잊을 때마다 사용하던 밈이 우리의 메인 이모티콘으로 떠오른 데에는 중요한 계기가 있어요. 3월 중순이었을 거예요. 우연히 당신과 함께 봤던 영화에 꽤 호러스러운 장면이 여럿 있었죠. 그 때문에 일시적으로 수면에 심한 문제가 생겼던 나를 달래기 위해 당신이 만들어낸 작고 소중한 세계관이 있어요. 내 잠옷의 무늬로 그려져 있는 기린들이 힘이 세므로 나를 지켜줄 거고, 그 기린들은 무지개를 그리면 그릴수록 강해진다고요. 그 후로 기린과 무지개는 나를 지켜주려는 당신의 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밈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고양이는 고양이 집사를 포함한 여러 사람에게 특별한 동물이죠. 그런 것처럼 우리한테도 평범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페르소나가 바로 고양이, 즉 ‘냥이’니까요. 그리고 나도 고양이가 싫지는 않았습니다. 마침 이웃 블로그에 귀여운 고양이 ‘구월이’ 사진이 자주 올라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쩌다가 고양이가 우리 사이의 밈으로까지 떠올랐냐 하면 거기에도 계기는 있었어요. 당신은 언젠가 무슨 일이었는지 힘들어하는 내게 말했죠. 힘들 때는 무지개를 그리고 구월이 사진을 보라고. 그런 식의 셀프 리추얼을 함으로써 삶의 원동력을 얻으라는 얘기였습니다. 그 후로 나는 당신 말을 따랐고, 요즘에는 그렇게 할 필요조차 못 느낄 정도로 잘 살아요. 결과적으로 셀프 리추얼은 효과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지금까지 우리 사이의 밈 세 가지에 대해 설명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정식으로 연인이 된 날부터 써왔던 푸른빛 하트. 잠들기 무서워하는 나를 달래기 위해 당신이 만든 세계관 속의 무지개. 우리 둘 다 세상이 쉽지 않다고 여길 때쯤 당신이 알려준 힐링의 매개체인 고양이. 이외에도 우리가 대화할 때 쓰는 크고 작은 밈들이 여럿 있죠. 이 글은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빈번히 쓰는 밈에 한해서 서술한 겁니다. 그 모든 기억을 되살려 글을 쓰면서 참 즐거웠어요. 아, 우리 사이에서만 통하는 밈이 이렇게 많구나. 밈 하나하나가 우리 둘만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문에 걸려있는 비밀번호구나. 우리끼리만 통하는 밈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지 줄지는 않을 거예요. 연애는 서로에게 독점적인 1대 1 관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난 그러한 연애의 배타적 속성이 오히려 좋아요.
(2023.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