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스토킹의 부끄러운 결말
애인의 위치를 추적하는 충격적인 용도의 앱이 출시된 적이 있었다. 문제의 앱 이름은 '오빠믿지'였고 전화번호만 입력하면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관계 없이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능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얼마 후 대표와 개발자를 포함한 8인이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의 사건인데 그때의 우리 사회는 사생활 보호라든가 인권 침해에 관한 이슈에 그 정도로 둔감했던 것일까. 먼 과거의 소란을 통해 새삼스럽게 격세지감을 느끼는 바다. 아무튼 앱이 등장했을 당시 나는 술자리에서 친구와 함께 이 앱을 안주 삼아 신나게 씹어댔다. 그게 필요한 사람들을 그야말로 한심한 루저들처럼 깎아내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러던 내가 이제와서 그들의 마음을 눈곱만큼이나마 이해하게 될지는 몰랐다. 가만보면 나도 나을 게 하나 없었다. 얼마 전에 나와 너 사이에서 일어난 해프닝의 원인을 돌아보자면.
나는 인스타그램 활동 상태 표시를 이용해 네 상태를 알아내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네가 자고 있는지 아닌지, 현재 핸드폰을 보고 있는지 아닌지를 파악하려다가 그렇게 되었다. 자세한 전말은 이러하다. 심야에 깨어난 나는 1시 반쯤 너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나는 답을 기다리며 다른 일을 하는 도중에 틈틈이 인스타에 들어가서 너의 활동 상태를 보았다. 너는 간간이 인스타에 접속하고 있었지만 내 카톡에 답은 없었고, 그렇다는 점 하나에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고 짜증이 났다. 애초에 너의 활동 상태를 염탐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더라면 생겨나지 않을 감정이었다. 최초의 메시지로부터 세 시간 가량 흐른 4시 반쯤에 다시 한번 너에게 카톡을 보내봤다. 롤(온라인 대전 게임)을 하고 있다는 답장이 잠시 후 도착했다. 나는 거기서 단단히 오해를 하고 말았다. 그러곤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나도 유치하고 나답지 않은 반응을 보이며 자폭해버렸다.
"1시 반부터 계속 롤 했으면 중간중간 시간이 비었을 텐데 답이라도 해주지. 롤 앞에서는 나 포함해서 아무도 못 이기나. 몰라, 롤이나 해."
내 카톡을 받고 너는 적잖이 당황했나보다. 알고 보니 너는 1시 반에 내가 처음 인사했을 땐 자고 있었고, 도중에 깨어나서 내 메시지를 봤을 땐 내가 다시 자고 있겠거니 하고 답을 안했다지. 그러니 '롤 앞에서는 나 포함해서 아무도 못 이기나.'라는 나의 생각은 명백한 오해였던 셈이다. 그로부터 얼마간 네가 나한테 토로한 심정을 모아서 대화체로 재구성하자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자기, 인스타는 그렇게 쓰라고 있는 게 아니잖아. 뭣보다 자기한테서 '롤이야, 나야?'라는 질문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 내가 새벽에 혼자 롤도 못하는 거야? 지금 난 일상을 침범당한 기분이야."
우리가 썸을 타고 있을 때의 나는 네가 통화 중에 게임 얘기를 하면 최대한 열심히 너의 이야기를 경청하곤 했다. 내가 게임에 문외한은 아니며, 비록 장르는 다르더라도 게임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내가 롤을 해본 적은 없지만 너의 강의와 지도편달(?)을 받아들여 롤에 실제로 접속까지 했었다. 그러니 너는 굳게 믿고 있었겠지. 적어도 게임에 있어서는 이 연애 안에서 너의 자유로운 사생활이 보장될 거라고. 그런데 그랬던 내가 별안간 '롤이야, 나야?'라는 날이 서 있는 질문을 던지니 너의 당혹감과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테다. 우리는 그날 통화를 마무리하며 그간 종종 하던 새벽 통화를 아예 없애기로 했다. 연락을 하다가 서로간에 오해를 빚을 우려가 가장 큰 시간대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인스타그램 트래킹을 더는 하지 않기로 했다. 사랑이 아니라 집착에서 비롯된 행위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이에 엇갈림이 보일 때마다 가만히 곱씹게 되는 의문이 있다. 연애에서 어디까지가 사랑의 표현이고 어디서부터가 구속일까? 너는 나의 의문을 듣고는 이렇게 대답했지. 절대적인 답은 없지 않을까. 세상의 수많은 커플은 개별적으로 다 다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관계 또한 제각각일 거야. 너의 의견을 다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나의 의문에 대해 보편적인 답안을 찾을 수는 없으니, 우리가 직접 부딪쳐보고 맞춰가며 적절한 균형점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결론 말이다. 오늘 글로 옮겨놓은 '롤이야, 나야?' 일화가 우리 사이 불협화음의 끝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반드시 그럴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이를테면 내가 그때처럼 너의 일상을 침범한다든가, 아니면 네가 나를 불안하고 답답하게 만든다든가.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 서로의 손을 쉽게 놓아버리지도 않을 거고. 그곳이 어딘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언젠가는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사랑과 구속의 미로 사이 어딘가에 존재할 우리 관계의 균형점에.
(2023.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