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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어캣 Sep 15. 2023

최고의 소금빵과 아인슈페너

난 너랑 결혼할 거고 내 가족은 너만 있으면 돼

카페는 까놓고 말해 기대 이하였다. 일명 인스타 감성 카페로 유명해진 잠실의 P라는 카페 얘기다. 들어가자마자 웨이팅을 할뻔했기에 처음부터 머릿속의 점수가  깎여나갔다. 카운터의 메뉴판을 보니 소금빵과 아인슈페너가 시그니처 메뉴라고 해서 시켜봤는데, 둘 다 임팩트가 없이 그저 그랬다. 지극히 내 취향에서 평을 해보겠다. 일단 소금빵은 겉면이 바삭하지 않았고 버터의 풍미가 부족했다. 그리고 아인슈페너는 양이 너무 적은데다 위에 올라간 크림이 내가 생각했던 크림의 제형과 거리가 멀었다. 가게 내부는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아늑한 분위기를 추구하는듯 했지만, 문제는 웨이팅이 생길 정도로 사람이 많아서 실제 분위기는 시장바닥이 따로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카페는 애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가 내 손으로 계획에 넣은 곳이라서 더욱더 문제라고 여겼다. 우리는 얼떨결에 그저 그런 카페에서 그저 그런 메뉴를 앞에 놓고 시끄러운 와중에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처지가 된 셈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별로였던 이 카페의 방문을 뜻깊게 해준 사람이 내 애인이었다. 나의 자잘한 고민을 그와 나누다가 약간의 정적이 흐를때쯤, 이번엔 내 쪽에서 물어보았다. 너는 혹시 지금 고민이 있느냐고. 그는 이내 자신도 고민이 있다면서 내게 뭔가를 되물어왔는데, 그 물음의 내용이 뜻밖이었다. 그건 나의 결혼관과 가정계획에 대한 가치관을 묻는 질문이었다. 쉽게 말해 내게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결혼한다면 장차 아이를 가질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거였다. 말하자면 그건, 그 또한 나와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그가 나와 달리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혹은 나와 달리 아이를 갖고 싶어한다면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날의 대화 흐름은 애인의 표현대로, "내가 결혼을 한다면 너랑 할 거고 가족은 너만 있으면 돼."로 요약되었다. 나도 그도 정확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 P카페의 테이블 앞에서 확인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는 관계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런 말을 했었다. 나를 오래 보고 싶다고. 뜨겁고 위태롭고 즐거운 관계 양상도 세상엔 많지만 적어도 자신은 그걸 지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뜨겁고 위태롭고 즐거운'이라는 표현의 대척점은 '따뜻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정도가 되지 않을런지. 또한 관계의 시작점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니 나의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아 잊히질 않았다. 지금도 사실은 그렇다. 각자 이제 30대 중반이니 '늙고 지쳤다'라는 농담을 주고받을 때조차 그는, 우리 둘이 같이 늙고 지쳐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대답을 해줬다. 우리가 사귄지 100일째 되는 날에 기념으로 커플링을 맞추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 역시 애인 쪽이었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 그대로 우리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가끔씩 입에 올린다. 앞으로도 그는, 그리고 나는,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함께 해볼 것이다.


태생적으로 집돌이이기에 자기 동네 바깥 지역으로는 좀처럼 나가지 않는 사람이 내 애인이다. 그런 그가 멀고 먼 우리 동네까지 찾아와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서 글쓰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도 놀랄만한 일이다. 그날 약간 아쉬운 마음으로 P카페를 나서면서, 언젠가는 최고의 소금빵과 아인슈페너를 그와 나눠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돌이켜보니 우린 이미 그걸 먹은 적이 있었다. 내가 먹어봤던 최고의 소금빵은 내가 사는 평택시 안중읍 현화로데오 사거리에 위치한 "Bread 445"라는 베이커리에서 생산되고 있다. 현재 우리가 같이 하고 있는 다이어트가 끝나면 그에게 한번쯤 맛보여줄 수 있겠지. 그리고 나와 내 애인이 마셔본 최고의 아인슈페너는 애인이 살고 있는 서울시 암사동의 "본새커피"의 시그니처 메뉴다. 우리는 최고의 소금빵과 아인슈페너를 알고 있고 맛보았고 서로의 행동반경 안에 갖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최고의 것을 소중히 감싸안고 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라는,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보물을.


(202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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