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연애를 제외한 다른 요소들
현재의 애인을 만난 이후로, 삶의 유일한 레저가 연애인 것마냥 지냈던 시기가 잠깐 있었다. 그리 옛날도 아니다. 작년 12월, 내가 사회복지 현장실습을 하고 있었을 무렵이니까. 딱히 내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가 없다. 그때 나는 거의 1년 이상 직장생활을 쉬고 있던 상태에서 갑자기 주5일 풀타임 근무를 맞이했고, 운동을 도통 하지 않았던 탓에 체력은 처참한 수준이었으며, 실습처에서의 근무 외에 딸려있는 숙제들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실습처에서 근무를 끝내고 돌아오면 애인과 한시간 남짓의 통화를 마치고 바로 쓰러지듯 잠드는 일과가 반복되었다. 뭔가 다른 즐거운 일에 눈을 돌릴 의향이나 기력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 연애가 되어버리자 이런저런 곤란한 상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심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기 시작했고, 그 또한 이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듯했다. 언젠가의 주말엔 데이트 중에 그가 이 주제로 내게 간곡하게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을 글 상단에 인용한 정의를 이용하여 수학적으로 치환해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너란 사람 안에서 이 연애의 여집합인 부분을 소중히 여겨줘."
그의 말은 백번 옳은 이야기였고 나는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서 성찰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을 하나의 유니버스, 즉 전체집합 U로 보면 연애가 차지하는 부분은 집합 A만큼일 따름인데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지 모를 나머지 부분을 공백으로 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그의 입장은 차치하고라도 나 자신에게도 너무나 삭막하고 초라한 모습이었고, 스스로도 그런 미래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란 사람의 안에서 연애를 제외한 구성요소를 찾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기야 하겠지만, 크게 나누자면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번째는 일, 두번째는 여가생활, 세번째는 인간관계.
먼저 여집합 1호인 나의 일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동네 지역아동센터의 돌봄교사 일을 뜻하는 것이다. 나는 새해가 시작됨과 동시에 사회복지 업계에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사회복지 실습을 하면서 아이들의 학습을 지도하고 그들을 돌보던 것이 그대로 내 직업이 된 셈이니, 나의 실습 성적에 더해 운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록 내게 거창한 사명이나 원대한 포부 같은 것들은 없지만서도, 나는 이 일을 통해 맡은 바를 성실하고 무탈히 수행해내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생각만 할 뿐이지만, 지금 하는 일을 1~2년 이상 하는 동시에 사회복지사 1급 국가고시나 방송통신대 사회복지학과 학위 취득 등의 방법을 통해 나 자신의 직업적 가치를 한 단계 더 향상시키고 싶은 의향 또한 있다.
그리고 여집합 2호인 나의 여가생활은 문화적으로 가려면 얼마든지 문화적으로 갈 수 있는 부분으로, 애초에 내 애인이 내게 매료된 부분이기도 하다. 일단 나는 책에 진심이다. 대학 학부 전공과 기존에 오랫동안 해왔던 일도 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책을 선택하고 구입하고 읽고 감상을 나누는 모든 과정을 일관성있게 좋아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희소해져가는 요즘 세태에 비추어보았을 때, 내가 가진 유니크함이라고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영화 또한 책 못지 않게 좋아하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인풋은 이러하고 아웃풋으로는 역시 글만한 게 없다. 아웃풋의 방법으로 온갖 것들을 시도해보았지만 뭘 하더라도 결국엔 글쓰기로 돌아오곤 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여집합 3호인 나의 인간관계는 지금으로서는 풀이 꽤 좁은 것이 사실이다. 가족과 친구 두세명, 그리고 최근에 새로 생겨난 직장 내의 인간관계 정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기에 인간관계란 양보단 질인데다, 지금의 풀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란 법은 없다. 이미 학교를 다 졸업한 30대 중반의 직장인이더라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내가 내 애인을 처음 만났던 서울의 모 소셜모임 공간이 있을 것이다. 그 외의 소셜 액티비티를 통해서도 신선한 의사소통을 언제든지 할 수 있으며, 취미 강좌 등을 통해서도 환기가 가능한 지점들이 있다. 나는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고 새로이 만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품을 수 있으며,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12월에 나와 애인 서로가 난처할 뻔했던 시기로부터 얼마 지나지는 않은 시점이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지금의 나는 지나치게 뜨겁게 연애에 과몰입하는 일은 없는 듯하다. 그의 당부와 나의 성찰, 그리고 그때보다 시간과 여유가 많아진 환경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소소한 반전을 일으켜보자면, 실제 세상살이는 수학처럼 딱딱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건 다시말해 나라는 전체집합 U에도, 연애라는 집합 A에도 자로 잰 듯 분명한 한계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디 새해에는 내 연애도, 연애를 제외한 구성요소들도, 무엇보다 나라는 하나의 유니버스가 한층 더 자라나고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띨 수 있기를. 집합 A, 집합 A의 여집합, 전체집합 U 모두를 바라보며 소망한다.
(2023.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