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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어캣 Sep 15. 2023

현실에 발 딛고 행복하기 위해

너와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아

잡고 있던 게임패드에서 홈 버튼을 누른다. TV 화면에선 방금까지 돌아가고 있던 턴제 롤플레잉 게임의 화면이 전환되며 닌텐도 스위치 초기 화면으로 바뀐다. 네가 방에서 나오며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너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액션 게임을 같이 하자며 은근히 나를 유혹하고 있다. 내가 액션 게임과 맞지 않다는 생각은 그저 프레임이라면서.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게임패드를 하나씩 잡는다. 얼마 전 구매한 신작 타이틀은 귀여운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스테이지를 전면에 내세운 액션 게임이다. 게임은 가상의 무대일 뿐인데 나는 괜히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너는 웃으면서 내게 이런저런 조작법을 가르쳐준다. 그 사이 창가로는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햇살이 비쳐 든다. 평화로운 주말 오전이다. 너에게 게임을 배우고 있기도 하니 점심은 네가 잘 먹는 걸로 준비해야겠다. 평일보다는 조금 더 신경 써서.


광진교는 전망 자체는 한강뷰라 멋있지만 운동을 하기엔 짧은 감이 있어 조금은 아쉽다. 너와 나는 점심을 먹고 정리한 뒤에 배도 꺼뜨릴 겸 동네 산책을 나왔다. 광진교의 중간 지점에는 광나루한강공원으로 내려가는 경사로가 있고 우리의 목적은 그 길을 따라 내려가서 산책 코스를 확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곁에 두고 한참을 거닐면서 이전보다 향상된 체력에 새삼 감탄한다. 예전엔 계단 올라갈 때조차 숨이 가빠오던 우리였는데. 요즘 우리가 자주 꺼내는 화두는 올해의 커플 스냅샷이 아닐까 싶다. 지난 2023년의 다이어트에서 대성공을 거둔 이후로 우리는 1년에 한 번씩 스냅샷을 찍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매년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기념일을 특별한 방법으로 챙기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한번의 성공에 만족하지 말고 평상시에도 몸 관리를 이어가기 위함이다. 우리는 눈앞에 놓인 스냅샷 미션을 떠올리며 약간 속도를 올려 걷기 시작한다.


위에서 손에 잡힐 듯이 그려본 풍경들은 사실 현재의 모습은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상을 상상하며 묘사해본 것이다. 너와 함께하는 하루하루를 영화 예고편 영상처럼 내 안에서 재생시키는 건 아주 행복한 일이었다. 특별하고 화려한 이벤트보다는 생활 속 자그마한 행복을 추구하고 싶다는 입장은 너나 나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꿈결 같은 결혼생활의 이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우리가 상상하는 ‘자그마한 행복’은 결코 소소하거나 평범하지 않은 꿈이 된다. 비단 돈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마찬가지다.


일단 우리가 같이 살려면 그럴만한 거처가 있어야 한다. 그게 월세든 전세든 자가든 상관없이 말이다. 경험상 월세는 돈을 뿌려서 공중분해 시키는 일이고 자가는 엄두도 나질 않으니 전세만 남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듣기로 서울시 신대방동 기준으로 투룸 빌라 전세가 2억이라고 한다. 2억이라. 도대체 언제쯤 우리가 이만한 자산을 축적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내 지식으론 그 2억이라는 전셋집이 좋은 조건인지 나쁜 조건인지조차 감이 잡히질 않는다. 설령 조건을 낮추어 알아본다 해도 상당 액수를 대출로 메꿔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심히 알아보면 국가에서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지원하는 저리대출이 여럿 있긴 하다. 그렇다 해도 장기간 대출을 떠안고 생활을 영위하는 것도 만만찮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일일 것이다.


내 집 마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별것 아닌 목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경제적 이슈보다 더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다. 이게 잘 안되면 관리의 유지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그건 바로 나의 멘탈 관리다. 오래전부터 정신과 약을 먹으며 마음 건강 관리를 해왔던 우리다. 그 중에선 병을 늦게 발견한 내 쪽이 더 많이 불안정하고 증상들도 자주 불거져 나오는 편이다. 너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낄 때면 이게 내 탓인지 병 탓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종종 생긴다. 마음속에서 불안과 초조함이 앞선 나머지 너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든지 쓸데없이 화를 낸다든지. 최근 나는 그러한 내 문제점을 인식하고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구원은 셀프라지만 그 ‘셀프 구원’이 내게는 난도 높은 미션이었기 때문이다.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나는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시도하겠지.


냥이야,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져서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인생이 참 쉽지 않아. 분명 우리가 바라는 건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일상감(感)과 생활감(感)일 뿐이잖아. 그런데 세상에 물어보면 우리가 분에 넘치는 행복을 바라고 있대.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와 세상이 우리에게 부여하려는 미래 사이의 괴리감이 작지 않은 것 같아. 미래를 구체적으로 하나씩 뜯어보면 누구나 불안함을 느끼지. 너와 나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우리가 되도록 앞날을 길게 보려 하는 태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겠지. 마흔을 넘겨서 해도 아무 상관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결혼도, 지금으로선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문제인 내 집 마련도, 순항 중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한 나의 멘탈 관리도, 그런 것들을 모두 포함한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도.

그렇지만 왜일까? 너와 함께라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라는 대책 없는 긍정을 하게 되는 건. 주위를 둘러보면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들만 들리지만, 우리만은 예외가 아닐까 싶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펼치게 되는 건. 막연한 느낌에 불과하단 사실은 알고 있어. 하지만 이렇게라도 생각을 고쳐먹지 않는다면 어쩌겠어. 우리는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가야 하는걸. 그러니 냥이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 곁에 머물러줘. 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냉정하지. 그렇지만 우리가 잡은 손을 놓지 않는 한엔 우리만의 작은 승리를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다고 믿을래. 같이 가자. 우리 둘이서 서로가 꿈꾸는 앞날을 하나둘 당겨오도록.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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