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어캣 Sep 15. 2023

가장 가까운 타인

너는 너이고 내가 아니라는 걸

일주일 만에 너에 대한 글을 쓴다. 매주 연달아 쓰고 있는 듯하다. 너와 우리 관계에 대해 거의 반년 가까이 글을 써왔음에도 질리지 않는다. 물론 내 글의 독자들은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속으로 외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밥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내가 쓰고 싶은 글 정도는 써도 되지 않나 하는 다소 안일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언제쯤에야 예전처럼 나만의 이야기를 쓰게 될까. 내 안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너이기에 너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너를 내 안에 두고 싶더라도 경계선을 확실히 해야 한다. 너는 너이고 내가 아니라는 걸.


3년 만에 심리상담을 다시 받기로 했다. 이전에 비해 나아진 건 하나 있다. 인생이 총체적 난국이었던 2020년과는 달리 이번 상담에서는 호소 문제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 문제라는 건 인간관계에서의 태도다. 애정을 두고 있는 주변인과의 적정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자꾸만 위험하게 경계를 넘나든다는 사실이 문제다. 아니, 더 쉽고 직관적인 방향으로 이야기하자. 너에게 자꾸만 혼자 기대를 걸고 불안해하고 실망하고 화내곤 한다고. 너는 그저 그 자리에 변함없이 존재할 뿐인데도. 너에게 인생의 무게추가 상당히 쏠려있으니 너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너는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이라는 집 안에 너의 방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너는 복잡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기쁘면서도 우려스러운 기분 말이다. 게다가 이게 처음도 아니다. 나는 예전의 관계들에서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해왔다. 치밀어오르는 불안과 화를 참지 못해 내가 밀쳐낸 사람도, 반대로 내게 질려 나를 밀쳐낸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너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무한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를 끊기 위해 상담을 받으러 간다.


또한 나는 우리 관계에서 적절치 못한 언어를 두 번이나 사용한 적이 있다. 바로 ‘자유를 준다’라는 표현이다. 이 말이 본의 아니게 너를 의아하게 만들고 너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았다. 너는 내게 말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자유여탈권을 가질 수는 없다고. 너와 나의 자유는 원래부터 각자의 것이었다고.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아마도 나는 저 표현을 쓸 때 무의식중에 너를 나의 일부처럼 여겼나보다. 네가 나와 아주 가깝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나의 부분집합 같은 존재는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럴 필요가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가끔 잊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네가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그전부터 내 것이었다면 내가 너를 발견하고 네게 다가갈 수도 없었겠지. 너와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고 해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네가 어느 날 갑자기 내 것이 되지도 않는다. 나는 그 역시 다행이라고 여긴다. 만일 우리가 교제하던 그날부터 서로에게 속하기 시작했다면 각자가 지닌 색채에 가면 갈수록 진하게 매료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니. 우리는 점점 더 커지는 교집합을 가지고 있는 연인이지만 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친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로 내 곁에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타인으로서. 나는 그런 너의 낯섦을 사랑한다.


(2023. 3. 29.)

이전 28화 현실에 발 딛고 행복하기 위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