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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요 Oct 17. 2022

불온한 교실 8

8. 여교사란 무엇인가

이 장의 제목은 정확히 말하자면 ‘젊은 여교사란 무엇인가’이다. 이 책의 내용이 되는 모든 나의 경험들은 내가 젊은 여교사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라 생각한다. ‘젊은 여교사’란 대체 무엇이기에 이리 기괴한 일들을 수없이 겪게 되는가?


K고교, 그러니까 그 남학교에 가기 전까지 나는 평생을 성비가 그나마 적절한 환경에서 살았다. 나의 노력과 능력에 솔직하게 비례하는 결과를 받아보는 데 익숙했던 학창시절의 나는 성차별 문제를 그다지 뼈저리게 느끼지 못 하고 있었다. 물론 생활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불합리한 말이나 인식은 언제나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퍼져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그 심각성을 실감을 못 했던 것도 있을 것이고, 그때는 그저 공부를 하면 성적이 나왔고 그러면 남학생보다 우수한 평가를 받아내는 게 어렵지 않았으므로 세계가 나름 공정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성별에 상관없이 개인의 노력으로 삶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 자신감이 그때의 내겐 있었다. 그것이 대학을 기점으로 모두 사라질 잠깐의 꿈결같은 착각이라는 것도 모르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우리는 거대한 가부장제 아래 굳건히 건설된 남성들의 세계에 비집고 들어가게 된다. 들어갈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경력이 없었던 첫 해에 거의 50군데가 넘는 학교에 지원했다. 종종 1차를 통과하여 2차 면접을 보러 가면 “여자분이신데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궂은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연약한 여성분이 힘들어서 할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실은 할 말을 잃게 된다. 면접관의 질문에 이미 ‘너는 여자라서 부족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무력하게 한다. 그래도 면접이니 힘을 내어 꾸역꾸역 싹싹한 척을 하며 “여자라도 필요할 때는 엄격하고 강하게 지도할 수 있습니다.”라든지 “성격이 씩씩하고 털털하여 가리는 일 없이 잘 해낼 수 있습니다.”같은 말을 생글생글 웃으며 했던 것 같다. 다 소용 없었지만.

세상은 ‘나’라는 인간 자체의 특성보다는 ‘2n세 여성으로서의 나’에 관심이 많았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특징이라도 되는 것마냥. 내가 그 특징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것은 세상과 타인에 의해 계속해서 주목을 받았다. 몹시 어색한 경험이었다. 자라면서 스스로가 여성인 것을 그렇게까지 의식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것이 나의 제1의 속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유일하게 합격한 K고교에는 어떻게 붙었을까 궁금하여 학교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그 학교는 예로부터 교사들의 출신대학을 따지기를 좋아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내가 지원할 당시 나의 대학이 다른 지원자들의 출신대학과 비교하여 (입결 기준) 가장 높은 학교였던 것이다. 참 구시대적이고 부당하기 짝이 없다 싶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이루어낸 것으로 여태 평가를 받는 것인가 싶어 의아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 이 자리에 여성을 뽑으려고 했다는 뒷 이야기도 이어 들었다. 학교에 여교사가 너무 적어 근무 중인 여교사들이 불편이 많았다나 뭐라나. 어떻게 들어도 찝찝하고 의뭉스러운 합격 이유였다. 

    

진정한 고난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남초 집단에 처음으로 내던져진 것이었다. 그때 그곳에서 받은 시선들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매 순간 빽빽하게 들어 찬 관음에 가까운 시선들. 그 누구도 내게 예민하다고 지적할 수 없다. 나의 이야기를 앞에서부터 잘 읽어왔다면 말이다. 나는 K고교에서 철저하게 새로운 젊은 여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얼마나 흥미로웠겠는가. 자신들의 누나보다 어리고 생기 넘치는 이성이 교사랍시고 등장해선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히 대해주니 관심이 갈 법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교사로 보이고 싶었다. 그것도 좋은 교사. 

생애 처음 교단에 서게 된 새내기 교사였던 나는 어쩐지 비장하기까지 한 결의에 차있었다.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결의. 그때의 나는 마냥 해맑은 사람이었다. 그때의 내가 목표로 했던 교사상은 아이들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한 교사였다. 모든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니, 적어도 나라도 큰 사랑을 주고 싶었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은 정말 흘러넘치게 많은 사랑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자라온 사람이라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사랑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오만한 판단이었지만. 대단한 신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저 아이들에게 너희들 한 명 한 명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 존중 받아야 하고 사랑 받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마음이 어떠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내가 너무 다정했던 탓에 나를 여성으로 의식하는 그들의 시선을 더욱 부채질하기도 했고 나를 여성이기 때문에 우습게 보는 이들에게도 보탬이 되었다. 두 가지 모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취급이었다.

그 당시 K고교는 고집불통의 일방향적 소통 방식만을 고수하는 나이 많은 남교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집단은 지나친 업무 스트레스와 가장으로서의 무게에 짓눌려 학생들 하나하나를 챙길 여력이 없는 4050 남교사들이었다. 주로 무뚝뚝하거나 시큰둥한 60여 명의 남교사들이 K고교의 주를 이루고 있었고, 나머지 10여 명의 여교사들이 복닥이며 머릿수를 채우고 있었다. 그 중에 내가 나타난 것이다. 고작 24살이었던 나는 대학생 티를 다 벗지 못해 지나치게 발랄했고 탱탱볼처럼 통통 튀었다. 초임 특수로 열의와 열정에 가득차 있었다. 약 300여 명의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단숨에 외워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했고 그들의 특징이나 취향 같은 것을 빠르게 파악하여 말을 걸기도 했다. 별 것 아니든 심각하든 그들이 건네는 말은 모두 진지하게 들으려 했고 상담을 신청하는 아이가 있으면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주었다. 학생들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한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그 특별 취급은 교사를 향한 존경심이 아닌 ‘남성’인 자신들이 ‘여성’인 나를 욕망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학생들에게 이성으로서 어필하고 싶은 여교사는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그는 정상이 아니다. 그런 자들은 교직을 떠나는 것이 좋다.) 학생들이 한두 번 “선생님, 예뻐요!”하는 건 어느 정도 귀엽게 봐주고 넘어갈 수 있다. 속으로는 외모 칭찬도 결국 외모 품평이니 그다지 반갑지 않다고 생각할지언정. 그렇지만 “학교에 남자선생님들만 있어서 칙칙했는데 선생님이 계셔서 학교 올 맛이 난다.”같은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표정 관리를 하기 어려워진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K고교에서 나는 과거부터 유구하게 존재해온, 여성에게 흔하게 요구되는 ‘꽃’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내가 의도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내가 K고교에 발을 들인 그 순간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 점이 내게 이롭게 작용되는 듯 했다.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주니 나의 수업시간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었고 집중도 척척 잘 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강을 개설하면 금세 모집인원이 가득 차버려 마치 스타강사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인기는 내게 독이라는 것을 얼마 가지 않아 깨닫게 된다. 그 인기라고 하는 것은 결국 내가 젊은 여성이라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내게 젊은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교사로서 행동하려 하면 불쾌함 또는 의아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한 번은 수업 시간에 제멋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들락날락하고 수업하는 나의 말을 멋대로 끊고 엉뚱한 말을 하거나 내게 무례한 말을 하는 학생을 혼낸 적이 있다. 나는 그 학생의 행동을 몇 번이나 참다가 책상 위에 발을 올린 채 뒤로 기대어 자는 모습을 보고 폭발한 것이었다. 내가 내 나름 교사의 언어를 써가며 학생을 나무라자, 그 학생은 전에 보여준 적 없는 불쾌한 표정을 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냐고 물어보자, “남자선생님들이 혼내는 건 선생님이 나를 지도하는 거라 괜찮은데 **선생님(나)이 뭐라 하니까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정말 이렇게 말했다. 한 치의 꾸밈도 과장도 없다. 나는 그만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아이는 나를 교사로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나는 이 아이에게 그저 만만한 젊은 여자구나. 나의 나이와 나의 성별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데, 그럼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어야 했는가 하는 고민이 빠르게 머릿속을 채웠다. 우선 그 아이를 조금 더 나무란 뒤 돌려보내고, 또래 여선생님들께 가서 이 일에 대해 알려주며 조언을 구했다.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일은 너무나 흔해서 일일이 스트레스 받기도 지친다는 식이었다. 나의 말이 그들의 둑을 터트린 듯 성토가 시작되었다. 수업하다 학생에게 ‘선생님은 여자면서 왜 그리 무뚝뚝하냐. **선생님처럼 애교 좀 부려봐라.’는 말을 들었다는 분이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그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또다른 선생님은 몇 날 며칠 교실 귀퉁이에 쌓여있던 텀블러를 치우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여자니까 설거지 좀 하세요.’라는 소리도 들어보았다고 말했다. 다 포기한 것같은 얼굴의 선생님은 펜슬스커트를 입고 갔다가 ‘선생님 강간 당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로 한참 열을 올리다 점차 말을 잇지 못 했다. 회의와 환멸이 우리 사이를 가득 메웠다. 우리가 이런 말을 들으려고 교육학이니 전공 따위를 공부했던 걸까 하는 자조적인 말로 힘없이 웃으며 어영부영 대화를 마무리했다.     


젊은 여교사로서 겪는 고충들을 어디선가 토로하면 제일 쉽게 들을 수 있는 위로는 ‘나이 들면 그런 일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K고교에서 일하던 중 선배 교사들에게 학생들이 구글에 내 이름을 포함한 여러 개인정보를 검색해서 나의 SNS나 내 친구의 SNS를 찾아내어 나의 과거 행적들을 찾아내려고 들어 곤란하다는 말을 했더니 내게 돌아온 말은 ‘나이가 들면 인기가 사그라들어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니 다 한 때다 생각하고 즐겨라.’였다. 이것이 나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으로 적절한 답변인가? 젊은 여성이라 겪는 부당한 일은 늙은 여성이 되면 저절로 해결되니 기다리라니, 이 얼마나 여성혐오적인 말인가. 그의 조언은 젊은 여성으로서의 가치 혹은 경쟁력(이란 대체 무엇인가?)이 떨어지면 곤란한 일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말 같아서 몹시 불쾌했다. 

당연하게도 동료교사들에게 어떠한 근본적인 해결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나를 비롯한 여교사들이 학교에서 학생들 혹은 남교사들에 의해 겪는 일들은 범죄의 영역을 왔다 갔다 하는 일들이다. 심각하고 엄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일들을 그저 ‘여교사의 인기 탓에 발생하는 해프닝’ 정도로 인식하면 곤란하다. 


젊은 여교사들이 교사 그 자체가 아닌 젊은 여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어느 직종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인식을 개선하는 것 밖에는 달리 규제할 방안이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남학교에서 근무하던 24살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어째서 학생들은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지(껄렁거리며 농담으로 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이러한 농담을 내게 건다는 것 자체가 불쾌했고, 그 중에는 정말 진지하게 나를 잠정적 연애대상으로 보는 학생도 있었다.) 왜 늦은 밤중이든 새벽이든 학교와 아무 관련없는 일로 내게 연락을 해대는지, 어떻게 나의 번호나 사진들을 저장해서는 다른 학교 아이들과 공유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학생들에게만 그런 일을 당했다면 다행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젊은 여교사는 새로 나타난 결혼시장 매물이자 학교의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는 위험인물이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결혼시장의 상품 취급 받는 것은 우리나라 정서상 어쩔 수 없는 지점이라 생각해 체념했고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다. 웬 아버지뻘의 유부남 교사가 내게 천년의 사랑을 고백하기 전까지는. 이건 그저 내가 운이 매우 나빴던 것 뿐이니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위험인물 취급을 받는 것은 정말 억울했다. 몸의 윤곽이 드러나는 옷이나 목선이 보이는 헤어스타일 때문에 불려가서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골지 니트 상의를 입었던 날 어떻게 그런 섹슈얼(?)한 차림으로 남학교에 올 수가 있냐고 혼났던 일이 선명하다. 한창 때인 학생들을 자극할 수 있으니 행실을 주의하라는 말도 들었다. 지금이었으면 그런 일로 자극 받는 게 이상한 것 아니냐고 톡 쏘아주겠지만 나는 그때 너무 유약한 신입교사였다. 


나는 혹시나 아직도 다른 여교사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진 않을까 우려가 된다. 아직도 수업 실력이나 인품이 아닌 외모나 옷차림으로 평가 받는지. 남학생이나 남교사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품행을 단정히 하라는 단속을 받는지. 결혼을 해본 적이 없고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어 학생 지도에 미숙하다는 말을 듣는지. 나이와 성별을 이유로 과소평가 되거나 혹은 과대평가 되는지.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일을 학교에서 종종 마주하는지.     

나는 의도적으로 여학교로 직장을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여성임을 날카롭게 의식하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 스스로도 나의 성별과 그에 따른 불편이나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나는 절이 싫어 직접 발걸음을 옮겨버린 중이다. 모든 중이 그러할 수는 없다. 절을 뜯어 고쳐야만 하겠는데, 그러자니 세상이 협력해 주지 않는다. 여교사들이 그저 ‘교사’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내가 너무나 이상주의자처럼 느껴진다. 이 글에서는 여성인 교사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말하기 위해 굳이 여교사라는 표현을 썼지만, 우리는 그저 교사가 되고 싶다. 학생들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고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예쁘거나 날씬하거나 못생기거나 뚱뚱한 것과 상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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