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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요 Oct 17. 2022

불온한 교실 7

7. 스토킹

K고교를 떠남과 동시에 그 모든 지저분한 일들로부터 말끔히 벗어났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지저분하고 끈적한 찌꺼기같은 마음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 공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S고교에서의 생활은 몹시 즐거웠지만 애향심을 어찌하긴 어려웠다. 더군다나 나는 평소보다 약해져 있었으므로 나를 잘 아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S고교에서 1년 동안 근무를 한 뒤, 고향에 있는 P고교에 지원했다. 운이 좋았는지 일이 잘 풀렸는지 P고교에 합격했고 나는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왔다. P고교 또한 여자고등학교로, 이곳에서 지금껏 근무하고 있다. 이제 정말 K고교가 있던 그 도시와는 완전히 멀어졌고 그곳으로는 여행도 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인연들과도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 정도로 내게 끔찍한 기억이었다. 이제 그곳을 떠나온 지 햇수로 3년째가 되어간다. 나 또한 그곳에서의 일들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고 그곳의 사람들도 나를 잊어가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첫 시작은 3월 어느 금요일이었다. 수업을 모두 끝낸 나는 종이 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들어왔다. 나는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익숙히 들어본 결혼정보회사였다. 광고 전화겠거니 생각하며 거절 후 끊으려는데 그쪽에서 이상한 말을 했다.

“***(내 이름)씨가 저희 사이트로 매칭 신청을 해 주셔서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는 무작위로 광고를 돌리는 회사가 아닙니다. 저희 사이트에 성명, 생년월일, 가족관계, 출신지 및 거주지, 출신대학, 직업 등 직접 입력하셔서 매칭 신청을 하셨어요.”

나는 상담안내원 분께 입력된 정보를 모두 읊어달라고 했다. 가족관계를 제외하고는 나의 개인정보와 거의 일치했다. 나는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쫙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우선은 내가 신청한 것이 아니니 입력된 정보를 모두 폐기 처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전화를 끊었다. 기분 나쁜 일이었다. 누군가 나를 사칭하여 결혼정보회사에 나를 등록시키다니. 누가 한 행동인지 가늠도 되지 않아 꺼림칙했지만 아주 큰 피해를 본 것은 아니니 잊고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이것이 시작이었다.

토요일 오전, 나는 자취방의 책상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10시쯤, 또다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들어왔다. 이번에도 결혼정보회사였다. 어제와는 다른 곳이었다. 예약 문의가 들어와 전화를 했다고 상담원이 말했다. 내가 문의를 남긴 것이 아니니 내 전화번호와 이름을 삭제해 달라 요청한 뒤 끊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각기 다른 결혼정보회사로부터 전화와 메시지가 줄줄이 이어졌다. 하나같이 내가 직접 등록을 해서 연락을 취한다고 말했다. 나는 일일이 개인정보를 지워달라 요청하고 그들과의 통화목록과 메시지 등을 모조리 캡처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결혼정보회사가 있었나 싶었다. 거의 하루 종일 이런 일이 일어나자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누가 이렇게 많은 곳에, 결혼정보회사를 하나하나 검색하여 사이트에 접속하여 나의 개인정보를 직접 쳐 넣어가며 등록을 눌렀을까? 대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이런 행동을 했을까? 행동의 구체적인 동기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내게 악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혼정보회사로부터의 연락은 주말 내내 이어졌고 나는 모든 연락의 흔적을 계속해서 수집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자마자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사이트에 접속해 신고글을 썼다. 내가 캡처한 연락의 흔적들을 첨부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몇 시간 뒤, 나의 신고글에는 증거가 명확하지 않으며 내가 입은 피해가 없기 때문에 신고를 접수할 수 없다는 답이 달렸다. 나는 허탈했다. 허탈할 새도 없이 또 새로운 결혼정보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감정적으로 조금 화가 나 있었다. 어째서 본인이 아닌데도 등록이 가능하냐고 묻자, 상담원은 정말 이상한 일이라며 기다려 달라 했다. 그는 잠깐 자판을 두들기더니 나의 정보를 등록한 IP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그가 불러주는 아이피를 종이에 꼼꼼히 쓰고 소리내어 읽으며 상담원에게 이게 맞느냐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전화를 마친 뒤 나는 당장 노트북을 켜 IP를 조회할 수 있다는 사이트를 찾아냈다. 숫자 하나하나 천천히 누른 뒤 조회를 눌렀고 나는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올라와 머리끝까지 감싸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K고교가 있는 그 도시 그 학군의 한 아파트였다. K고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은 그 아파트. 나는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벗어난 곳인데 아직까지 내 옷자락을 붙들려 하다니. 그 집요함에 울분이 치밀었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나는 IP 조회 결과를 캡처하여 SNS에 공개적인 글을 썼다. 주말부터 이러한 피해를 입고 있으며 IP 조회 결과 어디서 일어난 일인지 파악하였으니 이 행동을 반복할 경우 바로 신고하겠다는 글을 썼다. 많은 지인들이 분노하며 나를 걱정해 주었다. 이 글이 효과가 있었는지 한 며칠간은 휴대전화가 잠잠했다. 단 며칠이었다.

나는 곧장 경찰서를 찾았다. 지금껏 내가 받은 결혼정보회사의 연락들을 모두 보여주고, 그 중 한 회사에서 알려준 IP 주소와 조회 결과도 보여주었다. 나름대로 증거를 모아 갔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내 생각보다 갑갑했다. 

“***씨가 직접 이 결혼정보회사들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증거 있습니까? 그리고 IP 주소 하나로는 부족해요. 각 회사에 접속한 IP 다 알아오시면 그 중 겹치는 주소 찾아서 범인 특정할 수 있습니다. 근데 입은 피해가 없어서 지금은 사건 접수 안 됩니다.”

이것이 내가 들은 대답이었다. 법이 그러하다면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터덜터덜 경찰서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는.     


결혼정보회사 다음은 각종 포털사이트였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머리를 말리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7시쯤,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 사이트 로그인을 위한 본인인증번호가 문자 메시지로 날아온 것이었다. 나는 뭔가 착오가 있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문자를 시작으로 내가 아는 모든 포털사이트에 로그인하기 위한 본인인증번호 요청이, 그 다음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위한 인증 요청 메시지가 계속해서 날아왔다. 그 중 한 사이트의 로그인 시도 지역을 추적해 보니 역시나 K고교가 있는 그 지역이었다. 아침 7시 가량부터 시작된 접속 시도 알림 또는 인증번호 요청 메시지는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멈추었다. 누군가가 자신이 기억하는 나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하루 종일 어딘가에 접속을 시도하며 내게 알림을 보낸 것이다. 이 시도는 몇 날 며칠을 이어지다 어느날 갑자기 뚝 끊겼다.  

   

포털사이트 다음은 병원이었다. 그 날도 나는 학교에 있었다. 조금 멍한 상태로 노트북을 노려보며 업무를 해내고 있었다. 노트북 옆에 대충 놓아둔 휴대전화로, 잠깐 동안 전화가 울리더니 금세 끊겼다. 그러더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원의 이름이 떴다. 단순한 광고성 메시지겠거니 싶어 알림을 지운 뒤 휴대전화를 뒤집으려는데 메시지 내용이 이상했다.

‘안녕하세요? 이명/난청/이석증/사시 전문병원 [***한방병원]입니다.

문의 주셨는데 전화 연결이 안되네요.

이 번호로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저희 홈페이지 먼저 둘러보시면 진료에 대한 이해가 빠르실 거예요.^^’

문의를 주었다니? 나는 병원을 예약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또다른 병원에서 전화가 들어왔다. 설마 이번에도,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내가 사는 지역에 위치한 어느 정형외과였다. 예약 문의가 들어와 전화를 드린다는 말을 듣자마자 내가 예약한 것이 아니며 누군가 나를 사칭하고 있다, 어떤 경로로 예약이 들어왔는지 알려줄 수 있느냐고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병원 직원은 잠깐 당황하더니 병원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이 접수되었다고 말했다. 예약을 시도한 사람의 IP를 알려달라고 하니 직원은 웃으며 자신들은 그것까진 모른다고 했다. 나는 별 수 없이 예약을 취소해달라 요청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 날 온갖 병원들에게서 무수히 많은 연락을 받았다.     


나는 결혼정보회사 사태 이후 모든 SNS를 비공개로 돌린 상태였다. 각종 포털사이트는 새로 가입하거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싹 바꾸었고 이중보안시스템을 설정해 두었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사이트는 모두 탈퇴했다. 이 이상 무엇을 더 숨기고 조심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K고교를 떠나는 것으로 그곳과 관련된 모든 악몽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사는 도시를 옮기고 직장을 옮겨도 따라붙는 그들의 흔적이 나의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나는 단숨에 그때 그 도시로 돌아갔다. 약의 용량을 천천히 줄여가면서 점점 본래의 나를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는데 단번에 가장 아팠던 때로 돌아갔다. 약의 용량은 다시 최대치가 되었고 나는 피폐해졌다.      

인터넷 상에서 나의 개인정보를 악용하고 나를 사칭하는 것 이외의 행동은 없었다. 아마도 그 밖의 일은 하고자 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짐작하고 있다. 연일 헤드라인을 채우는 스토킹 범죄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언젠가는 저런 뉴스의 주인공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스토킹 범죄 가해자가 엄중한 처벌 없이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유유히 전학을 가버린 A가 떠오른다. 물론 현재 나를 스토킹하고 있는 자가 A라는 증거는 없다. 그저 나의 휴대전화를 울려대는 스토커의 흔적을 볼 때마다 K고교에서 고통 받던 내가 떠오를 뿐이다.


이 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여전히 며칠 혹은 몇 주 간의 간격을 두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내게 알림을 보내온다. 그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저 자신의 존재 그 자체와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것인지 내게 어떠한 손해를 입히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뜻모를 행동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불안감에 시달려 하는 것이 바보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칼에 찔리고 나서야 비로소 죄가 되는 세상이다. 안전하다는 감각이 전혀 없는 이곳에서 무엇을 믿고 생활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오늘도 휴대전화 알림 하나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 주변에서 나는 작은 소음에도 움찔한다. 나는 점점 예민해져 간다. 언제까지 이런 날들이 이어질까.     

추가. 어제는 밤늦게 친구에게 대뜸 연락이 왔다. 너무 화가 난다는 말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친구의 블로그 유입경로를 알려주는 화면 캡처였다. 그곳에는 정확하게 내 이름 석 자와 함께 내가 이전에 살던 지역이 나란히 조합되어 있었다. 나는 최근 모든 SNS를 비공개로 돌리고 K고교와 관련된 이들을 모조리 차단해 버리는 극단적인 방식을 취했다. K고교 학생 중 누가 스토커인지 특정해 낼 수가 없으니 그들을 모두 끊어내버린 것이다. 이런 방식을 택할 만큼 스토킹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나의 결단 이후 더 이상 나를 염탐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스토커가 어젯밤 또 소름 끼치는 짓을 했다. 나의 SNS로는 접근할 수 없으니 나와 친한 친구들을 알아내어 그들의 게시물에 등장하는 나의 모습을 보려 한 것이다. 나는 그 캡처 사진을 보자마자 또 가슴 깊은 곳의 아주 깜깜한 곳에 아주 무거운 물체가 사정없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 일상을 훔쳐보기 위해 내 친구들의 이름을 외우고, 그 친구가 쓴 글에서 검색에 걸릴 만한 단어를 기억해 둔 것. 그걸 자기 손으로 직접 검색하여 친구의 블로그를 알아내고 그 속에 나타난 나의 흔적을 찾아낸 것. 이 모든 행위가 너무나 역겹다. 이런 일이 한 번 생기면 나는 그 날 하루 종일 가슴이 갑갑하다.


스토킹 피해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인 동시에 수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인 현상이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핀트가 엇나간 소리로 반박하려는 자들이 가끔 진심으로 부럽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성별을 이유로 남성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낄 일이 없다. 강간을 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로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 불법촬영과 데이트폭력이 두려워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지 않아도 된다. 그 얼마나 지대한 자유인가. 나는 이제 내 개인적인 공간에 글 한 편 공개적으로 쓰기가 어려워졌다. 그 많은 여자들을 지하철의 여성전용칸에 밀어넣었듯 나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나의 자유의 공간을 점점 좁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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