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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요 Sep 28. 2022

불온한 교실 2

2. 일상적 성희롱

젊은 여교사를 향해 남학생들이 던지는 호감 어린 말은 성희롱과 단 한 끗 차이가 난다. 그것은 칭찬의 의도를 지닌 채 시작되어 나를 모욕하며 끝난다. “선생님, 오늘도 예쁘십니다.” 정도로 무난하게 시작되었다가 “저랑 밤에 만나실래요?”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것은 학생 개인의 행위일 때도, 몇몇 거친 무리의 작당일 때도, 교실 전체의 음모일 때도 있었다.      

나는 K고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지금껏 후회한다. 그 중 아직까지도 내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 몇 있다. 나는 난처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성희롱을 모른 척한 적이 몇 차례 있다.

그 날은 유독 짓궂지만 나름 여린 구석이 있는 1학년 4반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그 반은 목소리가 크고 거친 아이들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 거친 아이들은 언제나 나의 몸매나 얼굴을 평가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분명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며 나의 주의를 끌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나를 함부로 대했다. 아이들은 주로 나의 다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의 어깨선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 당시 이 상황의 심각성을 곧장 알아차리지 못 했다. 막상 문제의 한 중간에 놓이게 되면 그 불쾌감의 정체를 단 번에 눈치 채기 어렵다. 그 교실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여성으로서 몸매 평가를 당한다는 느낌의 모멸감이라기보다는 교사에게 까부는 아이들에 대한 괘씸함 정도였다. 아이들이 선생님 다리는 이렇게 생겼다, 어깨가 저렇게 생겼다고 말을 꺼내더니 그래서 내가 자신들의 애인으로 적절한지 부족한지, 또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쯤 나는 짐짓 낮고 딱딱한 목소리로 그들을 나무랐다. 타인의 외모를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어 놓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의 지도를 해야 했다.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내가 막 일을 시작했을 무렵,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일상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오늘날과 같이 거센 백래시에 휩쓸리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오명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K고교는 남학교답게 페미니즘에 대한 학생들의 거부감이 엄청났다. 2010년대 초반 일베에 대한 사회적 멸시와는 결이 다른 혐오였다. 학생들은 종종 내가 페미니스트인지 알아보기 위한 유도심문을 던지곤 했는데, 그 유도심문이라 하는 것은 은근히 나를 모욕하는 데가 있어 아슬하게 위험한 질문들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여성의 입장에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답을 말했다. 그 덕에 그 학교에 근무하는 내내 메갈이라는 욕을 듣고 다녔다.


내가 메갈로 불리게 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느 날 나는 1학년 3반 수업에 들어갔다.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잔뜩 흥분해선 목소리를 높여 떠들고 있었다. 교탁을 탕탕 치며 앉으라고 지시한 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신들이 다니는 학원이 모여있는 동네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한 학원의 남자 원장인지 남자 강사인지가 그 학원을 다니던 여학생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학원 강사를 거세게 비난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행위라고 열을 올렸다. 그러자 아이들은 의아해했다. 여자애가 원해서 한 것일 수도 있지 않냐고 한 아이가 손을 들며 물었다. (이 시점에서 이미 욕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아이들이니 잘 모를 수 있다고 넘어가주기로 했다.) 나는 그들이 전에 본 적 없이 크게 정색하며 그 어떠한 경우에도 성인은 미성년자와 이성으로서의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막말로 그 여학생이 원해서 맨몸으로 달려들더라도 남강사는 그 여학생을 제지하고 부모에게 바로 연락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뒤편에 앉은 아이 하나가 말했다. 우리 학교 애가 선생님한테 고백하면 어쩔 거예요? 그 순간 교실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나는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 했다. 어떤 의미로 내던져진 말인지 머리가 따라가지 못 했다. 나의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나는 시험대에 올라가게 된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감정적으로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건 교육적이지 못 하니까. 나는 작게 쉼호흡한 뒤,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빌지만 혹시나 일어난다면, 당연히 아이를 잘 설득하여 단념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나의 대답이 시시하다는 듯 금세 딴청을 했다.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딴소릴 하며 교과서를 펴도록 지도했다. 나는 이때 더 화를 냈어야 했다. 앞의 사건에 대입하여 나를 시험한 것에 대해 책임을 따져묻고 분명하게 지도했어야 했다.

또다른 일은 1학년 4반에서 일어났다. 그 날은 어쩐지 진도가 빠르게 나가 50분 수업 시간 중 10분이 남게 된 상황이었다. 정기고사까지 여유도 넉넉하고 다른 반에 비해 진도가 느린 반도 아니어서 나는 학생들이 10분 동안 휴식을 취하게 했다. 그러자 반의 분위기가 빠르게 풀어졌다. 서로 편하게 잡담을 주고받는 분위기 속에서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집 **이라던대, 저 놀러가도 돼요?”

내가 타지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 학교 아이들 모두가 공공연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질문이 너무 뜬금없고 엉뚱하게 튀어나온 것이라 그 의도를 추측도 하지 못 했다.

“**에 놀러가고 싶어? 재미있는 곳 많으니까 가볼만 한 것 같아.”

그저 그 지역에 놀러 가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학생에게 그러라고 했다. 

“그럼 선생님 집에서 자도 돼요?”

아이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말했기 때문에, 나는 이 말에 어떠한 나쁜 의도가 숨어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 애매했지만 다짜고짜 정색할 정도로 분명하게 잘못된 말은 아니었다.

“**에는 선생님 부모님이 사시는데? 재워주긴 어렵겠네.”

“그럼 선생님 ** 가실 때 같이 가는 건요?”

이쯤 되자 아이들이 조롱 섞인 환호성을 작게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까진 웃을 기력이 있었다.

“안 돼. 나중에 수능 끝나고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가도록 해.”

“그럼 수능 끝나고 가면 재워주시나요?”

문제가 생긴 건 바로 그 순간. 정말 순간이었다. 뒤쪽에 앉아있던, 평소 두드러지게 건방지고 삐딱한 태도로 수업에 들어가는 교사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아이가 엎드려 있다 고개를 팍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재워준다고? 오 그럼 **(나의 이름)쌤이랑 하룻밤?”

아이들은 와 하고 환호했다. 나는 교탁 뒤에서 얼어붙었다. 아이들은 잠시 낄낄대며 내게 재워달라한 아이를 대단하다는 듯 치켜세웠다. 나에게 그런 말을 대놓고 한 것이 제법이라는 듯 그 아이의 이름을 연신 크게 불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성희롱을 당했을 때의 대처법 같은 것을 지겹도록 들어왔다. 인터넷에 자주 등장하는 성희롱 일화를 보며 피해자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끼며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교탁 뒤에서 얼어붙었다. 내가 굳어있는 사이 수업이 끝남을 알리는 종이 울려퍼졌고 아이들은 빠르게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한참 그 자리에 서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명확하게 정리할 수 없었다. 교과서를 챙겨 터덜터덜 교무실로 내려와 내 자리에 앉았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며 후회가 밀려왔다. 즉시 그 아이를 붙들고 매섭게 혼낼 걸. 네가 한 말이 분명한 성희롱이었다고 따끔하게 혼낼 걸. 함께 떠들썩하게 웃을 일이 아니라고 아이들에게 소리라도 지를 걸. 뒤늦게 학생들 앞에서 욕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자 괴로워했다. 그러나 나는 일을 바로잡지 못 했다. 저번 시간에 있었던 일은 잘못되었다고, 그건 교사를 향한 폭력이었다고 짚고 넘어가지 못 했다. 아이들이 와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깔깔 웃던 모습이 나를 위축되게 했다. 그 교실에 나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가는 빗줄기에 온몸을 흠뻑 적시듯 학생들의 가벼운 조롱과 성희롱은 일상적인 장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는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못 들은 척을 했다.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고 점점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내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나의 책임을 유기하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정상적인 성적 관념을 지닌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받을 기회를 내가 빼앗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교사로서의 신념보다는 개인이자 여성으로서의 안전을 더 우선시했다. 그렇게 시간이 1년 쯤 지나고, 그들은 2학년이 되었고 나는 2년차가 되었다. 서로에게 익숙해진 채, 조금은 늘어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수업에 들어가자, 그들은 여느 때처럼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를 불렀다.

“선생님. 버닝썬 사건 봤어요?”

“선생님. 저는 정준영이랑 승리가 장래희망이에요.”

나는 피가 얼굴로 확 몰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눈을 질끈 감게 되는 분노를 느꼈다. 이때는 바로 대처할 수 있었다. 당황하지 않고 교과서를 교탁 위에 올려놓고는 버닝썬 사건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일인지, 그 사건이 피해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폭력인지, 그 일을 왜 유머로 소비해선 안 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버닝썬 사건과 같은 성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설명했다. 내가 흔치 않게 정색을 해서인지 아이들은 바로 진정했고, 나는 나의 지도가 잘 먹혀든 줄 알았다. 정해진 분량의 수업을 무리없이 해내고 나는 그 일을 까먹은 뒤 교실을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반의 학생 한 명이 나를 찾아왔다. 그 학생은 평소 나와 친분이 거의 없는 편으로 사적인 대화를 단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아이였다. 왜 나를 찾아왔냐고 하니 잠시 쭈뼛대던 아이가 웅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혹시 메갈이세요?”

나는 정말 숨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페미니즘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남학교에서 페미 혹은 메갈이라는 낙인은 위험했다. 남학교에서 페미니즘 수업을 한 교사의 수업을 거부한다는 서명을 교육청에 제출했다는 기사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침착하게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물었다.

“애들이 선생님이 페미래요. 페미니까 계단에서 밀어버리겠다, 급식실에서 식판을 얼굴에 엎어버리겠다고 해요.”

아이는 거의 허둥거렸다. 그가 나를 찾아온 것은 나에 대한 걱정 때문인 듯 했다. 나는 내 손이 떨리는 것을 감추며 그를 안심시켰다. 나는 잘못된 일을 한 적이 없으니 떳떳하며, 아이들이 나를 해치겠다는 것은 다 허세일 뿐이니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진 않을 것이라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진짜로 애들이 그렇게 한다고 했어요. 막 욕도 하고, 화를 냈어요.”

나는 다 괜찮다고, 내가 생각해도 논리적이지 못 한 말을 와르르 쏟아내고는 아이를 돌려보냈다. 그리곤 내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아는 친구들과 선배들(모두 여성이자 교사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자문을 구했다. 모두들 끝까지 잡아떼라고 했다. 언어적 폭력은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발생할 것이었다. 그걸 막을 생각은 없었다. 지인들과 내가 걱정하는 것은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었다. 혹은 교사로서 나의 자리가 위협받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확실한 자기보호 방법은 딱히 없었다. 그 뒤로 몇 날 며칠을 두려움에 떨며 복도를 걸어다니고 수업에 들어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학생들이 실제로 내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일은 없었다. 그 뒤로 언제나 나의 뒤로 페미다 메갈이다 하는 말이 따라다녔지만 그런 것들은 무시할 만 했다. 다만 나는 한 층 더 움츠러들었다. 수업 중에, 복도를 지나가며, 행사를 진행하며 나에게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전해지는 성희롱에 대해 더 소극적으로 반응하게 된 것이다. 그때의 나는 분명 겁에 질려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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