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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요 Sep 28. 2022

불온한 교실 3

3. 여교사화장실의 도어락

K고교는 남학교였으므로 여자화장화실이 딱 하나였다. 몇 없는 여교사들만 사용하면 되니까 여러 군데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화장실에는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다. 상가용 화장실도 아닌데, 화장실 입구에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첫 출근을 한 날, 교무보조사 분이 나에게 살짝 다가왔다. 그 분은 나의 어머니보다 조금 어린 듯한 여성분으로 친절하고 포근한 분이셨다. 나의 귀를 살짝 빌려서는 작은 목소리로 화장실의 비밀번호는 ****이니, 절대 학생들에게 들키지 말고 화장실에 출입하라고 하셨다. 나는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실은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장실 문에 왜 도어락이 있는가. 도심에 있는 상가 건물의 1층 화장실에 도어락이 설치된 경우는 종종 있다. 외부인이 그 건물의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막기 위한 장치이다. 그런데 여기는 행인이 우연히 들리기 힘든 곳에 위치한 학교이고, 여교사화장실은 2층 교무실 바로 앞에 있어 외부인이 들어가기 어려웠다. 화장실 문에 설치된 도어락이 몹시 의아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지는 않았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번거롭게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문을 닫아 잠긴 것을 확인했다. 이런 생활을 6개월쯤 하자 별 의문도 불편도 느끼지 못 하게 되었다. 여교사화장실에 도어락이 설치된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익숙해진 채 생활하다, 한 학기를 보내고 난 뒤 술자리에서 우연히 그 도어락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흔한 이야기였다. 도어락이 설치되기 전, 그러니까 여교사화장실에 아무런 장치없이 출입할 수 있었을 때, 한 남학생이 화장실에 가는 여교사의 뒤를 밟았다. 그 여교사는 기척없이 다가온 남학생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 하고 화장실 칸에 들어갔다. 옷을 내린 뒤 볼일을 보기 위해 앉았을 때, 무심코 고개를 들어올렸다가 발견하고 만 것이다. 분명하게 자신을 향해 있는 휴대전화 카메라를. 선생님은 크게 비명을 지르며 옷을 재빠르게 입고 그 자리에서 학생을 붙잡았다고 한다. 그 길로 바로 학생을 교무실로 끌고 갔다. 거기까지가 K고교의 여교사화장실에 도어락이 설치된 이유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욕을 쏟아부었다. 뉴스에나 나오는 일이 내가 근무 중인 바로 그 학교에서 일어났다니,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래서 그 뒤는요? 나의 분노를 싹 씻어줄 정의로운 처분이 그 학생에게 내려졌기를 기대하며 물었다. 그 술자리에는 공교롭게도 뒷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학생은 징계 받고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뒀을 걸요, 정도로 얼버무렸다. 좋은 일이 아니라 쉬쉬하며 진행돼서 이 일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몇 없다고 했다. 나는 영 성에 차지 않는 결말에 얼굴을 붉히며 좀 전보다 더 심한 욕을 퍼부었던 것 같다.

(나는 1년 뒤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글의 흐름상 바로 말하지 않겠다. 이 글의 가장 핵심적인 덩어리와 너무 가까이 맞닿아있어 섣불리 꺼내놓기 힘들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그 학교 여자화장실의 도어락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단 하나뿐인 여자화장실. 그곳의 문에 달린 도어락. 그 문에 그 도어락이 달리기까지의 사건과 대처. 그 모든 과정들이 K고교의 여러 가지 가치관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성관념에 대하여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시켜 왔는지, 잘못된 성적 호기심(이라 표현하기 역겹지만)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사실 K고교에서 일어난 사건과 이에 대한 대처는 틀에 박힌 듯 진부한 형태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 피해를 축소시키는 주변인들의 부추김, 피해자의 위축, 죄에 비해 가벼운 처벌, 당당한 가해자와 일상을 떠나가는 피해자. 더 이상 놀라울 것도 없는 형태였다. 

그리고 그 형태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너무나 잔혹하게도, 얼마 가지 않아 내게도 그 더러운 이빨을 드러낸다. 학교란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흔해빠지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그 문장을 가장 치떨리는 방법으로 실감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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