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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요 Sep 28. 2022

불온한 교실 4

4. 가해학생과 피해교사

불행은 잔잔하게 다가온다. 수면 아래를 유유히 헤엄치다 먹이를 한 입에 삼킬 만큼 가까워져서야 아가리를 쩍 벌리는 상어처럼.

K고교에 부임하고 3~4개월쯤 되던 시점이었다. 1학기가 평화롭게 흘러가는 중이었고 나는 학교에 잘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놈의 짓궂다는 말로 퉁쳐버릴 수는 없지만 애써 외면할 수 밖에 없는 거친 아이들과도 나름대로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심지어 그들에게 작지 않은 애정도 느끼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나의 첫 제자였던 것이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 나는 교무실의 내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니터에 집중한 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나의 얼굴 옆으로 무언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놀라서 고개를 움츠리며 보니 흰 종이였다. 돌아보니 고개를 뒤로 돌린 학생이 내 쪽으로 종이를 내밀고 있었다. 손을 너무 떨어 종이가 후들대고 있었고 고개를 너무 많이 돌리고 있어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누구냐고 물었으나 답을 하지 않았다. 옆자리 선생님이 학생을 발견하곤 웃었다.

“제가 수업 들어가는 반의 A인데요, 선생님을 엄청 좋아해요.”

A는 내게 종이를 넘겨주고는 꾸벅 인사를 하고 다급하게 교무실을 떠났다. 종이를 뒤집어 보니 그것은 그 당시 메신저 프로필이었던 내 얼굴을 그린 것이었다. 그리고 귀퉁이에 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두서없이 낙서처럼 휘갈겨 둔 것이었다. 나는 조금 의아했다. 내가 수업을 담당하는 아이도 아닌데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아서, 나에 대해선 얼굴과 이름 정도 밖에 모를 텐데 나를 왜 좋아하지? 본능적인 불쾌함이 밀려왔다. 지나치게 긴장한 듯한 A의 태도나 그림 옆의 낙서에 담긴 메시지가 건전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별다른 근거 없이 학생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교사로서 좋지 못한 자세라고 판단했다. 그냥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마음일 거라 생각했다. 나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어 대뜸 문자나 디엠을 보내는 아이들은 A 말고도 여럿 있었고 그런 경우에는 그냥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과제를 걷거나 안내 사항을 공지하기 위해서 휴대전화 번호를 학생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불가피했기 때문에 알음알음 퍼져나갔겠거니, 하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를 불쾌하게 여긴 것이 미안해졌다. 학창 시절에 교사를 좋아해 본 경험은 흔하게들 한다던대, A도 그런 마음일 텐데 내가 너무 과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이 실수였다고,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머리칼을 다 쥐어뜯으며 후회했다. 학생에게 함부로 거부감을 느낀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는 서랍에 굴러다니던 사탕을 하나 챙겨 A의 교실로 향했다. 옆자리 선생님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던 아이라 교실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평소 수업을 들어가는 교실이 아니라 그런지 내가 그 교실에 가까이 가자 아이들이 술렁댔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교실 앞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A를 호명했을 때, 아이들은 교실이 다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A는 얼굴을 내쪽으로 돌리지도 못 하고 그 자리에 말 그대로 주저앉았다. 벽에 기대어 발작하듯 비틀어졌다. 다른 아이들은 낄낄 웃으며 A를 끌어당겼지만 A는 바로 서지 못 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가까이 가서 사탕을 떠넘기듯 쥐어주었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내가 느낀 미안함만큼의 면죄는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A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렸다.

내게는 너무 많은 학생과 너무 많은 수업과 너무 많은 업무가 있었던 것이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휘몰아치는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그런 해프닝-심지어 기분 나쁜-은 금세 까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A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그때 막 비뚤어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 뒤 A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를 내 번호를 통해 시간과 상관없이 메시지를 종종 보내왔다. 마치 자신의 친구에게 보내려다 실수한 것처럼. 나는 그의 의도가 빤히 보여 메시지를 읽지 않거나 읽고 바로 지웠다. 이런 식으로 연락을 시도하는 학생이 A 하나가 아니었고, 그들에게 하나하나 정성껏 답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내게 수행평가나 수업 내용에 대해 문의하는 연락에는 성심껏 답해주었다.) 그렇게 몇 번 무시하다 보니 휴대전화를 통해 연락을 시도하는 것은 멈추는 듯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나는 1년을 같이 보낸 그 아이들과 또 다른 1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들은 2학년이 되고 나는 2년차 교사가 되었다. 그들의 학급 중 하나를 내가 도맡게 되었고 나는 생애 처음 담임을 하게 되었다. 괴롭고도 값진 나날이었다. 매일같이 사고를 치는 아이들과 허겁지겁 수습하기 바쁜 초보 담임. 천사 같이 순하고 세심한 아이들도 있었고 내 맘 같지 않게 속을 썩이기만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고단한 일이 더 많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추억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추억의 틈을 파고 들어, 그 사건이 일어난다.


2년째 함께해 온 사이답게, 제법 나와 단단한 유대를 형성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나의 수업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나를 교사로 대해주었다. 내게 무례한 말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나보다 먼저 소리 높여 화를 내기도 했고 뒤에서 나를 상대로 저급한 농담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내게 살짝 와서 알려주며 그 아이를 멀리하라고 귀뜸해 주기도 했다. 그들이 나보다 먼저 그 꺼림칙한 움직임을 눈치챘다. 지금부터 그 아이들을 정의로운 아이들이라 칭하겠다. (조금 유치하지만)

정의로운 아이들은 2학년 1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된 어느 날, 나와 친한 남교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남교사에게 자신들이 지금껏 모아온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A가 나를 그린 수많은 그림들이었다. A는 미술을 하는 학생이었다. 그림이 그의 무기였던 셈이다. 내가 입은 옷을 매일매일 관찰하여 그림으로 기록하고, 나를 성적으로 과장하여 묘사하고 있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나는 고분고분한 성노예였고 A는 나를 군림하고 있었다. 그림 속의 나는 한결같이 수줍게 눈을 내리깐 표정으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거나 등뒤로 숨기고 있었다. 그의 환상 속에서 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그림이 수십 장, 수백 장이었다. 낱장의 종이 몇 장이 아니라 두꺼운 연습장으로 여러 권이었다. A는 처음에는 나의 얼굴을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연필 끝은 나의 목을 따라 점차 내려갔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 쌓여가다, 마침내 그것을 다른 아이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A와 친분이 있던 몇몇 아이들은 더 해보라고 했다. 더 자극적으로, 더 노골적으로 나를 그려보라고 요구했다. A는 이 그림과 만화를 통해 전에 없던 관심을 받았다. A는 더 많이, 더 빨리 그림을 그려댔고 그림 속에서 나는 점차 기괴해졌다. 나에게 관심을 받지 못할수록 나를 더 굴욕적으로 표현했고, 내가 다른 아이의 발표에 칭찬을 할 때마다 나는 더 헐벗은 형태가 되어갔다.

정의로운 아이들은 이 모든 것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다. A와 같은 반이었던 몇 명이 체육시간에 몰래 교실로 돌아와 A의 연습장을 꺼내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A와 다른 반이었던 나머지 아이들은 A가 그 그림들을 다른 아이들에게 퍼트리는 정황을 포착했다. 정의로운 아이들은 계속해서 증거를 모으고 또 모았다. 그러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그들은 차마 내게 직접 말하지 못해 나와 친한 남교사를 찾아갔던 것이다. 

남교사는 몹시 곤란해 하며 나를 불렀다. 나는 좀처럼 입을 떼지 못하는 남교사의 태도에 어리둥절해졌다. 남교사는 어렵게 말머리를 꺼내었다. A 있잖아. 그가 그렇게 운을 뗐을 때 불길함이 나를 확 덮쳤다. 나는 머릿속이 차게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남교사의 입에서 하나씩 하나씩 나를 향한 칼날이 꺼내져 나올 때, 나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곧바로 울음을 보이진 않았다. 칼에 찔리자마자 비명을 내지르고 눈물을 흘리지 않듯, 나는 그저 멍 하니 굳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실감하지 못 했다. 덤프트럭에 치인 인간이 그 통증의 정도만으로 덤프트럭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 하듯, 나는 그 상황의 깊이를 알아차리지 못 했다. 눈을 꿈뻑이며 그렇군요, 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적당히 화를 내고 욕을 했던 것 같다. 그 정의로운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잘 말해주세요, 하고 남일을 말하듯 대처했다. 남교사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내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행. 다행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나는 나에게 벌어진 불행에서 도피했던 것이리라. 눈을 부릅 뜨고 마주하기가 두려워 그만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다. 나는 남교사에게 이 일을 떠넘기고 싶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교사는 정의로운 아이들을 불러 적당히 아이들을 달랬다. 정의로운 아이들은 실망했고 분노했다.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넘어갔다. 첫 번째로 그 일을 목도하였을 때 나의 솔직한 반응은 도피였다.

     

이 일이 이렇게 끝났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며 수면제를 먹어야만 잠이 드는 몸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의로운 아이들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A의 범행이 더욱 과감해졌던 것이다. 내가 A의 범행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도 아무런 처벌이 내려지지 않자, A는 당당함마저 보이게 되었다. 동시에 내게 괘씸함을 느꼈다고 한다.(후에 그의 진술서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면서도 내가 받아주지 않은 것, 자신이 나에게 어떤 피해를 입힐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 그러면서도 멀쩡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다른 아이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괘씸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A는 계속해서 나를 그렸다. 더 파괴적으로 더 끔찍하게. 

그렇게 두어달이 지나갔다. 나는 중간고사를 무사히 치르느라 풀죽이 되어있었다. 평가란 교사에게도 극도의 집중력과 긴장감을 요하는 일이기에, 게다가 나는 경력이 얼마 안되는 교사였기에 더욱 버겁게 일을 치러내고 있었다. 당장의 바쁜 일을 모두 해치워놓고 한숨 돌리고 있을 때였다. 정의로운 아이들이 다시 그 남교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찾아왔다. 상황이 더 악화되어 있었다. 이제 A는 어디에서나 내 욕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칠판에 내 이름을 쓴 뒤 일본어로 ‘보지’라고 썼다가 뒤에 ‘오이시(맛있다)’라는 말을 이어붙이며 낄낄대기도 하고 교실 한복판에서 ‘***(내 이름)으로 뭐 그려줄까?’하고 주문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정의로운 아이들은 그를 말려보기도 하고 그에게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오히려 A의 화를 돋우기만 했다. 나와 가까운 아이들이 자신을 제지하자 더욱 속이 꼬였던 모양이다. A는 정의로운 아이들에게 으스대기라도 하듯 나를 주인공으로 한 음화를 무한히 생산해냈다. 그런 추세가 두 달쯤 이어지자, 정의로운 아이들이 더는 참지 못 하고 나를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실감이 났다. 내가 입은 피해와 그 폭력의 무게가 어렴풋이 가늠되었다. 우선 정의로운 아이들을 다독여주었다. 얼마나 놀랐느냐고, 너희끼리 이렇게 증거를 모으고 작전을 짜면서 힘들지 않았냐고. 그건 어쩌면 반사적인 말이었다. 아이들에게 여성으로서 다른 남성(심지어 학생인)의 폭력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순 없으니 교사로서 할 법한 말을 우선적으로 꺼낸 것이다. 정의로운 아이들은 그런 나를 답답해 했다. 자신들을 달랠 때가 아니라 얼른 신고하자고 했다. 나는 매사에 이성적이고 침착한 편이라 자신하는 사람이었다. 그때도 내가 그러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나는 고작 음침하고 음험한 남학생의 폭력적 행위 따위에 붕괴될 사람이 아니라고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나는 정의로운 아이들에게 괜찮다는 듯 웃어보이며 일단은 기다리라고 했다. 먼저 신고할 방법에 대해서 알아볼 테니 증거를 모으는 것만 도와달라고 했다. 아이들을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남학생과 남교사로 가득한 그 공간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학생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그 일을 해결해 나갈 수 없었다. 우선 아이들에게 증거를 최대한으로 모으게 하고 나는 나대로 고민해 볼 계획이었다. 나는 뉴스 속 대두분의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파묻고 괴로워하는 것보다 더 의연하게 대처하려 했다. 더 강인하게 맞서 싸우려고 했다. 정말 그러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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