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겠다. 당신이 어디 아프지 않고 그럭저럭 살만하다면, 행복한 것이다. 또한 축복받은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행복한 현실이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즉 우리 주변에 퍼져있는 기쁨과 행복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혜택들은 자극적이지 않으며, 또한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는 착각이다. 세상만사에 당연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평범한 일상을 잘 살고 있다는 것은 무릇 이런 뜻을 가진다. " 누군가가 당신을 지켜주며, 사랑하고 있다."
이 사실만을 기억한다면, 당신이 외롭다거나 우울하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말인지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어디 불편한 것이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당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즉 당신의 생명력과 존재 자체가 행복의 원천이며 증거인 셈이다.
쓸데없는 고통을
줄이는 것은 선이다
사업가들이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이유는 타인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인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선이다. 왜 선한 행동인가? 쓸데없는 고통을 줄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계발 유튜버나 동기부여가 들은 '고통'을 이용하여 장사를 한다.
' 고통' 이 선이며, 반드시 추구해야 되는 가치인 마냥 선동하는 것이다. 공격적인 동기부여가 들은 자신을 고통 속으로 내 몸으로써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내 생각에는 절대로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더 높은 목표나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고통이라는 대가가 따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통은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수동적인 고통과 능동적인 고통이 있다.
수동적인 고통은 없애야 할 고통이다. 하지만 능동적인 고통은 일정 부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차이냐면, 수동적인 고통은 의도하지 않은 외부의 고통이다. 누군가 당신을 때린다면, 수동적인 고통이다. 만약 당신이 격투기 선수라면, 맞는다는 것은 능동적인 고통이다. 고통 또한 자신이 원하는 수준 한에서 예상 가능한 정도로만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쓸데없는 고통은 줄여나가면서, 꼭 해야 되는 일에서 겪는 수준 정도로만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고통을 줄이고 재앙을 피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삶이다.
재앙을 회피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다
더 많은 쾌락을 위해서, 또는 사치를 부리기 위해서 자신을 위험 속에 몰아넣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럭저럭 살만하면서 치명적인 재앙만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 확률을 높이는데 모든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행복은 환상에 지나지 않지만, 고통은 현실이다"라는 볼테르의 말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통처럼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 재앙을 피하는 일은 어렵다. 그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현재와 미래를 위해 적절하게 에너지를 배분해야 한다.
특히 쾌락과 사치, 향락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재앙이 다가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왜일까? 쾌락 때문에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현실의 쾌락에 매몰되어 미래를 전혀 대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반대의 상황도 있다. 미래에 대해 두려움이 너무 극심한 나머지, 현실의 삶을 외면하는 것이다. 현재를 극단적으로 희생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산다. 그로 인해 현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사람이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재앙을 겪는다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다. 왜냐면, 자신이 철저하게 계산하여 준비한다 해도 운명의 신은 그것을 가볍게 뒤집기 때문이다. 결국 쾌락을 중시하든, 미래를 과도하게 준비하든 마음이 무너지는 데는 차이가 없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법
고통이 없고 대체로 무료함이 없는 삶이라면, 지상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달성한 것이라고 봐도 좋다. 또한 향락과 쾌락을 위해 고통을 대가로 지불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쾌락은 순간적으로 지나가지만, 그로 인해 받는 고통은 더 크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도 치유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높은 쾌락 또는 사치는 그야말로 끝도 없는 욕망의 산물이다. 그 욕망은 대개 채워지지 않을 것이고 또 다른 욕망으로 대체될 뿐이다. 이는 끝없는 마라톤 경주를 뛰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만약 당신이 그럭저럭 살만하다면,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건강하여 자신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즉 당신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행복하다는 뜻이다. 당신은 아파본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조금만 아파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일상에서 당연하게 누려왔던 권리나 행복들을 빼앗겨 보았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대화를 나누는 평범한 일상을 2년이나 빼앗겨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 확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것들이 얼마나 가치가 높은 지를 말이다. 그러니 당신이 우울하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로 당신은 우울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인가?
단순히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있지 않은가? 욕망에 사로 잡혀있지 않은가? 한 번 점검해 보길 바란다. 어떤 삶이 정답인지는 딱 정할 수는 없겠으나, 위대한 지성들은 공통적으로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정한 행복이란, "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재앙들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이다. 또한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라고 말이다.
제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이제는 지나버린 일로 치부하자. 제 아무리 괴로워도 잠겨 드는 마음을 진정시키자. 미래의 일은 신의 뜻에 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