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와 소셜미디어가 없기 전 나는 항상 스스로를 자책해왔다.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 탓을 자신에게만 돌렸다. 하지만 다양한 매체와 책에서 나는 사람에 대한 것과 관계에 대한 것을 배우고 모든 것이 내 잘못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상대방과 나의 다름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을 뛰어넘을 방법은 없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나는 이 점을 몰랐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가 진짜 어려운 것은 서로가 너무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는 상대방에게 지루할 수도 있다. 또한 무례한 행동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정말 나와 맞는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사람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혼자가 편해'라고 자위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즐기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의 태도가 어느 정도는 변해야 된다는 것을 부쩍 깨닫고 있다. 인간관계가 유독 잘 안 풀리는 데는 전부 이유가 있다.
부정적 에너지는 숨겨라
하소연은 약점이 된다
하소연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 사람은 참 안타까운 환경에 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마음씨 좋은 사람이 있다면 하소연하는 사람을 잘 위로해 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소연은 어느 순간 인간관계를 망치는 원인이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의식은 생각보다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또한 관계를 인식하는 것도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지배하에 놓여있다.
이유 없이 미움받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실제로 몇 번 보지도 않고 첫 만남부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은 상대방의 무의식이 나를 미워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것은 본능이다. 의식적으로 제어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상대방이 당신의 생존권을 붙잡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 사람이 당신을 이유 없이 미워한다면 그때부터는 정말 지옥이 된다. 아무리 당신이 노력한다고 해도 관계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매우 난감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내가 무의식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하소연이 상대방의 무의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소연은 부정적 에너지다. 즐거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의식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즉 당신이 상대방에게 자신이 불쌍하다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불가항력 환경에 놓여있었다 하더라도 타인은 당신을 불쌍한 인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합당한 이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더라도 당신은 그냥 불쌍한 인간이 된다. 이는 상대방의 무의식에 그대로 박혀서 다시 빼내기도 힘들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잘하고 싶다면 절대로 하소연은 하면 안 된다. 웬만하면 하소연은 줄이고 긍정적인 이야기와 일상을 나누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인간관계가 훨씬 좋아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람에 대한 공허함을 이겨 내는 법
자기 계발에 매진하자
나는 어느 순간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가 원해서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거 같다. 그때 나는 선택을 해야 됐다.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늘려서 술로 인생을 낭비하든지 아니면 자기 계발을 하든지 말이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줄이고 운동을 했고 글을 썼다. 나는 올해 7월부터 블로그를 시작했다. 책을 읽고 독후 활동을 블로그에 기록했다. 블로그를 통해 브런치라는 플랫폼도 알게 됐다. 작가 신청을 했고 감사하게도 두 번 만에 합격했다.
7월부터 시작한 나의 자기 계발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브런치에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운동도 꾸준히 해서 몸이 제법 가벼워졌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시간이 정말 많이 확보됐다. 또한 저축과 투자도 열심히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을 높게 쳐준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직접 경험해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은 순간적으로 행복할지 몰라도 단순히 시간 때우기식 술자리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20대 때 그런 자리를 항상 쫓아다니는 사람이었다.
술자리의 즐거운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적당히 즐기고 내 할 일을 했어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직도 후회되는 것 중에 하나이다. 20대 때 내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것 말이다. 그래서 서른 살이 되자마자 조금씩 나쁜 습관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아직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40대에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서 더욱 노력할 생각이다. 미친 듯이 꾸준히 하면 어떤 일이든 10년 안에는 성공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는 거 같다. 일단 내가 바로 서야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다.
당신이 좋은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되면 그에 맞는 사람들이 당신의 옆자리를 채울 것이다. 이는 법칙과도 같다. 나는 아직 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5개월 정도 꾸준히 독서하고 글을 쓰고 있지만 많이 부족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하다. 타인과의 관계보다는 스스로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루저가 아니다. 진짜 루저는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알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내치라는 뜻이 아니다.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다 보면 주변에 당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눈에 띌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당신의 옆에 있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당신이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사람에 대한 공허함, 배신감을 이겨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 된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취미에 집중하거나 미루었던 부업에 뛰어들어도 좋다. 생산성이 있는 활동이라면 모든지 좋다. 사람들은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당신이 생산성 있는 활동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에게 투자해보자.
아무리 상처 받아도
사람을 만나야 되는 이유
원래 그런 거다
우리는 살면서 작든 크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간다. 이것에 자유로운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를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완벽하게 서로의 마음을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없다.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유별나게 굴 것이 없다는 뜻이다.
원래 그런 거다. 당신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상처 받았다고 해서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다. 원래 그런 거니깐. 그렇다고 해서 분명히 잘못된 일을 합리화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 관계에서 범죄(스토킹, 폭력)에 해당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난다. 그런 상처들은 확실히 다르게 논의되어야 한다.
그런 것들이 아니라 서로 기대한 것 때문에 서운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흔하게 일어난다. "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은 할 수 있어도 그것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상처를 많이 받는다 해도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