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착하게 살아야 된다고 교육받았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착하게 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착하게 살 수록 호구가 되거나 무시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착한 사람이 무시받는 이유는 바로 거절을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권리를 내어주기 때문에 무시받는 것이다. 이것은 착한 것이 아니다. 단지 남의 눈치를 보는 것에 불과하다. 즉 진짜 착해서 무시받는 것이 아니라 거절을 못하기 때문에 무시받는 것이다.
" 그 사람 착해 "라는 주변의 평가는 사실상 칭찬이 아니다. 착함은 매력이 될 수 없다. 사회에서 착해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마구잡이로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은 공동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다. 착함은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보호한다. 착함은 사회적으로 상호 간에 지켜야 할 당연한 약속이라는 뜻이다.
즉 착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매력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착함을 빼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수식어가 ' 그 사람 착하긴 한데..'가 돼버리면 안 된다. 그것은 착한 것 빼고는 아무런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착한 사람이
오히려 무시받고
미움받는 이유
생존을 위한 연기
자신만을 위해 착함을 연기하는 부류가 있다. 사람을 끄는 매력(힘)이 없을 경우 착함을 연기한다. 착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도움받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력이 없다면 착함은 힘을 잃는다. 또한 착함을 연기하여 어떤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면 사람들에게 금방 들통이 난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무시받는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착함은 연기할 수 없다. 왜냐면 착함이라는 성격은 배경음악과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배경음악처럼 착함은 타인에게 무심하게 전달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은은한 향기가 코 끝을 부드럽게 자극하는 좋은 향수처럼 착함은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착함을 연기하면 뭔가 부자연스럽다. 착하지 않은데 착하려고 연기해봤자 인내심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들통이 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상대방의 기분과 분위기를 귀신같이 잡아내는 직감을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바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생존해 왔다. 사회적 소통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금방 무리에서 버려지고 도태됐을 것이다. 인간이 서로의 표정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발달한 것은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적인지 아군이지 오랫동안 파악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첫인상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번 결정 난 첫인상을 바꾸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첫인상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물며 착함을 연기해서 상대방을 속인다는 것은 실력 있는 연기자나 배우가 아니라면 힘들 것이다.
착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다른 매력을 키우고 타인에게 진정 무언가 줄 수 있는 가치를 길러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착한데 왜 나를 미워하지?'라고 무책임하게 말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착함
가짜 착함
착함은 특권이다
진짜 착함은 힘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힘은 곧 통제다. 남을 통제 할 수 있는 사람이 함부로 힘을 남용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착함이어야 비로소 진짜 착함이 완성된다. 즉 착해질 수 있는 권리는 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앞서 나는 착함이 사회적 약속이라고 말했다. 상대방의 힘이 파악되지 않았을 때는 서로 착함을 유지한다. 왜냐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나보다 강한지 약한지 모를 때는 서로 존중해주고 착하게 상대방을 대한다.
하지만 서열이 정리되면 본모습이 튀어나온다. 그때는 누가 진짜 착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가짜 착함은 연기이다. 가짜 착함은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전략일 뿐이다. 진짜 착함은 강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가령 강한 사람이 착하다면 인자하고 자상한 모습으로 비친다.
그렇다면 약자에게 못되게 굴고 강자에게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일까? 강자에게는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약자에게는 그 사람은 악마 같은 놈이다. 진짜 강하고 착한 사람은 약자와 강자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지 않다. 언제나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
강자가 유별나게 착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힘을 남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약자라도 원망을 산다면 어떤 비수가 되어 되돌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약자에게도 착하게 군다. 그 사람은 지혜롭기 때문에 착함을 유지한다.
즉 착함은 누군가에 대한 태도와 예의일 뿐이지 강점이 될 수 없다. 착하다고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착함이 매력적으로 돋보이는 경우는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자신만의 큰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착함과 배려심까지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매력적인 착함이 된다.
핵심은 바로 강함을 기반으로 둔 착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착함은 은은하게 비추어지는 아우라처럼 보여야 한다. 타인에게 진심으로 친절한 사람은 몸을 휘감는 아우라가 볼일 때가 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후광이 비친다는 말로 표현한다. 후광이 있는 사람은 강하면서 매력적이고 착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강점은 힘과 권력이 된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데도 타인에게 함부로 굴지 않고 친절하게 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힘을 억제하고 통제한다. 이것은 본능을 누르는 일이다. 자신의 강점을 그리고 힘을 필요할 때만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인품이 돋보이는 사람은 착함을 유지할수록 더욱 빛이 난다.
부탁을 거절하자
그리고 강해지자
미움받을 용기
착한 사람을 죄인처럼 말한다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받아들였다면 내 뜻을 오해한 것이다. 나는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람은 모름지기 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조건 착하기만 한다면 타인에게 무시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타인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면 무시받는다. 당신의 시간과 자원을 상대방에게 빌려줄 때는 항상 명분과 타당성을 따져 봐야 된다는 뜻이다.
당신이 착하다고 무시받는 경우는 웬만해서는 없을 것이다. 착해서 무시받는 것이 아니라 부탁을 거절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받는 것이다. 그것을 착하다고 착각해서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착함은 강함을 기반으로 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었다.
즉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내면에 어떤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두려움이란 '미움받으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미움받을까 봐 타인의 무리한 부탁도 거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미움받는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가 강해져야 한다.
당신에게 무리하게 일을 몰아주는 상사, 비용(시간)이 부담되는 부탁을 자주 하는 친구들, 당신의 시간을 좀 먹는 가족의 부탁 등 이런 일들은 흔히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당신은 매사 거절을 해야 될 때 거절하지 않아서 막상 진짜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한다. 본인이 강해질 수 있는 시간을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당신이 그 부탁을 들어주면 들어줄수록 당신은 무시받게 된다. 고마워는 하겠지만 인간은 이중성과 악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의가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부탁을 들어주고 내키지 않는 부탁은 거절해야 한다. 가족의 부탁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의 할 일을 제처 두고 타인을 도울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당신이 거절한다고 해서 연이 끊긴다면 딱 거기까지인 인연인 것이다. 당신이 부탁을 들어줘서 연명을 하는 관계는 필요 없다. 이해관계가 사라지면 금방 없어질 관계에 너무 많은 비용을 투자해서는 안된다. 행복한 삶에 관계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지만 당신이 거기에 짓눌려서는 안 된다.
당신이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은 거절하자. 거절한다고 해서 당신의 착한 심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