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이야기

모든 웃음이 호감을 뜻하진 않습니다.

by 내J

잠시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저'는 인간실격의 주인공처럼 '광대'의 길을 의도적으로 택했습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가득했던 시기인데, 고등학교에서 학업으로든 외모로든 이 집단에서 뛰어날 수 없으니 인간적인 매력으로 뛰어난 사람이 되어보자는 전략을 선택하여 '웃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꽤 유용했던 전략이었음이 확실한 까닭은 우선 많은 학우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1학년 전교부회장이 될 수 있었으며, 훗날 대학 입시에도 영향을 준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전략을 연애 감정에도 이어간 것은 늘 그렇듯 악수였습니다.


웃음이 무조건 호감을 나타내는 것을 아님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가끔은 같이 산책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 이야기에 항상 활짝 웃어주던 그 아이에게 왜 고백을 결심했는지는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고백 편지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납니다. 나름의 유머감각이라고 여겼었는지, 당시 수업에서 배웠던 엔트로피 같은 각종 개념들로 너와 사귀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든다는 것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한 세장정도 적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이름점도 아니고, 이니셜로 화학식까지 만들어서 이런 반응은 자발적이다라고 열성적으로 토로하던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작성한 편지를 자습실 그 아이 자리 서랍에 살포시 껴놨습니다.


확실히 편지가 재미는 있었나 봅니다. 3시간의 자습 시간 후 찾아온 쉬는 시간에 그 아이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편지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야기하며 '저'를 놀리러 왔으니 말입니다. 당사자는 어이가 없던 나머지 아예 편지를 친구들에게 보여줬었고 졸지에 개그감을 온 사방에 뽐낸 셈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도 황당했겠지만 '저'는 그날의 경험 이후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좀처럼 감정을 표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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