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지 설명하실 수 있습니까?
동네의 어둑어둑한 조명이 예쁜, 그래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조용한 바에서 조명 탓뿐만이 아닐 그 사람의 어두운 표정은 그간 마음이 편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았습니다. 무겁게 이야기를 꺼내면서 나의 고백에 답변하기 위해 건넨 책과 편지, 그리고 다시금 말로 전달해 주면서 구질구질하게 굴 수 없게 만드는, 나에게는 이른바 '완벽한 거절'을 돌려받았습니다.
가장 크게 걱정되었던 점은 앞으로의 관계보다도 이전의 나의 행동들이 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겠다는 점입니다. 일방통행이 아니지 않나 하는 오해로, 멀리까지 마중 간다던가, 조금은 계획적이지 않은 행동들로 그 사람을 꽤나 곤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잘 거절하지 못하는 그 사람의 성격을 파고들어서, 그 정도를 심화해 가며 자연스럽게 고백을 성사시키려던 편협한 '저'의 전략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나가는 대화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했을 때, 조금은 격한 표현이 있었다는 그 말에서 그 사람이 "지금까지 많이 곤란했겠구나, 아뿔싸!"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상황과 이런 마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까지 그 사람이 느꼈을 부담에 사과하며 앞으로는 곤란하지 않게 만들겠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백 이후로는 물론, 이전에도 곤란했을 그 사람을 생각하면 사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투정을 부릴 틈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답변의 의미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물러나는 것이 현재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은 거절의 이유가 퇴색되지 않도록 손수 적은 편지와 자신의 연애관이 담긴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한없는 미안함이 지나간 이후에 책을 펼쳐보았습니다. 사랑의 시작을 운명으로 여기는 도입부 이후에 대부분의 연인들이 답습하는 이별이 있는 중간부를 훑어보고, 마지막에 다시 처음 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지는 부분을 대충 보고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하길 거부했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저'의 기준으로는 사람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완전히 마음을 접을 만큼의 충분한 설명은 되지 않았습니다.
'곤란함'이 신경 쓰였던 '저'와, 그 사람이 확실하게 그어주는 선이라는 안전펜스가 있었기 때문인지 이후로도 지속해서 연락을 이어갔습니다. 그렇지만 좀처럼 정리되지 않고 오히려 더 커져가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은 별것 아닌 일에도 꽤나 큰 슬픔을 가져왔기에 몇 차례 정리를 결심했습니다. 꽤나 오랜 기간 그 사람과 동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에 7개월 만에 다시 '완벽한 거절'의 그 책을 꺼내 들어 읽었습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고자, 아니면 나를 설득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것인지 완독을 통해 느낀 것은, "사랑의 이유를 머리로 찾을 수 없다."였습니다. 그것은 곧 사랑하지 않는 것에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유를 들어서 사랑을 강요하기보다는,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의 기회를 기다려보자가 마음의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