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사랑할 필요도 있습니다.
'저'의 이상과는 다르게, 오랜 시간을 지켜보며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는 좋아한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습니다. 자격지심도 큰 이유 중 하나였을텐데, 끼니를 걱정해야 할 주머니 사정에 연애는 큰 사치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재면 잴수록 위축되었기에 좀처럼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한창때인 만큼 연애는 해보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기보다는 피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의 대상을 분리했습니다. 이게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 싶겠지만 그 당시에는 불연속적으로 좋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상대방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연속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연애의 깊이의 한계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아무튼 그 당시에는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 대상을 구분 지었습니다.
졸렬했습니다. '저'의 결핍만큼이나 상대방도 결핍을 찾고, 우위를 비교하여 '저'를 선택하지 않을 리 없다고 확신되는 상대방을 골라 만났습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기보다는, 줄 세웠을 때 근처에 있느냐가 더 중요했기에 졸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연기했습니다. 나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보다는 상대방의 취향에 맞춰서 취미도, 음식도 상대방이 이상형에 가까워지도록 맞췄습니다. 당연히 성격도 제가 아닌 이상형에 가깝도록 노력했습니다. 엄청나게 짜증 나는 일인데도 대범하고 쿨한 척 넘기기도 했고, 입을 리 없는 스타일의 옷을 상대방의 취향에 맞춰 챙겨 입기도 했습니다. 상대방과 사귀고 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상대방이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졸렬한 마음으로 시작하여 품은 미안함 때문인지, 상대방에게 맞추며 최대한 제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상대방에게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누군지 모를 사람만이 있었고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권태기가 그 원인인 줄 알았으나 세 번쯤 비슷한 경험을 하고서는 '저'를 버리고 시작된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연애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