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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32 쓸개를 떼었다

쓸개 없이 뉴욕에 복귀한 나의 이야기

by 보표

인생을 살면서 쓸개의 용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이 32에 쓸개 없는 놈이 되어버린 내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는 쓸개의 용도?

나무 위키에서 검색해보니 이렇게 나온다.

쓸개의 가장 큰 역할은 간에서 분비된 쓸개즙(담즙)을 저장하는 것이다. 쓸개즙은 크게 담즙 산염과 담즙 색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화 작용에서 위산을 중화시키고 다양한 소화 효소의 작용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어려운 말은 모르겠고, 한마디로 소화를 촉진시킨단다. 소화를 촉진시킨다라... 삶을 살면서 무엇이든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는 한다. 20대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일을 배울 때 코딱지만 한 회사의 내 선배는 나에게 "내 이야기 잘 들어! 한 번만 설명한다. 잘 듣고 소화시켜서! 네 것으로 만들어라! 잘 알아들었지?" 라며 나에게 딜리버리 시켰고 나는 나름의? 매우 잘 이해했다는 표정을 연신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만 설명한다던 내 선배는 이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이쯤 되면 그가 내 표정을 소화 못 시킨 것은 아닐까?




소화를 도와야 하는 내 쓸개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택했다.


회사를 다녀보면 정말 꼴 같지도 않은 회사들을 보게 된다. 대리는? 부장은? 대표는? 사장은? 뭘 먹었길래? 헛소리를 저렇게 자연스럽고 능청스럽게 지껄일 수 있을까? 그리고 틀 안에 갇힌 개똥철학에 오지랖을 좀 더 부려 인생 강의까지 해주는 그런 회사는 누구든 경험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이겠지. 더 정확하게는 동료, 선배, 상사이겠지. 이런 것들까지 소화를 시켜야 할까?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나는 전혀 소화시키지 못했다. 처음부터 내 부장의 썰렁 개그에 박장대소할 수 없었으며, 불필요한 회사의 정책을 그저 맞다고 박수만 치고 있을 수는 없었고, 업무가 끝난 시간까지 그들에게 술잔을 기울이며 딸랑거릴 수 없었다. 틀린 건 틀린 거였고, 맞는 건 맞는 거였다. 그러나 나약한 사회 초년생에 불과한 나는 생활은 해야 했다!라는 비겁한 핑계로 항상 소화된 표정으로 그들을 대했고, 웃고 있었지만 속은 썩고 있었다. 부디 내 쓸개가 이런 딸랑거림에 거부하는 내 정신적 스트레스를.. 버텨주기를 간절히 바랬나 보다.


내 쓸개는 더는 못 버텼는지 수년의 회사생활 동안 한도량이 다되었는지 배터리 방전되듯이 시커먼 한 돌들로 어느 순간 점점 무겁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의 통증의 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32살에 쓸개 제거 수술을 했다. 특별히 의사 선생님에게 이야기해서 쓸개를 제거하고 난 후 그 속 안에 있던 돌멩이들을 받았다.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돌멩이들은 딱 내 생각만큼 정말 시커먼 한 색이었고 딱 생각만큼 딱딱하였다. 나는 돌멩이들을 손에 쥐었는데 분명히 겨울에 병원 회복실은 따듯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서는 추운 겨울날 눈이 시리 듯한 눈물이 조금씩 천천히 흘렀다.

차가운 플라스틱 통에 보관한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쓸개속 뜨거운 돌멩이




내 나이 32 쓸개를 떼었다. 그리고 뉴욕으로 복귀


뉴욕에서 회사생활을 했던 나는 수술을 위해서 한국에 다녀와야 했다. 보통 이런 일로 한국에 가면 수술 후 회복까지는 하고 와야 하겠지만, 뉴욕에서의 회사 일정이 바빴던 나는 수술 후 의사 선생님에게 비행기를 타면 어떻겠냐고 묻고 2-3일 지난 뒤에 인천공항에서 뉴욕행 비행기를 타고 복귀했다. 복귀하면서 회사 대표에게 복귀했다고 보고하였고, 그는 나에게 형식적인 괜찮지?라는 말을 하고 바로 내일부터 업무를 봐야 할 것이 있다고 으름장? 같은걸 이야기하고 있었다. 플러스로 그 업무는 회사의 오래된 직원을 해고해야 하는 회사 내부에서도 처리하기 부담돼 미루어왔던 일이 바로 내 아이폰 너머로 쓸개 없는 놈이 되어버린 나에게 딜리버리 되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뉴욕 JFK에서 퀸즈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많은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뉴욕은 차갑지만 참 아름다운 밤이었다.




내 쓸개의 죽음처럼 나는 회사에서 죽음을 택했다


쓸개의 죽음을 제대로 위로할 시간도 없는 채로 나는 뉴욕에 복귀한 채 많은 일들을 해야만 했다. 쓸개가 없는 놈이었던 나는 무서울 게 없었다. 쓸개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랬다. 그러고 나서 문득 회사에서의 나는 쓸개 같은 존재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다. 회사의 어려운 일, 스트레스받아야 하는 일, 이런 일들을 모두 나에게 시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회사가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소화시켜야 하는 역활, 회사 몸통의 쓸개 = 나 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회사가 그렇듯이 나를 소모품 정도로만 생각하는 이 회사에서 이제 내 쓸개처럼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수술시켜주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회사에서 쓸개인 나를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는 쓸개의 죽음이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쓸개인 나의 새로운 시작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결심한 나는 오래전부터 나에게 말버릇처럼 "이해했냐?"라고 계속 되풀이하는 그 사람에게 "이해가 사실은 전혀 되지 않는다"라는 느낌의 표정으로 속 시원하게 사표를 던졌다. 실제로는 건넸지만 내 머릿속 마음속에서는 그놈의 얼굴에 던진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회사 몸통의 쓸개였던 나는 스스로 수술하고 쓸개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이후에 저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브런치에서는 쓸개를 제거한 이 이야기로부터 한편 한편 시간을 거슬러 뉴욕에서의 이민자로서의 회사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아울러서 저처럼 쓸개를 혹은 그 무엇이 되었든 제거하신 많은 분들이 있으실 텐데 그분들의 상실을 공감하며 응원을 드리며, 아직 쓸개처럼 삶에 고통받고 계신 분들에게는 잘 버티실 수 있도록 글로써 심심한 에너지를 전달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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