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신호를 알아차렸다면 쓸개를 떼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가 사는 세상이 사실은 누군가가 기획했고, 그 안에서 나는 충실히 나라는 배역으로 살아가는 것 일뿐이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트루먼 쇼"에 보면 이 생각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영화 속 트루먼은 탄생부터 그의 삶 전체가 리얼리티 쇼에 기획된 부분이었고, 그는 그의 배역을 모른 채로 살아갈 뿐이었다. 트루먼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려 하지만 절대자(기획자)에 의해서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이 반드시 존재했고, 절대자는 이를 트루먼의 삶 속에 시그널을 주는 장치로써 운명을 설계했다.
우리들의 삶 속에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았던 것, 실패했던 것, 넘어졌던 것, 이런 부분들은 사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기획자가 당신의 삶 속에 시그널을 보낸 것은 아녔을까? 내가 만약 브루클린에서 넘어진, 새벽녘에 오래된 폴더폰이 분리되었던 그날, 만약에 회사를 그만두었다라면 내 나이 32에 쓸개를 떼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
밤 11:30분이었다. 오래된 나의 폴더폰에서 익숙한 벨소리 전화 한 통이 걸려왔는데, 이는 회사의 대표인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 게 있다. 벨소리를 따로 설정하지 않아도, 다른 전화들과 섞여 들어와도 업무 시간 이외에 걸려오는 받기 싫은 회사 상사 or 대표의 전화는 인간의 촉으로 필터링해낸다. 그는 내일 내가 반드시 해내야 하는 미션을 준다면서 뭔가 스파이 요원에게 미션을 주는듯한 어투로 대단한 이야기를 하듯이 약간은 들뜬 듯이 은밀하게 귓가에 속삭였다.
그가 이런 스파이 영화를 많이 봐서 일까? 영화 속 요원의 대장 놀이를 하고 싶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내용은 즉 이러했다. "내 이야길 잘 들어! 한 번만 설명해준다. 내일 새벽 5시에... 아니 4시가 좋겠다. 좀 일찍이 좋을 거야.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게 좋은 거야 일 보고 모닝커피도 한잔하면서 말이야, 이야기 잘 들어! A업체 문 열기 전에 가서 A업체 매장 앞 면적을 줄자로 좀 재서 가져와. 설계도에 되어있는데 이 설계도 사이즈를 도통 못 믿겠단 말이지" 나의 대답은 "알겠습니다"였고 전화를 끊고 나서 약간의 스트레스가 오는 것을 따듯한 물 한잔으로 누르면서 진정시킨 이후, 침대에 누워서 하얀 천장을 보니 몇 가지 의문점들이 속속 들 히 내 머릿속에 집합했는데, 아니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라고 해두자.
설계도가 가장 정확한데 왜 줄자로 재어 오라는 것일까?
새벽 4시에 그 지역은 위험한 지역인데 왜 나는 줄자로 그 매장을 재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내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업무인데 이 일을 나에게 시키는 대표는 무슨 생각일까?
너를 믿어서라고 말하겠지만, 이는 사실 내가 만만해서 일까?
출근시간이 9시인데 왜 나는 페이도 해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 새벽 4시부터 그 일을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기적인가? 단지 회사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부분인가?
뉴욕 11월의 새벽은 꽤나 추웠다. 나는 가방 속에 줄자를 챙기고 브루클린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어떻게 하면 줄자로 티 안 내고 빨리 사이즈를 잴 수 있을까? 왼쪽에서 누가 잡아주지 않고도 어떻게 하면 오른쪽 끝까지 정확한 치수를 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드라이브했다. 이름 모를 팝송을 듣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한적한 브루클린의 거리, 나는 차를 최대한 눈에 안 띄는 곳에 주차하고 대단한 사명감이라도 있는 것처럼 뭔가 엄청난 미션이라도 수행하는 요원처럼 손에는 총 같은 줄자를 손에 들고 거리로 나섰다.
새벽 공기가 차가워서 그런지 정말이지 사람이 없는 텅 빈 거리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위험한 이 거리, 새벽 4시부터 사람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빠른 걸음으로 경쟁 업체 A 매장 도착 후 유리로 된 윈도 안에 사람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실히 확인한 이후에 안심을 하고 줄자를 꺼내 들었다. 매장 앞 왼쪽 시작 부분은 돌로 줄자를 고정하고 줄자를 오른쪽 끝까지 길게 늘어뜨려서, 앞 면적이 얼마인지,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고 이제 됐다! 차로 복귀해서 커피 한잔 해야지! 생각이 드는 그 순간 뒤에서 영어 한마디가 들려왔다. Hey! What are you doing here? Man? 그림자가 드리워진 뒤를 돌아보니 내가 앉아있어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키가 190 정도는 되어 보이고 자메이카 국기 색상의 비니를 쓴 흑인 1명과 작은 친구 2명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냅다 뛰었다. 그들은 딱 보기에도 꽤나 위험해 보였고, 내가 당당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죄인이 된 것처럼 그냥 계속 뛰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그냥 뛰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참을 뛰다가 브루클린의 낯선 횡단보도 앞에서 나는 무엇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고, 차가운 아스팔트에 내 손바닥이 긁히는 동시에 듣기 싫었던 벨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렸던 내 오래된 폴더폰은 바닥 아스팔트로 날아가 두 동강 났다. 차에 치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폴더폰을 얼른 줍고 차가운 새벽 공기와 함께 계속 뛰어가던 그때, 그날 밤에 나에게 불합리한 일을 계속 시키던 그곳을 벗어났다면 내 나이 32에 쓸개를 떼어내지 않을 수 있었을까? 브루클린에서 넘어진 것이, 발에 무엇인가를 걸리게 한 것이 신이 나에게 보낸 시그널은 아닐까?
삶 속에서 시그널이 여러 번 찾아올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런 시그널들을 그냥 무디게 넘어가고는 하는데,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는 그런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브루클린에서 넘어진 그날이 그곳을 벗어나라고 삶이 나에게 던져준 시그널이 아녔을까? 생각해본다. 여러분의 삶의 시그널은 무엇이었을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이후에 저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브런치에서는 쓸개를 제거한 이 이야기로부터 한편 한편 시간을 거슬러 뉴욕에서의 이민자로서의 회사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아울러서 저처럼 쓸개를 혹은 그 무엇이 되었든 제거하신 많은 분들이 있으실 텐데 그분들의 상실을 공감하며 응원을 드리며, 아직 쓸개처럼 삶에 고통받고 계신 분들에게는 잘 버티실 수 있도록 글로써 심심한 에너지를 전달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