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승합차와 스타렉스를 보러 다녔지만 이게 과연 우리가 월세집을 정리하고 들어가 살 수 있는 캠핑카집이 되어줄지 아리송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친구들은 먹고, 자고, 산책하고, 놀고, 간식먹고, 또 자고
캉겐이가 마치 눈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러게 내가 뭐랬냐, 그냥 여기서 더 살지..."
그러다 3월의 어느 날,
대전 중고차 단지에 차를 보러 갔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한눈에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드는 봉고차를 만나게 되죠.
운명의 봉고차
기아 봉고3 밴
우리가 한국에서 갖는 첫번째 차였습니다.
한국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고,
우리는 대중교통 타는 것을 즐거워해서,
딱히 차가 있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못느껴 왔어요.
더군다나 친정아빠가 편찮으시면서 차가 없는 우리에게 사용하라며 아빠의 시골트럭을 여러번 건네주신 적이 있어 자차가 필요한 순간에 감사히 잘 사용하곤 했었거든요. 하지만 우리차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건 진짜 진짜 우리 차예요.
우리가 캉겐이와 대추도 마음껏 태워 줄 수 있는 그런, 우리차!
별 망설임 없이 봉고밴을 사들고 집으로 출발~ 붕붕붕
집으로 오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주유도 하고, 화장실도 들르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어라? 이게 왜 안열리지?
이것은 어떤 첫 신호였는데...
그걸 모르고...
고생시작... ^^;;
우리는 그저 보기에도 썩 괜찮은 것이, 캠핑카 변신 가능성도 무궁무진해 보이고, 예산에도 들어맞는다고 싱글벙글... 그랬습니다.
주유소에서 다시 출발하려는데 조수석 문이 열리지 않는거예요. 중고차 판매 아저씨에게 전화를 겁니다. 이래저래 설명을 드리니 카센터에 가서 고치면 몇만원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시네요. 차가 고장났거나 이상한게 아니고 기아 봉고차에 아주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라고 하십니다.
"그거 카센터 가서 고치면 얼마 안나와요. 기아 봉고차에 고질병 고질병."
"아 그래요...?
음..
흠...
네
네
알겠습니다."
얼마 안나온다는데 별 문제 아니겠죠?
고칠 때까지 운전석으로 타면되죠 뭐^^;;
집에 오자마자 기아 봉고차 문닫힘으로 굉장한 검색을 하기 시작합니다. 블로그/카페 글도 찾아보고, 동영상도 찾아보고, 우리에겐 유투브가 있으니 뭐든 할 수 있다구요. 으허허
대낮에 시작된 조수석 문 열기는 깜깜한 밤이 되서야 드디어 꺄 성공!
조수석 문은 열렸는데 우리 차는 만신창이가 되었군요. 크허허
밖에서나 안에서나 문을 열면 금속 연결고리가 잠금을 풀어줘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하니 문이 안열리는 것이였어요. 한동안은 저렇게 개방형?으로 타고다녔습니다. 조수석에 탈 때는 운전석으로 탑승하고, 내릴 때는 송곳을 들고있다가 문짝 철판 사이로 집어넣어 금속 연결고리를 눌러주면 문이 열렸어요.
어쨋든 우리 능력치 안에서 해결했다는 기쁨과 안도감이 몰려왔고, 문제해결능력이 쑥쑥 올라가는 것 같아 성취감마저 들었다면 믿으실런지... 그때 감정이 정말 그랬어요. 차를 가지고 집에 온 첫 날, 여보씨랑 밤 늦게까지 낑낑대다가 조수석 문을 열었을 때 그 환호는 정말! 하하하
덕분에 차 문열림이 작동하는 원리를 배웠습니다. 문짝의 플라스틱 덮개를 들어내면 저렇게 생겼다는 것도 처음 본 것 같아요.
어쨌거나 우리 넷은 정말 행복했지요.
캉겐이와 대추에게도 봉고밴 공간을 적응시킨다며, 아침산책을 갔다가 차에서 놀고, 저녁산책을 갔다가 또 차에서 노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진짜 봄이 오려나 봅니다. 나뭇잎들이 초록초록해지고 있어요.
봄꽃도 만개하기 시작하고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네요.
우리는 봉고밴도 구했겠다 본격적으로 이사나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봄은 이사하기 참 좋은 계절이잖아요.
대부분 정리하고 꼭 필요한 것들만 챙기기로 했습니다.
방 2개짜리 15평 공간에 이렇게나 많은 물건을 이고지고 살수있다니 짐 정리를 하면서 정말 놀라웠어요. 우리는 호주에서 한국으로 이사올 때 라면박스보다 조금 더 큰 종이상자 6개로 국제이사를 했습니다. 택배로 말이죠. 몇년 사이에 짐이 이렇게 많아질 수 있다니, 짐은 집 크기에 비례해 커진다던데 그렇다면 캠핑카에 살면서 짐이 자연스레 적어지길 바래봅니다.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겼다고 생각했는데도 나중에 우리 봉고밴은 말 그대로 꼭꼭 들어찬 만물상 트럭같았습니다. 다가 올 다른 회차에서 사진을 보고 놀라지 마세요, 크흐흐... ^^;;
4월 중순이 되면 이사를 나가야 합니다.
차량이 구해지니 짐 정리를 해서 봉고밴으로 이사를 하기까지 시간이 꽤 남아보여요. 일단 이사나갈 공간이 생겼다니 안심이었고 캠핑카로 내부를 개조하는 것은 살면서 조금씩 해도 될 것 같아 보이네요. 얼마나 불편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뼈저리게 느끼겠죠, 후후후
저는 비슷한 시기에 쿠팡에서 일용직으로 알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사나갈 때까지 조금씩이지만 돈을 모아놓으면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3개월 단기 계약직이라는걸 알게되죠. 3개월이면 짧잖아요, 그쵸? 여보씨가 열심히 돈을 벌던 시절이 있었으니 지금은 제가 3개월만 고생해서 줄고있는 통장잔고를 든든하게 만든다면 굉장히 좋을 것 같았습니다. 3개월 중 반은 지금 집에서 다닐테고 나머지 반은 이사를 한 후에 캠핑카에서 다니면 될 것 같았거든요.
여보씨가 짐정리를 하며 캉겐이, 대추를 건사하고 저는 쿠팡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원할 때 며칠씩만 일을 하다 3개월 계약직을 시작해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고난과 역경을 가져다줄지는 까막히 모른채, 후후후... 이 선택으로 우리는 업앤다운 감정의 기복을 크게 겪으며 밴라이프도 1년 뒤로 미뤄지게 되었지만 실제로 저는 물류센터에서 현장직으로 일 하는 것을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그래서 문제였죠^^;;
여보씨는 차량을 뜯어보기 시작했어요.
어이쿠 녹이 많이 슬었다며 보강해야 겠다고 했습니다.
차량 녹을 해결하는 도구들을 사서, 갈고 또 갈고, 뿌리고 또 뿌리고, DIY로 조금씩 괜찮아지는 모습을 보니 너무 신이났습니다.
캠핑카 전기를 위해 파워뱅크라는 것을 알게되고, 생전처음 와트와 암페어를 공부하면서 필요 전력량을 계산해보다가, 태양열 전기까지, 고루고루 관심과 공부는 참 많이도 했습니다.
이렇게 3월의 시간이 가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이 봉고밴 안에서 캠핑카살이를 시작하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삿짐만 잘 정리해서 차곡차곡 쌓아둔다면, 그러고도 잘 공간이 있다면, 그리고 또 가스버너를 사용할 공간이 작게 나온다면, 흠...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미니멀캠핑 영상도 참 많이 봐서 그보다는 훨씬 큰 공간이니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리는 신이 나 있습니다.
서로가 없는 시간에 각자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는지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날들이 많아졌어요.
저는 쿠팡으로 또 일을 하러 갑니다.
제가 쿠팡센터에 가서 일을 하고 있으면 여보씨는 오늘 이것을 했다며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고 둘이 재잘재잘... 그런 날들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