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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an 26. 2024

감옥

 의식이 서서히 돌아온다. 얼마 만에 깨어났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상황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그저 뇌의 활동만이 허락된 채 홀로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서성이며 방황하다 보면 존재에 대한 믿음이 간절해진다. 여기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얼마나 더 버텨야 할까? 과연 죽기 전에 그날이 오긴 할는지 장담할 수 없다.


 대략 짐작해 보자면 아마 10년 전쯤이지 싶다. 처음 살인을 저질렀던 그날. 막바지 무더위가 달궈놓은 대지와 공기가 저녁이 되어서도 쉬이 식지 않았다. 낮부터 마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거리를 걷고 있는데 젊은 커플과 시비가 붙었다. 사실 재호는 별 뜻이 없었는데 그놈이 보기엔 재호가 자기 애인을 보면서 침을 흘렸다고 생각했나 보다. 날아오는 주먹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재호는 쓰러졌고 곧바로 내가 등장했다. 눈빛이 확연하게 달라진 나를 보자 상대방은 잠시 주춤했지만 옆에서 거드는 여자로 인해 용기를 얻었는지 거칠게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남자 쪽은 그렇다 치고 만약 조용히 있었다면 여자는 분명 목숨은 건졌을 텐데. 사람일이란 그렇다. 한 치 앞을 모른다.


 눈을 뜨고 싶고, 걷고 싶고, 음식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나를 기다리고 나를 감싸는 것은 그저 어둠이다. 그런 어둠이 처음에는 몸서리치게 무서웠다. 또 차가웠다. 빠져나갈 길은 전혀 없으니 포기하라고 다그치는 확신에 찬 감옥. 차라리 뇌의 활동도 함께 멈췄으면 좋았겠지만 그들은 내가 편하게 있는 꼴을 순순히 봐줄 리 만무했다.


 도망가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없었으니 경찰 입장에서도 나를 찾아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내 뒤에 하나둘 꾸준하게 남겨지는 시체를 치우며 따라오는 수밖에. 재호에게는 충분히 사과를 했다. 편지와 영상으로 고백과 변명을 성심성의껏 남겼다. 그의 분노가 답장에 고스란히 묻어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은 나였다는 사실을.


 시간을 모르니 숫자를 세기로 했다. 번번이 중간에 까먹어서 의미는 없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다. 10년? 20년? 얼마나 남았을까? 과연 나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돌아가면 뭐가 달라질까? 그저 이쪽 감옥에서 현실이라는 저쪽 감옥으로 이송되는 다소 번거로운 절차만 겪어야 하겠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 감옥이 그리워 끔찍한 짓을 또 저지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사형을 당했으면 어땠을까? 그럼 수월하게 일이 진행되었겠지. 이건 다 예전에 내 몸에 불쑥 들어온 재호 때문이다. 하나의 몸에 두 개 이상의 인격이 머무는 경우,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곳에 수감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대다수였으니까. 때마침 정신 나간 사람을 연구하는 정신 나간 것들의 논문이 거든 것이 결정적이었다. 인격마다 서로 다른 뇌파와 서로 다른 유전자적 특성을 미묘하게 발산한다나 뭐라나. 그것을 주기적으로 측정 및 감시를 하다가 범죄자의 인격이 발현하면 발목에 찬 기계가 몸을 마비시키는 약물을 즉각 투여하게 되는 방식이다. 참으로 간편하면서 또 몹쓸 과학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하다. 각종 범죄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눈치를 보고 세(勢)를 규합하고 전쟁을 벌이거나 몇몇 괴팍한 관수들의 횡포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형을 사는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나의 인격이 죗값을 치르는 동안 발생한 공백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일부 보상을 해준다. 실제 감옥에서 먹고 자는 비용을 다달이 정산해서 통장에 넣어주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물론 내가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시간만큼이지만 한 명의 국민으로서 소외되지 않는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감사합니다. 납세자님들. 덕분에 재호도 별 불만 없이 나의 등장에 수긍하는 편이다.


 서서히 빛이 보인다. 곧 재호의 인격으로 바뀌게 될 모양이다. 숫자로 가늠해 보니 고작 두어 시간 남짓 지났을 뿐이다. 이래서야 언제쯤 형을 다 채우게 될지 답답하기만 하다. 재호에게 허락을 구해서 자는 시간을 나에게 양보해 달라고 해야 하나?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다소 힘들긴 하겠지만 이심동체인 우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할 처지이다. 가끔씩 면회를 오시는 어머니를 통해 내 뜻을 전달해야겠다.


 어? 빛이 등장하면 나는 한동안 사라지게 되어있었는데 이번에는 사뭇 다르다. 이건 진짜 빛이다. 형 집행이 끝나지도 않았을뿐더러 감형이나 모범수가 될 이유도 없는 마당에 무슨 일인지 당황스럽다. 설마. 내가 우려하던 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재호! 어딨어? 이 새끼야! 어디 있냐고?




 세상에는 살아있는 몸과 같은 수의 영혼이 존재한다. 불의의 사고로 육체에서 튕겨 나온 나의 영혼은 잠시 과격하고 지랄 맞은 놈의 몸에 임시로 머물게 되었다. 육신에 붙어 있지 않으면 영혼은 힘을 급격하게 잃어버리다가 소멸되니까. 빌붙어 사는 입장이다 보니 웬만하면 녀석의 의견에 동의하며 참고 견뎠는데 결국 꼴사납게 범죄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내가 주인인 듯 행세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려 20년이나 걸렸지만 마침내 원래의 내 몸으로 돌아갈 준비가 끝났다. 육체와 영혼을 이어주는 실타래가 점점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다. 녀석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 있다면 좋겠지만 홀연히 들어온 것처럼 또 그렇게 떠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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