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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끼적

by 김재호 Mar 25. 2025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내 움직임을 감지한 센서가 전등을 켠다.


변기에 앉아서 일을 보면 뒤처리를 해주고 알아서 물이 내려간다.


소변과 대변을 분석한 결과가 바로 업로드되어 이상이 없음을 알려준다.


거실로 나가면 간밤에 일어난 일을 간략히 정리해서 들려준다.


사건 사고와 정치를 싫어하는 나를 위해


스포츠와 연애 기사를 비롯한 가십거리가 대부분이다.


냉장고 문에 표시된 작은 원을 건드리면 문이 열린다.


냉장고가 비어 가는 것을 보니


곧 부족한 것들을 받게 될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공동현관이 저절로 열리고


자동차 근처로 가자 문이 열리며 시동이 걸린다.


목적지를 밝히지도 않았지만 

 

차는 알아서 움직인다.




회사에 도착해서 의자에 앉으면


나와 연동된 컴퓨터가


모니터에 해야 할 업무를 정리하여 List up 한다.


나는 AI에게 초안을 맡기고


다른 AI에게 검토를 시킨다.


그리고 전자 서명을 한다.


성과는 모르겠고


누군가 책임질 사람은 필요하니까.


점심으로 커피와 간식을 클릭하면


로봇이 내 자리까지 배달을 해준다.




집으로 돌아와 


정해진 식단에 맞추어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음식을 먹는다.


상대방의 취향에 맞추어 발송된 생일 선물에 대한 감사인사를 받고


몇 가지 후보군에서 골라 적절한 답장을 보낸다.


세련된 장비를 머리에 쓰고 잠시 기다리면 


어플이 매칭해 준 연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다.


소문에는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데


속았다고 해도 솔직히 큰 의미는 없다.




잠자리에 눕자 내 생활 패턴과 심리상태를 고려한


무드등이 켜지고 아로마 향기가 방 안을 채운다.


천장에는 유행과 선호도에 부합하는 영상이 이미 대기 중이다.


꿈이라도 꾸게 되면 뇌파를 감지하는 장비가


최대한 편안한 수면을 유도해 주겠지.


맞다. 이번 주말에 


아들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하긴 하지만


아무튼 아들을 만난다.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선별된 상위 10퍼센트의 사람들은


정자와 난자를 제공해야만 했다.


대신 정부가 기관에서 아이들을 도맡아 키운다.


그나저나 나는 우리가 함께 있는 그 자리가 너무 싫다.


고작 한 시간밖에 되지 않지만


어색하고 또 어색해서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아이와 정부를 위해서는 꼭 그래야만 한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다.


잡념이 길어지니 방안에 수면 유도 가스가 차오른다.





자동이 아닌 수동이었던 내가 어렴풋하다.


나는 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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