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일러 문 Apr 18. 2024

고양이 ASMR

그대들의 평안을 염원합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한 번씩 가슴이 아릿,하다. 이 벚꽃들을 죄다 쥐어뜯고 싶다던, 어느 어머니의 마음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매해 무정하게 봄이 돌아올 즈음 그들의 마음을 감히 다 헤아릴 수도 없어 걸음이 멈춰지곤 한다. 계절은 아름답게 돌아오고, 세월은 속절없이 흐른다. 하필이면 이름도 세월호라 세월이 가도 이 세월 속에 묻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일이었다.



이제 막 백일의 기적을 맛본 둘째 아이를 품에 안고 수유를 하다 속보를 들었다. 뉴스에 담겼던 그날의 상황이 아직도 선하다. 눈앞에 기울어진 배를 보고도, 창문 너머의 아이들을 눈으로 보면서도, 점점 가라앉는 배를 눈앞에 두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절망적이었던 그 무력함이 여전히 낯설지 않다. 그 공포를 마주하게 될까 여직 우물 안의 개구리, 쫄보인생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그 공포와 슬픔의 층을 한 겹 한 겹 오롯이 관통하여 더 괜찮은 세상을 만들어 가자 용기를 낸 분들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송해진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품에서 먹고 자는 게 온 생이었던 아이는 발냄새를 풍기는 십 대 아이가 되어 있지만, 세월에 조금은 단단해졌다 해도 나는 여전하다. 오래도록 보고 싶었던 지인들의 조문을 가는 빈도가 잦아졌더래도, 한 생의 마감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밤사이 안녕, 이라더니 한 생은 소멸하였고, 새로이 한 생은 시작되었다.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마음을 다잡는다.



조금 더 괜찮은 세상을 살아갈, 조금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갈 힘을 비축하려 루루를 쓰다듬는다. 털을 고르며, 운명을 다한 털을 떼어내듯 실체 없는 불안과 걱정들도 함께 골라낸다. 보드라운 털의 촉감과 그르릉 그르릉, 들려오는 골골송에 마음의 소란이 사그라드는데... 이것이 바로 집사만이 받을 수 있는 안정, 나의 고양이 ASMR이다.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하늘에 있을 그대들과 10년의 세월을 잘 견뎌준 다른 그대들의 평안을 염원하는 나의 위안, 고양이 루루 ASMR을 나눈다. 그대 부디 평안하시오.

   

집사의 위안1. 루루의 골골송


집사의 위안2. 오독오독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 정호승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그대를 만나러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길이 없고
그대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아직 선로가 없어도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푸른 바다의 길이 하늘의 길이 된 그날
세상의 모든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이 통곡하고
세상의 모든 등대가 사라져도
나는 그대가 걸어가던 수평선의 아름다움이 되어
그대가 밝히던 등대의 밝은 불빛이 되어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한배를 타고 하늘로 가는 길이 멀지 않느냐
혹시 배는 고프지 않느냐
엄마는 신발도 버리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아빠는 아픈 가슴에서 그리움의 면발을 뽑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주었는데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긴 먹었느냐

그대는 왜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것인지
왜 아무리 보고 싶어 해도 볼 수 없는 세계인지
그대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잊지 말자 하면서도 잊어버리는 세상의 마음을
행여 그대가 잊을까 두렵다

팽목항의 갈매기들이 날지 못하고
팽목항의 등대마저 밤마다 꺼져가도
나는 오늘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
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이전 12화 미묘는 괴로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