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을 찾게 된다. 이성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편이어서 쉬운 길도 멀리 돌아가는 일이 많았기에 실리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내가 효율을 생각하고 있다. 낯선 변화를 마주하고는 오래도록 응시하고 있자니, 이 바람은 무언가 싶다.
여름은 바야흐로 수박의 계절이 아닌가. 빨간 수박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씹으면 달콤하고 시원한 과즙이 우물물 터지듯 뿜어져 나온다. 낮동안 잃은 수분을 보충할 요량으로 여름동안 수박을 달고 사는 집에선 수박을 깍둑 썰어 용기에 정갈하게 담아 냉장고에 착착 넣어두어 언제고 목마른 자에게 기쁨이 될 채비를 해두는 것이 국룰 아닌 족롤. 작업을 마친 주부의 마음은 마치 평안한 노후 준비를 완비한 것같이 그리 든든할 수가 없다. 그런 여름의 기쁨인 수박이 최근 효율의 기준에서 탈락했다.
수박을 사서 손질할 때면 잘라내는 껍질의 양이 상당하여 초기 손질을 하고 나면 잔해물이 음쓰봉 2개를 가득 채운다. 이쯤 되면 수박을 사서 버리려는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효율의 기준에선 당장 탈락이지만, 맛나게 먹어주는 서 씨들 덕에 일단 참을 인. 맛있는 부분부터 귀신같이 골라 먹고 수박 자투리들만 남게 되면 수박 껍질도 아닌 것이 수박 껍질 맛을 내는 비인기 부분이기에 기어이 가위바위보 진 사람이 먹기의 벌칙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게 참을 인 두 개 플러스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다가 영면하신 냉장고로 인해 작은 냉장고로 버텨야 하는 올여름, 참을 인 세 개가 되어 탈락하고 만 것.
아들의 수박 노래는 진즉에 시작되어 쇄도하고 있건만, 이 핑계로 구매 횟수를 3에서 1정도로 줄였다. 수박 귀신들이 엄청난 활약상을 보이는 시기에는 이틀에 한 통을 해치우는 화려한 성과를 보이며 단골 과일집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과일귀신들의 만족을 위해 수박이 아닌 다른 과일 구매로 여전히 문지방은 닳도록 드나들고 있지만, 수박을 들고 나오지 않는 발걸음이 어쩐지 무겁다. 배꼽이 작고 선명한 줄무늬를 가진 뽀얗게 분이 나 있는 녀석을 들고 나오는 그 만족감은 다른 과일들로 채워질 수가 없는 모양.
모처럼 수박을 한 통 안고 퇴근한 아빠 덕에 남매가 신났다. 참을 인의 요소를 좀 줄여보고자 깍둑 썰어 자투리스러운 부분들은 쥬스용으로 과감하게 냉동실행, 맛난 부분으로만 한 대접 대령하니 게 눈 감추듯 잘들 드신다. 자연의 당이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 모두가 하하호호 웃음과 사랑이 난무했던 행복한 여름밤이었다. 여름엔 수박이지.
그렇다면 얼린 자투리 수박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날이 또 무더우니 믹서로 갈갈갈 수박 쥬스나 슬러쉬를 만든다. 시원하고 달달한 맛으로 애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니, 이 주문도 쇄도하고 있다. 최근 찾은 환상의 조합은 얼린 수박에 한살림 딸기 쥬스 함께 갈기. 학교 앞에 주씨 가게를 차려야 한다며 쌍따봉을 날리는 녀석들 덕에, 처치 곤란의 수박 자투리도 쓸모를 찾고 효율 어쩌고 저쩌고는 넣어두었다는 이야기이다.
오랜 응시로 어느 정도 내린 결론은 요즘 내가 찾는 이 효율이라는 것이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많은 일들의 선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간극을 줄이자니, 효율을 찾게 된다.
인생 반 정도 왔으려나. 운이 좋다면 앞으로 이만큼의 시간이 더 허락될 터인데, 이제는 해야 하는 일에만 매달려 동동 거리며 살고 싶진 않다.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당연히 어른이 되는 동안의 경험으로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는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것은 진즉에 알았고, 지금까지는 어찌 보면 해야 하는 일들을 주로 삼고 그 안의 작은 작은 행복을 부로 만들며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이 둘의 밸런스를 맞추어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간극을 줄여가는 것이 숙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