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루루가 문 앞의 쿠션에서 앉아 있다. 나는 이렇게 무심히 바라보는 루루의 표정을 좋아한다. 그냥 지나다 방 안에서 무얼 하는지 깜깜무소식인 집사의 안부가 궁금해 잠시 기다렸던 것뿐이라는 이 표정과, 정확히 문 쪽을 향해 앉아 있어 문을 열자마자 눈이 마주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마음을 다 드러내지 않으나 알 것 같은 이 마음, 귀하디 귀하다.
가족들이 모두 잠이 든 밤, 우리 둘만이 깨어 눈을 맞추고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며보내는 이 순간이 문득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부쩍 선선해진 밤공기도,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평화로이 잠든 내 가족들도, 내 곁의 루루와 밤하늘의 달님까지도.
잘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문앞의 쿠션에서 루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낮의 공기도 처서를 기점으로 제법 선선해졌다. 이따금 소파에 앉아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거나 무언가를 읽고 있노라면 슬며시 다가와 곁에서 낮잠을 청하는 루루. 배를 보이고 벌러덩 누워 아기처럼 단잠을 잔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쪽잠을 자던 시절도 전생 같다. 함께 사는 이 공간을 진정 안전하다고 느끼는, 집사들을 신뢰하는, 그 마음이 너무도 쉽게 읽혀 뭉클한다. 집고양이로서 평생을 아기고양이의 마음으로 살 루루를 보니 집사는 사뭇 비장해지는데..... "엄마가 지켜줄게. 엄마가 행복하게 해 줄게." 모성애란 이리도 무서운 것이다.
주간루루의 마지막 연재를 앞두고 이런저런 아련한 마음에 도무지 무어라 운을 떼어야 할지 모르겠어 깜빡이는 커서만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고민하는 내 곁에 그녀가 다가와 연재 마무리를 자기가 해보겠다는 듯 키보드를 눌러댔으니 "8ㅕㅛㅑ7-ㅔ[;=] ㅡㅓㅠ ㅡㅓㅠㅜㅗ" 독자들에게 전하는 루루의 소감이 되겠다. 좀처럼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감사의 마음 정도 되려나.분명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녀석의 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렴풋이 전해지는데, 과연 나의 마음은 루루에게 잘 전해지고 있을까. 집사는 일생을 말로 마음을 표현하며 살아온 까닭에 말을 건넨다.
"루루, 아이 예뻐."
"루루야, 배고파?"
"루루야~ 사랑해~."
"루루야, 심심해?"
"루루, 츄르 줄까?"
"냐~~~~~앙."
배려심 깊은 루루가 집사의 말에 대답을 해주니 황송스럽기 그지없다. 물론 고양이의 언어라 집사의 해석이 필요해도 나름 잘 통하는 것 같다. 특히 먹는 것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달라는 자와 주어도 주어도 더 주고 싶은 자의 질주는 보통 '건강'이라는 브레이크에서 좌절되곤 하지만 금세 마음을 추스른다. 털 빗기, 창문 보기, 숨바꼭질, 멍 때리기, 사냥놀이 등 먹는 것 말고도 함께 해서 즐거운 일이 많기에. 더 많은 행복의 날들을 함께 걸어갈 것을 알기에 말이다.
"냐~~~~~~~~~~앙."
무심하면서도 다정한루루 덕에 집사는 일상과 마음을 돌보며 건강하고 자주 웃는 삶에 가까워졌다. 행복해서 웃는 것인지, 웃어서 행복해지는 것인지 모르긴 몰라도... 마주 하는 눈빛에서, 쓰다듬는 손길에서, 함께 한 네 계절에 담겼을 온갖 따스함과 행복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고, 눈인사를 나누고, 물을 갈아주고, 낚싯대를 흔들어주는 매일 비슷한 날인 것 같아도 조금씩 다른, 소중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다. 집사가 고양이를 돌보는 것인지, 고양이가 집사를 돌보는 것인지 모를 하루들이흘러간다. 부디 잔잔하고 아름답게 오래도록 흘러가기를, 그러는 동안 수많은 행복의 순간들이 켜켜이 쌓이기를... 바라며.... 알 수 없는 먹먹함으로 이 밤의 끝을 잡고 있는 집사와 고양이 루루의 행복을 전한다. 고양이는 그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