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바라던 고양이가 우리에게 오던 날, 막내는 아기 고양이가 든 케이지를 품에 안고 조심조심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울먹였다. 첫째인 햇님이가 태어나던 날, 분만실 복도를 성인 남자의 울부짖음으로 메아리를 일으켰던 아빠와 비슷한 결의 아이라 그랬을까? 비로소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이하며, 막내는 햇님이를 처음으로 대면했던 그날의 아빠를 떠올렸다. 고양이를 품에 안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면서도 물기가 묻어 있어 아들이 진지를 넘어 경건함에 가깝게 이 가족의 탄생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늦여름의 밤, 그렇게 우리는 다섯 식구가 되었다.
아침이 밝아오면 잠이 달아나지도 않은 눈으로 루루를 찾고, 잠이 들기 직전에도 루루에게 달콤한 밤인사를 건네는 아들 별님이. 온종일 루루를 보고 안고 부비는 것으로도 모자라,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하고 같이 식빵을 구우며 온몸으로 그 사랑을 꺼내어 표현하는 것을 보니 역시 이 녀석도 나중에 꽤나 서윗한 남자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이 역시도 예정되었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서가 문중에는 등신의 피가 흐르는 것 같기에. 아버님은 아가씨 밖에 모르는 딸바보, 남편은 햇님이 밖에 모르는 딸등신, 아들은 고양이 동생 루루 밖에 모르는 루루등신…
딩동, 엄마는 벨소리에 경쾌한 발걸음으로 달려간다. 기다리던 택배의 도착. 집정리를 위한 트레이들을 주문했던 덕에 그것들이 담긴 큰 박스를 들고 오자, 아이들이 더 신나라 한다. 고양이는 박스를 좋아한다며 루루의 집을 만들어주겠다는 쿵짝이 잘 맞는 남매. 캣타워에 방석, 케이지, 집 여러 곳의 루루전용 지정석 등 자가가 몇인가, 우리 루루는 정말 좋겠다.
자기들 갓난 아기일 적에 썼던 담요를 가져와 폭신하게 깔아주고는 예쁘게 박스를 꾸며준답시고 사브작사브작,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든다. 여러 버젼의 루루 모습 그림, 그리고 집사의 바람과 사랑 고백의 낙서들. 루루를 향한 사랑이 여기저기 난무하다. 커튼을 좋아하는 루루를 위해 낮에 낮잠도 잘 자라고 커튼을 만들어 준다는데... 부디 엄마는 부피까지 큰 예쓰(예쁜 쓰레기) 만은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루루야 오빠랑 100년 살자’라니. 사실 엄마집사는 요즘 별님이가 오빠 소리를 달고 사는 것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면서도 당황스럽기도 하다.
워낙에 어리숙하고 서투른 별님이에 대한 걱정이 깊어 셋째를 잃고 일찍이 공장문을 닫은 생산의 역사… 어느새부턴가 서두와 말미마다 “오빠가 해줄까?”, “루루야, 오빠가 말이야.” 오빠, 오빠, 루루오빠를 자처하며 루루를 살뜰히 살피고 위하는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을 했나 싶다. 그런대로 참 아름다운 가족이 되었을 것도 같은데 말이다.. 여담으로 필자가 남편을 ‘오빠’라 불러온 탓에 햇님이가 어릴 적에 아빠를 ‘오빠’라 부르기 시작하며 웃고 지냈던 기억이 있다. 딸내미가 자라면서 쉽게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들을 ‘오빠오빠’ 부르겠구나 싶어 딸이 부를 수많은 오빠야들을 걱정은 했다만, 아들 입에서 ‘오빠’ 소리가 나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는데,,, 허허허 역시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아이들이 만들어준 집은 루루의 최애 거처가 되어 있다. 낮잠을 좋아하는 루루는 창가 캣타워에서 광합성을 즐기며 단잠을 즐기는데, 요즘은 부쩍 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아이들의 넘치도록 충만한 사랑이 가득 담긴, 아늑한박스집이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싶으면 어김없이 여기에서 루루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랑에 취했는지 잠에 취했는지 루루는 거나하게 취해 젤리를 간지럽혀도 깰 생각을 않는다. 루루와 아이들의 마음이 귀여워 한참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빼꼼 얼굴을 내미는 녀석, 크헉 - 집사는 항상 심쿵사를 조심해야 한다. 몹시도 유익하지만 유해할 수 있는 치명적인 매력의 고양이이기에.
별님이는 오늘도 제 내복상의를 해먹 삼아 루루를 배에 넣고 다닌다. 루루도 오빠의 해먹 내복이 편안한지 수염까지 늘어뜨리니, “어화둥둥 우리 루루~” 아들은 노래까지 불러주며 리듬감 있게 사알사알 해먹을 흔들어 준다.
“엄마, 엄마도 우리 뱃속에 있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어요? ”
“별님이, 어떤 기분이 드는데?”
“세상을 다 가진 기분^________^”
열한 살 무렵의 기억을 더듬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나 떠올려 본다. 유쾌하고 즐거운 날들이었지만 세상을 다 가진 정도의 기분은 아쉽게도 저 나이에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일찍이 그 감정을 느끼고 잘 지켜내고 키워가고 있는 저 아이의 마음이 더없이 근사하게 느껴지는 밤.
우리집 막내 고양이를 통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끼는, 고양이를 더 많이 사랑해주고 싶은 더없이 근사한 마음을 가진 어린 집사의 행복을 나눈다. 고양이는 그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