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O선이다. 항렬을 나타내는 돌림자와 착할 선(善)의 더함으로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 할아버지께서는 착하게 살라는 절대선의 부적을 이름에 넣어주셨다.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피플 플리저의 역사가 시작되었을까.
피플 플리저 :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사람을 의미.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빠진 사람을 people pleaser라 한다. 이들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매우 열정적이며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무시하거나 억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출처 : 내 영혼을 다독이는 관계 심리학
젖병을 베개에 괴어 두면 한 통을 다 비우고 고개를 살짝 움직여 이내 또다시 잠에 드는 착한 아기였다고 했다. 자고로 아이는 잘 때 최고로 예쁘고 잘 먹을 때 참 예쁜 법, 잘 먹고 잘 자는 태생에 착한 아이였다고, 거저 키운 고마운 자식이라며 부모님은 가끔 말씀하시곤 했다.
특별히 모난 구석 없이 때때로 겪었던 인생의 시련들도 담담하게 버텨냈고, 그러다가도 몸의 수문이 왈칵 터져 눈물 콧물 쏟아지는 날들이 잦았지만 그럼에도 착한 삶을 살려 애썼다. 네가 착해서 그래, 너는 착하니까- 라며 일방적으로 정리되는 상황 속에서도 절대선을 위해 기꺼이 내가 무리하는 편을 택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로 알고 부단히 착하게 살려고 무리했던 날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에 작은 구멍이 났다. 내 인생을 살면서 내가 뒷전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될수록 작았던 구멍이 기어이 구덩이가 되었고, 마음 속 구덩이는 공허하게 커지고 있다. 이러다간 그 구덩이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참고 양보하고 사과하고 이해하는 것에 염증이 나는 걸 보니, 아마도 부모님의 말씀처럼 태생에 착했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선천적인 착함보다는 후천적인 노력과 세뇌에 가까웠던 삶. 아무래도 이 선善 때문인 것 만 같다고 공연히 귀인을 해본다. 자꾸만 꾹꾹 눌러 OO선 내 이름을 써온 이유로, 선아~ 선아~ 이렇게 불렸던 이유로 착함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절대선의 족쇄에 스스로 갇혀버린 느낌이랄까.
그리하여, 할아버지께서 주신 절대선의 부적을 바꿔보기로 마음 먹었다. 새삼스레. 이름의 족쇄가 축복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나의 탄생을 축복하며 선물로 주신 착할 선의 부적으로 사십을 감사히 살았으니, 이제 내 생의 반은 내가 고른 부적으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 할아버지 하늘에서 노하시려나.)
주욱 옥편을 살펴보았다. 뭐가 좋을까. 愃 너그러울 선? 그래,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좀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어. 仙 신선 선?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하며 아무 근심 없이 평안하게 신선놀음하며 살아도 너무 좋겠다. 璇 아름다울 선? 좋지 좋지, 곱고 예쁜 것은 좋으니까. 敾 글 잘 쓸 선? 이왕이면 글욕심도 내볼까?
굳이 부적을 바꾸기로 하면서 꼭 하나일 필요는 없으니까, 모두를 부적으로 삼기로 한다.
이젠 착함을 넘어 너그러운 마음으로 신선처럼 근심 없이 평안하게~ 아름답게 살다가 글도 한 번 잘 쓰며 살아보겠다는 오늘의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