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브런치북을 시작하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생활은 설렘과 행복으로 가득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매일이 도전이었고, 눈물과 웃음이 뒤섞인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내이자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며 펼쳐지는 시집살이의 애환,
그리고 좌충우돌 시행착오 속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함께 성장해 가는 엄마의 마음을 담아가려 합니다.
이 글은 저의 성장 일기이자,
모든 엄마와 며느리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에게, 또 저의 며느리에게 전하고 싶어요.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추억서랍] 브런치북에서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5년의 연애 끝에 우리는 드디어 부부가 되었다. 첫아이가 찾아오며 서둘러 올린 결혼식이었지만, 가구 하나, 커튼 하나도 신중하게 고르며 꾸민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설레는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신혼집은 시댁과 친정의 중간쯤에 마련했다. 무엇보다 출산 후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혼 후 맞이한 첫 명절, 시댁에서 처음으로 명절을 치르며 나는 깨달았다. 이제부터 진짜 며느리의 세계가 시작됐다는 것.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결혼 전에는 엄마가 해주는 것을 손님처럼 받아만 먹었다. 차려주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서둘러 나간 적도 많았다. 그랬던 내가 부엌에서 하루 종일 상을 차리고 또 치웠다. 어머님은 연신 “막내야~”를 부르시며 이것저것 주문하셨다. 몸은 고되고 친정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 생각이 나며 화장실에서 혼자 훌쩍이기도 했다.
연애할 때는 미처 몰랐는데, 시댁에는 찾아오는 손님도 많고 제사도 많았다. 아버님이 종갓집 장손이라 3대 조상님을 모시고 있었고, 명절 차례까지 더하면 한 달에 한 번꼴로 제사가 있는 셈이었다.
출산 예정일을 사흘 앞둔 그 날도 제사가 있었다. 그는 3형제 중 막내였지만, 시댁과 가장 가까이 사는 우리 부부가 종종 제사를 함께 지내곤 했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한 뒤 시댁으로 향했다.
어머님과 함께 제사 음식을 준비했다. 어머님이 반죽을 만들어 주시면 나는 전을 부쳤다. 부엌 앞에 앉아 전을 부치고 있는데, 배 속의 아기가 톡톡 발길질을 했다. 한 손으로는 배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전을 뒤집었다. 기름이 지글지글 튀는 소리 사이로 그가 빨리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퇴근하며 들어오는 그가 왜 그렇게 반갑던지, “힘들었지?”라며 내 등을 토닥이는 그 한마디에 그날의 수고로움이 녹아내렸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던, 여름이 시작된 무더운 날이었다. 이른 제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와 기름 냄새와 땀이 밴 옷을 벗고 깨끗이 씻었다. 낮에는 제법 발길질을 하던 아기가 잠잠했다. 아기도 힘이 들었나..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몸이 무거울 대로 무거웠다. 조심조심, 이불 위에 막 앉으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아래로 물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깔고 있던 이불이 흥건히 젖어 버렸다.
놀란 나는 급히 그를 불렀다.
“자기야? 아기가 나오려나 봐…”
그는 눈이 동그래져 당황한 채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오셨다.
다니던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양수가 터진 거라며 진통이 3~5분 간격으로 진행되면 병원으로 오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양수가 터졌는데도 배는 아프지 않았다. 그저 양수가 없으면 아기가 힘들까 봐 그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배가 조금 아파오기 시작하자 진통 간격과 상관없이 우리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불안한 마음에 더는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가 밤 10시를 막 넘긴 시각이었다.
호출을 받고 나온 의사는 나를 살펴보더니 “초산이라 쉽지 않겠네요. 조금 더 지켜봅시다.”라고 말한 뒤 진료실을 나갔다. 정기 진료 때에도 아기 머리는 크고 내 골반은 작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옆에 있는 그의 손을 꼭 잡으니 두려움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통 간격이 점점 짧아졌다. 진통이 멎는 사이,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잠이 쏟아졌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지금은 자면 안 된다.”며 나를 계속 흔들어 깨웠다. 그는 간이침대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이 가까워져 오며 점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는 벌떡 일어나 “괜찮아?” 하고 묻고는 잠시 나를 지켜보다가 다시 코를 골며 잠들어 버렸다. 나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태평하게 잠든 남편이라니, 그 순간은 참 야속하기만 했다. 엄마도 그때 일이 못내 서운했는지,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내시며 슬쩍 타박하곤 하셨다.
진통이 8시간을 넘어가자 나는 "그냥 수술해 달라"며 의사를 불러 달라고 엄마에게 생떼를 부렸다. 아기를 낳으려면 하늘의 별을 본다더니, 정말 눈앞이 하얘지고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엄마는 안타까운 얼굴로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순산할 수 있어, 그래야 니 몸이 더 편해, 호흡을 해! 호흡을!"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 속에서 엄마를 따라 호흡하며 마지막 힘을 짜냈다.
아기는 세상에 나오기 위해, 나는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아기 머리가 보여요. 좀 더 힘내세요!" 간호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침 7시 30분. 3.8kg. 9시간여의 진통 끝에 마침내 첫아이를 품에 안았다. 첫울음을 터트리는 아기를 바라볼 때의 황홀함을 잊을 수 없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였다. 배 속에 있던 아기를 눈앞에서 마주한 그 순간, 비로소 나는 ‘엄마’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세상 모든 엄마에게, 나의 엄마에게 경외심과도 같은 존경심이 절로 우러났다.
아기는 신기하면서도 너무 예뻤다.
P.S. 연재가 늦어졌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한 편 한 편 따뜻한 이야기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여러분의 하루가 고운 빛으로 물들길 바랍니다.
작가 김수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