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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이다, 유난

3. 엄마 마음

by 김수정


너를 만난 후

나의 하루설렘으로 가득했다.


처음 뒤집기를 하던 날,
처음 “엄마”라고 불러준 순간,
처음 두 발로 서서 걸음을 떼던 날.

그 하루들이 지나니

엄마가 되어 있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내 세상은 오로지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아기가 자면 같이 자고 아기가 일어나면 같이 눈을 떴다. 먹이고 재우고 틈틈이 우유병도 삶고 아기 빨래와 다른 집안일을 하다 보면 하루해가 짧았다.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쌔근쌔근 잠든 아이 얼굴을 바라보면 금세 마음이 말랑해졌다.


하지만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엄마 역할이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기가 울면 왜 우는지, 아프면 왜 아픈지 알 수 없어 그때그때 대처하는 게 미숙하기만 했다. 아기는 예쁘고 천사 같았지만, 그런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었다. 그 작은 몸으로 온 힘을 다해 우는 아기를 달래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가장 힘든 순간은 아기가 아플 때였다. 큰아이는 백일이 지나며 잔병치레가 잦아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 너무 따뜻하게 싸서 키운 나의 육아 방식이 문제였을까. 어른들은 “시원하게 키워야 한다.”고 하셨지만, 나는 꽁꽁 싸서 키웠다. 그래서 면역력이 약해진 건 아닐까 자책하기도 했다. 더구나 친척들이 자주 모이는 집안 행사나 명절을 지내고 오면 어김없이 며칠은 병치레를 했다.


그때는 아기가 아파도 시댁에 가야 했고, 또 시댁에 가면 아기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겨우 재워놓은 아이를 뒤로한 채 부엌에서 음식을 하다 보면, 어느새 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허둥지둥 방으로 달려들어 갔다.


나중에서야 큰 형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동서가 순식간에 없어진다니까. 한 번은 부침개를 하다 말고 사라져서, 그사이 다 타버렸지 뭐야. 아기 본다고 말이라도 좀 하고 들어가지.”


정말 그랬다. 내 마음은 온통 아기에게만 가 있었다. 설거지하다가도 울음소리가 들리면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고 달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은 “유난스럽게도 키운다.”며 걱정 섞인 책망을 하셨다. 아기가 울면 금세 조바심을 내던 나와 달리, 어른들은 좀 더 무던한 마음으로 키우길 바라셨다. 그때는 어른들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우는 아기를 느긋하게 바랄 볼 여유가 초보 엄마인 나에게는 없었던 것 같다.


아픈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일도 힘든 일 중 하나였다. 내가 살던 시골에는 소아과가 없어서 병원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30분을 나가야 했다. 자가용도 없던 때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병원에 다녔다. 오가는 길과 병원에서의 긴 대기 시간까지, 더운 날이면 더위에 지치고 추운 날이면 아기를 안고 몸을 잔뜩 웅크리곤 했다. 그래도 가까운 곳에 보건소가 있어 예방접종만큼은 제때 수월하게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 번은 장염에 걸려 열이 40도 가까이 오른 적이 있다. 추운 겨울밤, 작은 아기는 차가운 응급실 침대 위에서 발가벗은 채로 열이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계속되는 검사와 의사, 간호사의 낯선 손길에 놀란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지켜보는 내 마음은 안쓰러움에 쪼그라들었다.


그렇게 수시로 잔병치레를 했지만,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으면 다행히 잘 회복되었다.


그런데, 돌이 다가오던 즈음의 감기는 달랐다. 며칠 열이 계속 나더니 기침이 시작되었고, 약을 먹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빨리 큰 병원에 가보라고 말했다.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택시를 타고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엑스레이를 찍자 폐 쪽이 온통 희뿌옇게 나타났다. 내 눈으로 보기에도 크고 선명하게 보였다.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종양일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말을 내뱉었다. 일단 입원한 뒤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하루하루가 애가 타들어 가는 날들이었다. 아기에게 주사를 놓는 일이 반복되면서 아기의 손과 발은 온통 바늘 자국으로 얼룩졌다. 아기가 움직임이 많으니 주삿바늘이 빠지기 일쑤였고 나중에는 머리 혈관에까지 주사를 놓아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안쓰러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잘 돌보지 못한 내 탓 같아 마음이 무너졌다.


며칠 후 다시 찍은 엑스레이 검사에서 폐 속의 희뿌연 모양이 처음보다 작아져 있었다. 의사는 폐렴이라고 진단하며 다행이라고 말했다. 원망과 안심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아이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었다.


한숨 돌렸지만,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엄마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거였다.




이제 나는 시어머니가 되고, 또 할머니가 되었다. 며느리가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며 그때의 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유난스럽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아이를 키웠기에, 나는 며느리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시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나도 그때의 부모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고,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돌아보며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요즘은 내가 아이를 키우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아 어른들의 말씀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유튜브나 SNS에 육아 정보가 넘쳐나고 육아템 추천까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아기에게 향해 있는 엄마의 눈과 귀, 그리고 정성과 사랑일 것이다.


며느리는 홈 캠이 연결된 휴대폰으로 잠든 아기를 수시로 살펴본다. 주방에 있다가도, 거실에 있을 때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달려간다. 나는 듣지 못한 작은 소리도 며느리는 금세 알아차린다. 그럴 때면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고 달려가던 초보 엄마 시절 내 모습이 그대로 겹쳐 보인다. 나와 닮아 있는 며느리 모습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참 유난이다 유난' 그래도 나는 안다. 그 유난 속에 얼마나 큰 사랑이 숨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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