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와 발달장애를 가진 내 동생의 특별한 이야기
언제였을까? '장애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한 게. 아마 유치원 때였을 거다. 기억이 흐릿한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엄마와 동생을 따라 자연스레 장애인복지관 및 센터를 다녔다. 그때 봤던 아이들이,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똑같은 아이들, 내 친구들, 내 동생들이었다.
나는 늘 동생과 함께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음식을 먹을 때도, 24시간 중 깨어있는 시간은 모두 동생과 함께였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까지도 늘 3살 차이의 동생을 끼고 살았다. (중학생은 여중/남중으로 각각 흩어지게 되었다.) 동생이 내 바운더리 안에 있어야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여하튼, 유치원 때 즈음 많은 친구들과 교류를 하며 내 동생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 동생이니까. 남들이 동생에게 이상하다 손가락질해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봐도 괜찮았다. 내가 '감내'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나의 삶이자 일상이었다. 이건 아마 부모님의 사랑 덕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족 구성원이 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를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초등학생 저학년 때인데, 동생이 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A라는 친구와 급속도로 친해져 나와 엄마, 동생은 A의 집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A는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였다.
그리고 A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는데, 초등학생 나이인 내가 봐도 그 형이 인사도 잘해주고, 잘 놀아줘서 참 편하고 좋았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갑자기 안방에서 A의 옅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동생을 내버려 두고 잠시 나와 안방으로 향해 문을 연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A의 형은, 침대에 A를 눕혀두고 목을 조르고 있었다. 아주 세게. '죽어, 죽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A는 늘 있는 일인지 크게 저항하지 못했고, 그저 으.....으으..으어 하는 비명소리만 내뱉었다. 이건 분명히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동생을 더욱 소중히 아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동생, 그리고 자폐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어딘가에서 저렇게 학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저런 학대를 받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어린 나이에.
가족이란 무엇인가? 보호자란 무엇일까. 가족 구성원의 장애는 내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장애를 가진 가족 구성원이 겪는 현실과, 그들이 얼마나 쉽게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했다. 장애라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도모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 것도 느꼈다.
아무튼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그 역할과 의미에 대해 지금까지도 깊이 생각한다. 동생을 돌보는 것은 단순한 책임감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더욱 강해지고 성숙해졌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동생과 같은 아이들이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으며, 지금은 아나운서를 꿈꾼다. (세부 이야기는 추후에..) 아마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이 고민은 긍정적인 스트레스이며, 내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 중요한 나침반이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 써 내려갈 글을 통해 진솔한 내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며, 더 나은 사회- 혐오의 시대에 모두가 하나 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이바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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