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동생을 지켜보며 깨달은 진정한 정의
정확히, ‘자폐증을 가진 사람의 특성’을 아시나요? 또, 자폐증의 원인을 아시나요.
자폐증과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의 누나로서, 장애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더 나은 사회를 이끌어가고 싶은 청년으로서 ‘자폐증’과 ‘발달장애’에 대해 깊이 파헤치고 알기 쉽도록 한 번쯤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 기회를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 브런치스토리에 감사드립니다.)
다른 장애와는 다르게 ‘자폐증’을 다룬 작품들이 굉장히 많죠.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부터, 영화 ‘말아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까지. 자폐증 관련 작품들이 다른 장애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자폐증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폐증을 가진 사람 30명을 모아도, 놀랍게도 30명 모두 다른 성향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죠. 영화 말아톤에서는 뛰어난 마라톤 능력을 지닌 초원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선 변호사로서 비범한 기억력과 논리적 사고를 지닌 영우.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개개인의 특성이 모두 다르게, 뚜렷하게 나타나기에 극적인 전개를 만드는 데 유리합니다.
또 과거에는 자폐증이 잘못 인식되어(영화 말아톤이 개봉되기 전 시대) “고립되어야 하는 장애” 혹은 “정신병동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자폐증을 ‘다름으로써의 특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났습니다. 그 시각에 따른 콘텐츠가 제작되는 것이구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작가 문지원 님은 자폐를 다룬 이유에서 “우리 사회에서 종종 타인과의 차이가 장애로 여겨질 때가 있다, 이런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그리게 되었고, 우영우를 완벽하거나 이상적인 인물로 그리지 않으려 했고 다양한 모습으로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자폐증은 다른 장애보다 “눈에 띄는”특징이 많습니다.
다른 장애보다 외형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행동과 말투로만 이해해야 하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이는 시청자가 캐릭터와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큰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은 자폐증 외의 장애가 덜 중요하거나 덜 힘들고 흥미로운 요소의 차이점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장애 또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조명될 필요가 있으며, 균형 있는 콘텐츠 제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생을 통해 ‘자폐증’이라는 또 다른 세상을 아주 가까이서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제 동생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단순히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생의 이야기로 자폐증이란 무엇인지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자폐증, 정확히 말하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는 신경발달장애의 한 형태입니다.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또는 흥미를 보이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자폐증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아요. 그 스펙트럼이란 이름처럼, 자폐증은 한 가지 정해진 모습이 아닌 매우 다양한 특성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의 동생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남들과 정말 달라요. 일단, 무언가에 꽂히면 박사님(?)처럼.. 깊이 파고듭니다. 정말 깊이요. 저와 가족들이 아직까지 기억하는 동생의 천재적인 모먼트(?)가 있는데요.
유치원 때, 동생이 모든 나라의 수도를 줄줄 외우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 이름을 물어보면, 동생은 거의 3초 이내에 그 나라의 수도뿐만 아니라 인구, 면적, 주요 언어까지 알려주었어요. 물론 10년도 더 지난 지금은 동생의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이제는 다른 능력(소근육 발달)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죠.
이런 능력은 흔히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 특정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관심사는 단순한 취미 수준이 아닙니다. 수도와 관련된 모든 정보는 동생에게 하나의 커다란 퍼즐과도 같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동생은 스스로 책을 찾아보며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정확하게 정리합니다. 저는 가끔, 그의 머릿속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수도를 외우는 과정에서 그는 그 나라의 문화, 역사, 정치적인 맥락까지 연결 지으며 학문적으로 접근하죠.
이런 점은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만의 독특한 능력 중 하나로, 흔히 ‘섬광 기억’ 또는 ‘특정 분야의 몰입’이라고 불린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개개인별로 매우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자폐를 가진 수많은 아이들을 봐오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의 어려움으로 인해 미처 이들의 강점을 보지 못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동생과 함께 지내며 느낀 것은, 자폐증은 단순히 ‘장애’로만 정의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1. 매우 뛰어난 기억력
동생의 경우처럼,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대단한 능력이 있죠. 그들은 종종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동생은, 제가 혼낸(…) 상황들을 다 기억하더라구요. 내가 그렇게 심한 말을 했었나? 싶어서 종종 섬찟하기도 해요. 이처럼, 숫자, 패턴, 일정 등을 기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요.
2. 정직함과 투명함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거짓말을 하더라도 매우 사소한 거짓말을 초등학생이 봐도 다 티 나게 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하죠, 때 묻지 않은 사람이라고 느껴지며,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줘요.
3. 몰입과 전문성
동생이 수도에 대해 몰입하듯,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특정 분야에 깊이 몰두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몰입은 단순히 ‘좋아하는 것’의 차원을 넘어 학문적, 전문적인 수준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어마무시한, 대단한 천재들이 자폐 스펙트럼을 지녔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 템플 그랜딘 박사 (Temple Grandin)
템플 그랜딘 박사는 자폐증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로, 동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예요. 가축 행동 연구에 혁신적인 공헌을 했고, 동물들이 더 적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도살되거나 관리될 수 있는 시설 설계를 개발했어요.
그랜딘 박사는 자폐증의 특성인 논리적 사고와 세부적인 관찰력을 통해 동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어요. 동물이 보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독특한 접근 방식을 활용해 가축 관리와 관련된 여러 문제를 해결했고, 또 자폐증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글로 풀어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자폐증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도 큰 기여를 했어요. 저도 어릴 적 부모님께 템플 그랜딘 박사와 같은 '자폐증'임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를 이뤄낸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라고 배웠던 기억이 나네요.
2. 소방관 코디 리 (Kodi Lee)
사진을 보시고 '어? 본 적 있는데!'하신 분들 많으실 거예요. 코디 리는 자폐증과 시각 장애를 동시에 가진 뮤지션이죠? 그는 미국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America’s Got Talent에서 뛰어난 피아노 연주와 노래 실력을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았어요.
코디는 자폐증으로 인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뮤지션이에요. 음악은 그에게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고, 그의 탁월한 재능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죠.
3. 대니얼 타멧 (Daniel Tammet)
대니얼 타멧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수학 천재로 유명합니다. 숫자와 언어에 대한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대니얼은 파이(π)의 소수점 22,514자리까지 암기하여 이를 공개적으로 암송한 적이 있고, 일주일 만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었죠. 대니얼이 자신의 경험과 사고방식을 담아 Born on a Blue Day라는 책을 집필했는데, 이는 자폐증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사례로 꼽혀요.
이 외에도 알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유튜버 마이크 롤린스 (Mikey Rowlands) 등..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독특한 관심사와 강점을 극대화하여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제 동생의(+모든 자폐증을 지닌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일 겁니다.) 뛰어난 기억력과 특정 분야에 대한 열정은 자폐증이라는 틀 안에 갇혀있지 않을 거라 믿어요. 저는 동생을 보며, 또 자폐가 있는 친구들을 마주하며 그들이 가진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글이 너무 길어져, 2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