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사순절 성주간 목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38)
“. . .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그러자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대제사장들은 여러 가지로 예수를 고발하였다. 빌라도는 다시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사람들이 얼마나 여러 가지로 당신을 고발하는지 보시오.’ 그러나 예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 . . 빌라도는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그 사람을 내가 어떻게 해 주기를 원하오?’ 그들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그들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 . .” (마가복음서 15:1-15)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빈곤한 상상력이 만들어 낸 질문입니다.
로마제국의 황제가 있는데,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들의 왕이 이미 로마에 있는데, 감히 네가 아무리 왕이라 억지 주장을 해 본들 기껏해야 여기 한 지역의 왕, 유대인의 왕이겠지.
상상력의 빈곤은 우리를 여기 한 뼘 땅에 붙박아 놓습니다. 땅에 박은 코를 들지 않고 킁킁거립니다. 흙먼지에 코는 근질거리고 재채기만 연신 나옵니다. 그러나 그 코를 들 생각은 하질 않습니다. 새들의 노랫소리는 들리지만 어떤 새인지, 어디서 노래하는지 고개를 들어 눈으로 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부릅 뜬 눈이 아파도 땅에 뭐 먹을 것이 남았는지 줄곧 땅만 봅니다. 지나는 한 행인이 보다 못해, ‘거참, 안됐네 그려’ 해도 못 들은 척 합니다. 그 쫑긋한 귀도 듣고 싶은 소리만 듣습니다. 땅으로 향해 있습니다.
‘얼마나 큰지, 그 너비가 몇 천 리나 되는 지 알 수 없고, 솟구쳐 날면 하늘 가득히 드리운 구름과 같고, 큰 바다 바람을 타고 북녘바다 남녘바다 할 것 없이 거침없이 날아가는’ 그 붕(鵬)새*를, 저기 좁디 좁은 우물 안도 넓디 넓다 유유자적, 제 세상인 듯 헤엄치는 개구리도 그렇고, 그 생각 않는 개구리 내 이번엔 꼭 잡고야 말겠다며 어디 다른 데 갈 생각 찾을 생각은 않고 거기서만 며칠째 웅크리고 기다리는 저 생각 없는 참새도 그렇고, 어찌 알까요? 그 붕새가 솟구쳐 날아오른 그 창공을 어찌 알 수 있을까요?
“네가 그렇게 말했다.”
그 한마디 하시고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유대인의 왕이냐고? 겨우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상상력에 무엇을 더 하고 더 뺄까? 무슨 말을 더 하고 어떤 이적을 더 보여야 할까?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이미 들었을 것이고, 볼 눈이 있는 사람은 이미 보았을 것이고, 깨달을 마음이 있는 사람은 이미 깨달았을 것이고. 그만 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지금까지 듣고 보고 경험한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느냐고.
이제 때가 되었으니, 너희가 하고자 하는 그 일을 하라고, 그렇게 해서라도 그 듣고 보고 경험한 것들을 제대로 알고 깨달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그래야 비로소 그 땅에서 눈을 떼고, 귀를 떼고, 너의 마음을 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그래야 너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면, 너희가 하려고 하는 그 일을 하라고. 나 비록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럽고 또 두렵기도 하지만, 나 십자가를 지고 그 길 갈 테니, 너희가 지금 하려고 하는 그 일 내게 하라고.
저들의 상상력의 빈곤은 십자가에 멈추지 않고, 무덤에 가두고, 또 그 무덤을 지키는 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 이상으로 저들의 상상력은 뻗질 못합니다. 십자가와 무덤. 거기까지가 저들의 상상력의 한계입니다. 우물의 턱에 기대는 정도입니다. 우물 턱까지 겁없이 올라온 개구리를 참새가 잽싸게 채는 정도입니다. 창공은 저기에 있고, 개구리와 참새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개구리도 참새도 아닌 저들에게 하나님의 아들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모든 일들이 있고 난 후, 저들이 하고자 한 그 일들이 다 끝난 후. 그 나중에 더는 그런 질문은 당신께 하지 말라고. 대신 그때는 당신께서 질문을 할 테니, 너희는 이 묻는 말에 조심히 잘 대답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슨 나쁜 일을 하였느냐? 내가 너에게 어떤 일을 하였길래, 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하였느냐?”
“그리고, 이제 나는 너에게 누구냐? 나는 너에게 아직도 폭도의 무리 중 한 명이냐, 아니면 유대인의 왕에서 그만이냐, 그것도 아니면 나는 누구냐? 난 정말 너에게 누구냐?”
그러나, 오늘도 여전히 한 켠에서 사람들은 소리를 지릅니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내일입니다.
* 장자(莊子) 의 소요유(逍遙遊)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