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와 함께 걷는 기다림* (2)
기다리며 읽는 누가복음서, 대림절 첫 번째 주 월요일
“그는 천사를 보고 놀라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사가랴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 간구를 주님께서 들어 주셨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여라. 그 아들은 네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많은 사람이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그는 포도주와 독한 술을 입에 대지 않을 것이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성령을 충만하게 받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앞서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서게 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그것을 알겠습니까? 나는 늙은 사람이요, 내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 말입니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인데, 나는 네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려고 보내심을 받았다. 보아라, 그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질 내 말을 네가 믿지 않았으므로,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서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서 1:12-20)
“지금 말씀하신 대로 될 것이라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꿈이라도 한번 꿔 봤어야, 상상이라도 한번 해 봤어야 알지. 천사가 나타난 것도 놀랍고, 나 죽을 날을 알려주러 왔나 싶고, 나 죽는 날인가 싶어 두려운데. 이건 또 뭔 소린지.
말 못할 속사정 있고, 말 않는 속사정 있습니다. 그런데 침묵합니다. 속사정 없어 조용한 것 아니고, 내 속 편해서 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별수 없고 할 수 없고 해서 말 않는 것이지, 말 못해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다 참다 이러다 죽을 것 같아 때론 내 속 얘기, 내 속사정 들어줄 ‘객(客)’ 적은 소리, ‘객(客)’ 없는 혼잣소리를 저기 숨어 남 몰래 혼자 지껄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말 못할 속사정, 말 않는 속사정이 있습니다. 사는 게 다 그렇다고들 합니다. 속사정, 없지 않습니다, 없을 수 없습니다,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있습니다. 쌓이고 또 쌓입니다. 지층처럼 쌓여 갑니다. 이젠 눈썹 바로 아래까지 쌓여 내가 얼마나 쌓아 놓았는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혼자 들고 지고 이고 살기엔 너무 힘이 듭니다. 계속 쌓아 놓기엔 내 속이 너무 답답하고, 계속 꾹꾹 눌러 놓기엔 내가 너무 무겁습니다. 줄곧 쌓아만 놓았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말 못하고 말 않는 속사정, 속 얘기를 ‘어디’에 내려 놓고 ‘누구’에게 풀어 놓으십니까? 그 ‘어디’가 없고, 그 ‘누구’가 없어 내 속 상하고 내 속 병드는 일상이고 삶이고 세상이면 환장(換腸)을 안 할 재간(才幹)이 있나요?
“그 뒤에 얼마 지나서,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임신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돌아보셔서 사람들에게 당하는 내 부끄러움을 없이해 주시던 날에 나에게 이런 일을 베풀어 주셨다.’” (눅 1:24-25)
천사를 만난 뒤, 사가랴는 말을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을 못합니다. 말 못할 속사정이 남편 사가랴에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엘리사벳은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않습니다. 말 않는 속사정이 아내 엘리사벳에게 생겼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에게는 꿈 속에서도 꿈 꿔 보지 못했고, 상상 속에서도 상상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속사정이 생겼습니다. 아기가 생긴 것입니다. 희망입니다. 내일이 생겼습니다. 다는 몰라도 전부는 보지 못해도 부부에게 미래가 생겼습니다.
전혀 새로운 속사정입니다. 환장(換腸)을 하지 않을 재간(才幹)이 없는 것이 아니라, 환희(歡喜)를 하지 않을 재간(才幹)이 없습니다. 기쁨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찾아온 기쁘고 즐거운 속사정과 함께 환희의 성탄 아침을 기다립니다. 말 못하고 말 않는 우리의 속사정, 속 얘기를 내려 놓고 풀어 놓을 그 ‘어디’와 그 ‘누구’가 곧 오십니다.
“내가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주님, 새벽에 드리는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새벽에 내가 주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고, 주님의 뜻을 기다리겠습니다. 아멘.” (시편 5:2ㄴ-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