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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회사이 Mar 30. 2022

두 길이 있어
나는 덜 다니는 길을 택하였노라고

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사순절 네 번째 주간 수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25)


“. . . 예수께서 . . .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 . .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 가에 앉아 있다가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 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 . .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 . .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 . .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 . .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마가복음서 10:17-31, 46-52)


photo by noneunshinboo


예수께서 길을 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거기 한 부자 청년과 한 눈먼 거지가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무엇이 참 많습니다. 

눈먼 거지는 무엇도 참 없습니다. 


부자 청년은 길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눈먼 거지는 길 가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부자 청년은 ‘선생님’ 가만히 부릅니다. 

눈먼 거지는 ‘다윗의 자손이시여’ 모두 들으라 큰 소리로 부릅니다. 


부자 청년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사람들이 바라봅니다.   

눈먼 거지는 ‘제발 여기 나를 봐달라’ 소리쳐도 사람들이 잘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부르십니다. 


부자 청년은 입고 있던 옷을 더욱 여밉니다. 

눈먼 거지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집니다. 


부자 청년은 가만가만 조용조용 예수께 다가옵니다. 

눈먼 거지는 벌떡 일어나 예수께 뛰어옵니다.  


부자 청년은 ‘누구를 불쌍히 여길까요?’ 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눈먼 거지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늘 간청하는 사람입니다. 


부자 청년은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눈먼 거지는 ‘나를 제발 어떻게 해주십시오!’ 라고 늘 간청하는 사람입니다. 


부자 청년은 율법이고 계명이고 죄다 지켰습니다.  

눈먼 거지는 율법이고 계명이고 도대체가 지킬 형편이 되질 못합니다.  


부자 청년은 누가 봐도 의인입니다. 

눈먼 거지는 누가 봐도 죄인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물으십니다. 


부자 청년은 ‘내가 무엇을 더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묻습니다. 

눈먼 거지는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간청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무어라 말씀하십니다.  


부자 청년은 슬픈 얼굴입니다. 

눈먼 거지는 기쁜 얼굴입니다. 


부자 청년은 보지만 보지 못합니다. 

눈먼 거지는 이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나눌 게 많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눈먼 거지는 나누고 싶은 게 이제 많이 생겼습니다. 


부자 청년은 부자이나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눈먼 거지는 여전히 가난하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자 청년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눈먼 거지는 집을 떠났습니다. 


부자 청년은 여전히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자신을 의지할 것입니다. 

눈먼 거지는 율법과 계명의 마침이신 예수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눈먼 거지는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부자 청년은 지금도 어디선가 스승을 찾아 돌아다닐 것입니다. 

눈먼 거지는 이제 참 스승이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의 이름을 우리는 여전히 모릅니다. 

이 눈먼 거지의 이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의 이름은 ‘바디매오’ 입니다. 


photo by noneunshinboo


미국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1869-1935)의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입니다. 



노란 수풀에 두 길이 갈라져 

둘 다 가 보는 

한 나그네가 될 수 없어 오래 서서

한 길이 덤불로 굽어드는 데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딴 길로 들어섰다.

매한가지로 아름답고 풀이 우거지고

밟히지 않아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그리로 지나감으로써

같은 정도로 밟힌 셈인데


그날 아침 그 두 길은 모두

아무도 더럽히지 않은 낙엽에 덮여 있었다.

처음 길은 딴 날로 미루지!

허나 길은 길로 뻗어가는 것이기에

돌아올 가망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먼 훗날

어디에서 한숨쉬며 말하게 되리라. 

수풀에 두 길이 갈라져 나는 결국

덜 다니는 길을 택하였노라고.

그 결과 큰 차이가 생겨난 것이라고.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슬픈 얼굴로 왔던 길로 다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보지 못했던 거지 바디매오는 다시 보게 되어 기쁜 얼굴로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거기 숲속 두 길이 있고, 그 둘 다를 걷는 나그네가 될 수 없어, 각자 한 길을 택해 걷는 두 명의 나그네가 있습니다. 먼 훗날 그 둘은 각자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까요?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떤 길을 택해 걷고 있을까요? 먼 훗날 나는 내 아이에게, 그리고 내 아이의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 줄까요? 어떤 길이었고, 어떤 생(生)이었고, 그래서 지금 어떤 곳에 와 있다고 긴 숨을 내쉬며 말하게 될까요? 


그 둘 다를 갈 수 없어, 여기 하나의 길을 택해 걷는 사순절입니다. 



* <20세기 미시(美詩)> 이영걸(李永傑) 역(譯), 탐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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