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사순절 네 번째 주간 금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27)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일구어서,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멀리 떠났다. 때가 되어서, 주인은 농부들에게서 포도원 소출의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종을 잡아서 때리고, 빈 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다시 다른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 . . 그래서 또 다른 종을 많이 보냈는데,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 이제 그 주인에게는 단 한 사람, 곧 사랑하는 아들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였다. 그러나 그 농부들은 서로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유산은 우리의 차지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죽이고, 포도원 바깥에다가 내던졌다.” (마가복음서 12:1-8)
그만 돌아오라고, 용서할 테니 그만 돌아오라고, 고집 그만 부리고 못이기는 척 이제 돌아오라고 하는데. 자기들이 무슨 태조 이성계나 된 듯, 무슨 어느 나라 왕이라도 된다는 듯, 무슨 함흥차사(咸興差使) 코스프레도 아니고, 주인이 보내신 종을 족족 잡아 때리고 죽이고, 보다 못해 그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까지 보내며 ‘설마 내 아들은 존중하겠지, 그의 말은 듣겠지’ 했는데, 그 농부들이 하는 말, 있는 속셈이란,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유산은, 여기 이 포도원 뿐 아니라 저 멋진 주인의 집, 그리고 우리의 눈이 닿지 않는 이 근방의 모든 땅도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모두 우리 것이 될 것이다.”
처음엔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농부들도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들도 처음엔 저렇게 무서운 생각, 저렇게 무서운 짓을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엔 자기들 주인의 사랑에 감격해 하고 자기들 또한 그 주인을 무척이나 사랑했을 것입니다. 처음엔 고마워 눈물도 흘렸을 것입니다. 너무 좋아 서로 얼싸안고 펄쩍 펄쩍 뛰기도 했을 것입니다. 주인과 함께 먹고 마시고 떠들고 즐겁게 놀았을 것입니다. 일이 힘들지도 않았고 정말 사는 게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처음엔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저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무엇이 세상 부러운 것이 없던 저들을 그 받은 사랑을 잊고 그 주는 사랑을 잃은 무서운 사람들로 만들었을까요?
주인이 아끼는 포도원을 맡아 잘 키우고 보살피고 그랬었는데, 그 익어가는 포도와 함께 저들도 익어가고, 그 수확한 포도를 그리고 그 포도로 담근 포도주를 나누고 즐기고 그랬었는데. 나의 포도원을 잠시 맡아라 하고 떠나셨던 주인이 이제 돌아와, 그 수확한 포도, 그 잘 익은 포도주의 맛을 보고 싶다고, 내 아들의 혼인 잔치가 있어 필요하니 조금 가져오라고, 맛난 음식도 많이 준비해서 동네 사람들 다 초대했으니 너희도 와서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고 놀자고, 주인이 종을 보내 전했더니, 그랬더니 그 주인이 보내는 종들을 족족 잡아 때리고 그것도 모자라 죽이고, 이젠 그 혼인 잔치의 주인공인 외아들까지 주인이 보냈는데, . . . 그랬는데 . . .
난 모르는 일이라고, 무슨 주인? 무슨 주인 아들? 우린 그런 사람 모른다고, 이건 우리 것이라고, 우리 곳간에 가득한 이 모든 것들은 우리 것이라고, 내가 물 주고 거름 주고 내가 키운 그래서 내 것이라고, 수확한 것들 둘 곳이 모자라 더 크게 곳간을 짓고 있는 중이라고, 우리끼리 잔치 열어 먹고 마시고 한창 즐거우니 너무 잘 지내고 있으니 더는 우리를 간섭하지 말라고, 굳이 오실 필요도 없고 우리가 갈 이유도 없으니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라고, 혹시 우리가 뭐가 필요하면 그때 알아서 갈 테니, 그냥 거기 기다리고 계시라고.
어느 때 부터인가, 세상 모든 일들이 사람의 일이라고,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줄곧 생각을 해 와서 그러는지,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리고 하나님의 일도 역시 사람과 맺는 관계, 사람의 일,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로 여기는 것인지, 그래서 그런지 사람을 대할 때와 사람의 일을 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사람을 대할 때도 사람의 일을 할 때도 주인이신 하나님을 대하 듯, 주인이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듯, 그래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거듭거듭 말씀하셨고 가르치셨고, 그 손발이 닳도록 보여주시고 또 보여주셨는데. 그래서 이 정도면 되었겠지 이젠 잘 할 수 있겠지 조금 맡겨도 되겠지, 그 포도원 그 많은 포도원 일꾼들을 그 농부들 손에 맡기고 잠시 자리를 비우셨는데. 아무리 생선 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겼다 해도, 아무리 떡방앗간을 참새에게 맡겼다 해도, 아무리 닭장을 여우에게 맡겼다 해도, 그 주인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너의 잘못 묻지 않을 테니, 다 용서할 테니 그만 하고 돌아오너라.”
그러면, 비록 엉망으로 만든 것이 미안하고 민망하더라고, 한창 게걸스레 먹고 있던 밥그릇 옆으로 치우고 버선발로 뛰어 갈 텐데. 역시 이것 역시 사람의 일이라고, 이게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는 건지, 그만 아예 그 선을 넘고야 말았습니다.
어제의 그 잎만 무성했던 무화과나무의 그 초라한 끝이 오늘 여기 포도원의 끝이 되는 것일까요? 그때 초라하게 된 것은 한 그루의 나무였는데, 그러면 이제 그 넓은 포도원 전부가 초라하게 되는 것일까요?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게 어찌 무화과나무의 잘못이고 포도원의 탓일까요? 아니겠지요. 그 나무를 잘못 건사한 그 사람들 잘못이고, 그 포도원 다 우리 것이다 설치는 이 못난 사람들 탓이겠지요. 그렇겠지요.
지금 포도원 농부들은 속으로 이런 어줍잖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래! 주인이 그때 그 무화과나무만 말라버리게 하신 것처럼, 여기 포도원 일이 아무리 잘못된다 하더라도 이 포도원을 그때처럼 그 나무처럼 어떻게 하시겠지, 설마 우리를 어떻게 하시겠어?”
그런데, 어쩌지요. 사람의 일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달라도 많이 다른데. 그 끝이 달라도 많이 다를 텐데.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12:9)
농부들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주인께 돌아갈 시간, 가던 길에서 돌아설 시간은 있습니다. 잠시 멈추고 생각할 시간이 있습니다. 복도에 책상 의자 놓고 반성문을 쓸 시간, 손 들고 서 있을 시간,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를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생각할 시간, 그리고 가만히 그 교실 문 열고 들어가 ‘잘못했습니다’ 말을 할 시간, 수업 끝 그 종소리 아직 없으니 아직 그 시간은 나에게 있습니다.
나의 주인이신 주님,
나 이제 당신께 갑니다,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당신께, 나 그 사랑 겨우 기억해 내고 이제 갑니다. 조금 늦었지만 나를 내치지 마시고, ‘왜 이리 늦었냐’ 꾸짖지 마시고, 대신 ‘이 못난 놈’이라 한 마디만 하시고, 그래야 내 맘 조금 편해질 것이니, 그렇지만 ‘이 못된 놈’ 그 말씀은 차마 하진 마시고, 나 반성하느라 나의 잘못 천천히 되짚느라 우둔한 나이기에 그 하나하나를 깨닫느라 조금 늦었으나 그 애씀이 못내 기특하다 하시고, 오랜만에 네 머리 쓰고 네 마음 썼으니 네 배 조금 고프고 네 목도 조금 마를 것이니 같이 가자, 나의 손 잡아 끌고 저기 매점에서 김밥 한 줄 바나나 우유 하나 사주시고, 용서한다 사실 벌써 너를 용서했다 그 말 한 번만 해 주시고, 설사 눈물로 내가 당신 얼굴 차마 보지 못해도 당신께서는 내 얼굴 바로 보시고, 혹여 나 울거들랑 어깨 들썩이거들랑 괜찮다 이젠 괜찮다 날 안아 토닥여 주시고, 내일 봄소풍 꽃소풍 있으니 같이 가자 내가 널 데려갈 것이다 뜬금없는 그 한 말씀 더 해 주시고, 참 따뜻했던 그 교실 안으로 날 다시 데려가 내 친구들과 함께 당신의 그 첫사랑 얘기 듣고 또 듣고 너무 좋아 깔깔거리고 다시 듣고 싶어 졸라대 다시 듣고 또 들으며 내 얼굴 붉히게 하소서. 꼭 그렇게 할 수 있게 하소서.
그러나,
“그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겨냥하여 하신 말씀인 줄 알아차리고,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12:12)
그러나 주님,
나 저들처럼은 되지 않게 하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저들처럼은 정말 되지 않게 도와 주소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는 사순절입니다.
* 이 비유의 말씀은 종말적(eschatological) 의미, 심판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겁박하시려는 의도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고, 각성과 회개를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