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답변으로 의사 선생님을 노하게 만든 나는, 그날부터 소위 Top5 병원이라고 하는 대학병원들에 전화를 하나하나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왜 이리 아픈 사람이 많은 걸까? 대부분의 병원이 지금 예약해도 기본 3개월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는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병원도 있었다!
그런데 신은 나의 편이었던가.
예약환자가 너무 많아 제일 먼저 포기했던 서울대병원에서 빈자리가 났다는 전화가 왔고, 일주일 후에 진료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얼마나 운이 좋은가!
나는 너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예약을 잡았고, 그다음 주 바로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서울대병원. 내가 약사로 일하면서 수도 없이 들어본 그 이름. 나는 일 때문에 간 적은 있어도 환자로 방문한 적은 없었다.
일반인으로 방문하는 기분과 환자로서 방문하는 기분은 차원이 달랐다. 나는 1시간이 넘게 대기하면서 끊임없이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정보들을 검색했다.
초기 암이면 간단한 수술만으로 끝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정보들. 그리고 자궁경부암이 1년 만에 전이되어 사망한 유튜버의 영상들. 마음속으로 혼자 희망과 절망을 맛보다가 진료실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교수님을 보는 진료는 아니었고, 꽤나 젊어 보이는 레지던트 선생님이 바쁘게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미리 제출했던 소견서를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았고, 나는 자연스럽게 이른바 굴욕의자라고 불리는 자리로 향했다. 어차피 출산도 한 몸. 하도 많이 굴욕의자에 앉아봐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초음파 좀 볼게요.”
의사 선생님은 자궁검사를 간단히 마친 후, 차분한 목소리로 초음파 검사를 시작했다. 기계의 부드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며, 나는 아들을 임신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초음파 화면에 아이의 작은 모습이 비쳤었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던 순간들이 그립다. 이번에는 얼마나 컸을까, 아기의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마음속에 따뜻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순간의 설렘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