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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죽고 싶으면 병원 안 가셔도 돼요.

나의 과거가 암을 부르다



  육아휴직을 하기 이전에도 나에게는 좋지 않은 증상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일부 증상은 내가 그냥 무덤덤하게 흘려보냈고, 또 다른 증상은 혹시나 하여 산부인과에 방문을 했었지만 애석하게도 의사가 그 황금 같은 기회를 흘려보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의사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소소한 증상 하나하나를 보고 어떻게 암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그중에서도 정말 중요했던 증상이 있었는데, 바로 물처럼 흐르는 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바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이 증상을 그냥 흘려보냈지?



  나는 가끔씩 냉이 많이 나오는 편이었기에, 냉이 많은 날마다 팬티라이너를 사용해 주면 며칠 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물 같은 냉이 팬티가 젖을 정도로 많이 나오던 시기가 있었다. 팬티라이너로도 감당하기 부족해서 생리대를 착용해야 했고, 조금 불편한 마음에 산부인과를 방문했었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는 큰 이상이 없다고 했고, 간단한 질정 처방을 받은 다음에 검사를 마무리했다. 이상함을 느끼고 경력이 있는 다른 산부인과에 한번 더 방문했었어야 하는데,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결정적인 증상은 육아휴직 이후에 나타났다. 소변을 보고 휴지로 살짝 닦았는데, 아주 작은 피가 묻어있는 것이 아닌가? 통증은 없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다행히도 휴직을 하여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에 그 즉시 산부인과에 방문하였다.



  나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일요일이었기에 문을 연 산부인과가 많지 않았고, 검색을 하다 보니 그 지역에서 나름 큰 산부인과가 당일 진료가 가능하여 방문 예약을 했다.


 나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조금 쌀쌀맞은 남자 의사에게 진료를 받게 되었다. 아래에서 작은 출혈이 있다고 간단히 말했더니, 그는 "그럼 자궁경부암 검사도 같이 합시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때는 왜 이렇게 무뚝뚝한지, 왜 쓸데없이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는지 의아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겐 정말 은인 같은 사람이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날, 의사 선생님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는 치료하기 어렵고, 큰 대학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소견서를 써줄 테니, 빨리 병원을 알아보세요.”


  그 당시 나는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지 못한 채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아, 꼭 가야 하는 건가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약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소견서에 적힌 ‘긴급’이라는 단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말했다.



  “죽고 싶으면 병원 안 가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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