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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싱글맘이 아닌 싱글맘 라이프

나의 과거가 암을 부르다


  싱글맘이 아닌 싱글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실 내가 입사한 직장은 복지도 좋고 나름대로 여유롭게 일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었다. 하지만 싱글맘 라이프를 하고 있는 나는 그 복지들을 다 즐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입사 당시, 같은 층에서 근무하게 된 동기들은 10명 남짓이었다. 다들 나이도 비슷했고, 성격도 온화한 사람들이었기에 일하기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그 10명 중 아이가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나마 1명이 기혼이긴 했지만 딩크족이라고 했다. 요새는 결혼 및 출산 연령이 늦어지고 있다더니 정말 그랬다.


  같은 나이여도 미혼과 기혼은 관심사와 생활 패턴에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저녁에 아이를 못 맡기는 내 입장으로서는 그랬다. 하원이모님도 본인의 가정이 있으시기에 늦게까지 아이를 봐주실 수는 없었고, 가끔씩 저녁에 모이는 저녁 회식에 나는 참석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들과 멀어졌고, 나는 나의 일상을 지키기에도 바빴다.   





  당시 나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상을 소개해 보겠다. 먼저 아침을 7시 시작이라고 해보자. 7시부터 아들은 ‘어린이집 가기 싫어’라는 말과 함께 일어난다. 아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나는 세수도 하지 못한 채 아침부터 화려한 재롱을 부린다. 까꿍놀이, 블록놀이, 소꿉놀이 등 다양한 놀이를 아침부터 시작하고, 중간중간 부엌에 가서 미리 준비한 아침을 먹인다.


  그리고 8시부터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옷방으로 슬쩍 들어가면, 그때부터 아주 강력한 칭얼거림이 시작된다. 가끔은 벌러덩 누워서 울기도 하고. 이런 모습을 보면 아침부터 마음이 아파서 하루 전체의 기분이 망가지곤 한다. 원래 이모님을 구할 때 8시부터 9시까지 등원 준비를 해 주실 수 있는 분을 구했었는데, 아들이 너무나 서글피 울고 거부하는 바람에 등원이모님은 구할 수 없었다.


  어찌어찌 달래서 8시 30분 정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그리고 출근해서 9시부터 12시까지 열심히 일을 한다. 나는 그 당시 점심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난장판이 된 집을 치우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서 청소를 하고 점심을 대충 때웠다. 가끔은 아침에 못한 샤워를 급하게 하면서 점심을 건너뛰곤 했다.



  나는 점심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걷기 운동 및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많이 없애버린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집이 더러워도 그냥 내버려 두고 나가는 패기가 있었어야 하는데, 매사에 완벽하려고 했고 하원 이모님께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시 일을 하고 나서 허둥지둥 집에 돌아오면 저녁 7시가 된다. 아이는 오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겨주고, 이모님을 대문으로 밀어낸다. 아들아, 너무 귀엽지만 엄마 조금만 쉬면 안 되겠니?


  이제 저녁 9시, 늦으면 10시까지 아이와 놀이하는 시간이다. 아무리 깜깜한 밤이 어도 아이가 원한다면 놀이터에 같이 나가기도 했다. 낮에 놀아주지 못했다는 워킹맘의 죄책감, 그게 나를 계속 짓눌렀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가장 부족했던 것은 수면시간이었다. 너무 안타깝게도, 우리 아들은 통잠을 자는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를 조금만 더 키우고 맞벌이를 시작했어야 하는데! 새벽 2시, 새벽 5시에 꼭꼭 일어나면서 우유를 찾거나 놀아달라고 했다. 그 시간마다 같이 일어나면서 나는 강제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수면시간은 신체와 정신의 건강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일단 깊은 수면을 방해받으니 하루 동안의 에너지를 회복하기에 역부족이었고, 다음 날에도 이러한 생활 패턴은 계속되었다.




  결국 이런저런 상황이 겹치면서, 나는 내가 생각한 시기보다 빠르게 육아휴직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이가 감기, 독감 등으로 어린이집을 못 가는 날마다 휴가를 사용했기에 남은 휴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휴직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사실 나는 그 당시 나의 건강에 약간 이상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일단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심각한 우울 증세였다.     


  나는 육아우울증을 이미 겪었다고 생각했기에, 이 우울감이 당연히 중증 육아우울증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신체에 이상이 생기게 되면서 정신에 영향이 간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적인 생활에 지속적인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체중이 조금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난 내 몸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을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치 못했고, 당장 개선이 시급한 나의 우울감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로 향했다.


  30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졌던 곳이었지만, 그동안 방문할 생각은 못하고 있다가 드디어 육아휴직을 하면서 이 정신과라는 공간에 입장하게 된 것이다. 나는 2분 동안의 간단한 상담 끝에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고, 나의 세로토닌 수치 증가를 위해 매일매일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만약 나에게 신체적인 증상이 보이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서 ‘왜 뱃살이 빠지지 않는 거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암세포는 내 뱃속에서 쑥쑥 자라나며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는 나의 장기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행하지만 아니,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에게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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