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거가 암을 부르다
“... 혼자 오셨어요?”
검사결과를 보러 간 후, 약간의 정적 후에 산부인과 교수님의 첫마디였다.
“네. 혼자 왔어요.”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 결과가 안 좋구나.’
교수님의 첫마디로 나는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2023년 10월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당시 매우 지쳐있었다. 맞벌이를 하기 위해 남편과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반 정도가 되어 가고 있었고, 내 주변에는 도움을 청할 손길이 전혀 없었다. 시댁부모님은 편도 4시간 거리, 친정 부모님은 편도 3시간 거리에 있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19개월 나의 아들은 내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내가 6시 반에 퇴근하면 내가 도착하자마자 하원 이모님께 나가라고 성화였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원래 7시에 퇴근하시는 이모님을 일찍 퇴근시키고 씻지도 못한 채 아이를 계속 돌봐야 했다.
게다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아이는 정말 자주 아팠다. 감기, 수족구, 독감 등 정말 다양하게 걸려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잦은 휴가를 써야 했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가족 돌봄 휴가까지 무급으로 써가며 아이를 돌봤다.
그리고 대체 통잠이란 단어는 몇 개월에 쓸 수 있는 것일까? 인스타그램에서는 3개월 아이도 통잠을 자던데. 안타깝게도 우리 아들은 새벽 2시, 새벽 5시에 꼭 일어나는 아이였다. 나는 그 시간마다 맞춰 일어나 강제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아침에는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울고, 저녁에는 퇴근하자마자 엄마 왔으니 이모님 나가라고 울고... 나는 전혀 쉴 틈이 없었고, 좀비처럼 회사를 다녔다.
결국 휴가를 모두 소진한 나는 육아휴직을 택했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이후, 정신과에 방문에서 우울증 약을 처음으로 처방받아 보기도 했다. 간단한 상담 끝에 나온 결과는 우울증 중등도. 나의 경우 우울증 약을 먹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너무 대충 고른 정신과여서 그런지 상담이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 이렇게 정신과약을 빨리 받을 수 있는 거였나?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알아서 찾아 먹을걸. 이렇게 사느니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나는 왜 태어난 걸까? 이러다 암에 걸릴 수도 있겠군.
난 결국 그날 내가 바라던 대로,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암환자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교수님의 말씀이 크게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교수님은 천천히 내 앞에서 자궁과 난소가 그려져 있는 메모장을 찢어주시더니 자세하게 설명했다.
“일단 확실한 건 추가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자궁경부를 비롯해서 자궁내막에도 암이 발견됐어요. 자궁내막암은 1기로 보이고, 자궁경부는 제자리암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난소에도 혹이 있는데 이건 경계성종양이거나 암, 둘 중 하나입니다. 이건 떼어내야만 알 수 있어요.”
나는 혼자 그림쪽지를 들고 터벅터벅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울리는 문자 한 통.
‘오늘 저녁 7시에 약속이 있어서 빨리 가야 되는데.. 언제 돌아오나요?’
급하게 부른 하원이모님의 문자를 보고, 나는 슬퍼할 새도 없이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집으로 부지런히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 늦을 거 같아요. 너무 죄송해요.라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