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ar moon Oct 21. 2023

전공이라는 책임

학교 한가운데에서 느낀 인간성에 대한 고찰 


 전공 과제가 치솟는 기간이면 교실 곳곳에서 죽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 자퇴하고 싶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물론 나도 그 소리의 일부가 된다. 감정의 응어리가 목구멍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온다. 순식간에 공기가 예민함으로 가득 찬다. 


 이 말들 하나하나가 전부 가볍게 뱉어내고 만 것일까? 


 사실 지금의 전공을 공부하게 된 것은 자의보다는 타의의 영향이 컸다. 한 마디로 스스로 깊은 고민도 없이 덜컥 주변의 솔깃한 말과 긍정적인 사례만을 믿고 전공을 결정해 버린 것이었다. 

 

 부모님은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좋아하지 않으셨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방과 후 종일 학원에 박혀있으면서 끝도 없는 선행과 주입식 교육, 사교육에 환멸을 느껴왔었다. (물론 학원은 진작부터 다녔지만 이때입시 교육에 대한 반항심의 정점을 찍었다.)


부모님은 이런 나에게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추천하셨다.  


나는 환상을 갔기 시작했다. 하지만 환상 따위는 부서지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와도 괜찮다는 홍보 슬로건에 홀린 것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중학교 친구들은 마이스터고등학교가 어떤 고등학교인지 아는 친구보다 모르는 친구가 훨씬 많았으니 말이다. 


이러한 연유로 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환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탈주했다.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학교생활의 향연이 눈앞에 잿빛으로 펼쳐졌다. 

(그것도 나름의 색다른 감동이었다. 잿빛 향연이라니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가?)

나는 더 이상의 자유는 없음을 선언받은 죄수처럼 꼼짝없이 학교에 몸을 맡겼다. 물론 내가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몰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생활하며 느낀 삶의 주체성을 박탈당한 듯한 감정은 절대 거짓이나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조리를 깨닫고, 긍정적인 감정 못지않게 부정적인 감정도 자주 느끼게 되며 다채로운 감정이 생겼다. 무엇보다 글 쓰는 삶을 살 수밖에 없도록 된 것이 학교생활을 하며 감사한 부분이다. 


꾸역꾸역 생활을 하며 몸이 먼저 무너지고, 다음으로 정신이 무너졌다. 누구에게나 번아웃의 순간은 찾아온다. 나에게도 그 격동의 순간이 찾아왔다. 


 당시 몇 년 동안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신물부터 밀려온다. 학교와 기숙사는 이름만 멀끔할 뿐 영락없는 감옥이었다. 그전부터 학교는 감옥이라는 애칭과 함께 다녀 익숙했지만, 기숙사라는 공간도 감옥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금요일 저녁은 집으로 휴가를 떠나는 날이었고, 일요일 오후가 되면 다시 아늑한 감옥으로 귀가해야 했다. 외출을 포함한 모든 것이 금지된 기숙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책을 읽거나 개인 노트북에 얼굴을 박고 있는 것뿐이었다. 


 맥북 스크린 타임은 17시간이 넘어갔다. 전자기기가 쉴 새 없이 가열됨에 따라 신경도 늘 함께 곤두서 있었다. 모든 전공수업과 대부분의 인문교과 수업이 짜기라도 한 듯이 노트북을 쳐다보지 않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하루종일 좋든 싫든 컴퓨터와 교감해야 했다. 척추는 누가 옆에서 잡아당긴 듯 S자로 휘어졌고, 거북목이 생겼으며, 손가락 마디마디와 손목이 항상 쑤셔왔다. 시력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운동부족에 더해 영양가 없는 음식만 먹어대는 탓에 전에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빈혈을 얻게 되었다. 건강이 미친 듯이 나빠졌다. 육체적 건강과 더불어 정신적 건강까지 함께 말이다. 


 무척이나 바빴던 순간이 있었다. 공모전 7개를 동시에 진행해야 했으며, 전공 수행평가를 비롯한 각종 과제가 쉴 틈을 주지 않았으며,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답도 없는 인문과목 공부가 한꺼번에 들이닥친 시기였다. 하루  3시간 정도 자고, 계속 회의를 해서 그런지 수업시간에 졸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사력을 다해 해냈다. 상도 탔으며 시험 성적도 잘 받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숨이 막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새벽에 할 일을 끝마친 후 조용해진 방 안에서 혼자 깜깜한 창문을 쳐다볼 때면 뿌연 얼룩 너머로 텅 빈 운동장과 그 곁을 촘촘히 메우고 있는 고시촌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곁에는 늘 친구들이 있지만 언제나 마음 한편이 텅 비어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야만 하는 게 끔찍이도 싫고, 점점 늘어가는 일들에 반비례해서 줄어만가는 수면시간이 측은해졌다. 전공은 어느새 공부를 넘어 족쇄가 되어 뒤틀린 책임감으로 목을 조여갔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은 이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을 제 몸이 다 산산조각 나도 일단 찍어내고 보는 기계로 인식되었다. 기계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인간성이 사라진 기계로 인식되었다. 


 아빠는 내가 작은 고통도 참지 못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고통을 오래도록 참아왔다며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는 수십 가지의 물음표가 포물선을 그리며 빠르게 지나갔지만 꾹 참았다. 나의 속력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말하지 않았다. 아빠에게까지도 입을 닫는, 질문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나를 거의 포기할 뻔했다. 


'아,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쉴 새 없이 공모전에 나가던 동아리를 탈퇴했다. 정말 애정 있는 동아리였고, 무척 좋아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같이 활동했지만 건강을 위해 그만 중단하기로 했다. 학교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고, 부모님과 몇 시간 동안 얘기하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숙고의 시간 끝에 스스로에게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나의 인간성을 지킬 수 있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활동을 해보자.

 

 점점 더 삶을 향한 의지가 사라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삶을 살아오며 자주 드나들어 애정 묻은 발자취가 가득 담긴 것,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의지를 주는 일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