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손이 닿을 때
고독이 무엇보다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는 바로 글을 쓰는 순간이다. 글은 언제부터 내 삶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그것도 가장 명당에 말이다.
글을 왜 쓸까?
단어 몇 번 두드리기만 하면 챗gpt로 끊임없는 글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굳이 단어 하나하나 신경 쓰고 유념해서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리 인공지능 글쓰기가 판을 쳐도 직접 단어 한 자 한 자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전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보자.
학교 수업시간에서도 인공지능 글쓰기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글을 쓰기도 한다. 선생님들은 이런 활용을 장려하는 쪽이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국어 수행평가로 글을 써와야 했었는데,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글을 써도 되고, 직접 써도 됐었다. 당시 수행평가가 몰아쳐서 시간이 촉박해 꼼꼼하게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산문과 시를 읽고 산문을 요약하고, 둘을 비교하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챗gpt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3 문단 짜리 글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도 채 안 걸렸다.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수업시간에 다 끝내지 못해 과제가 되었을 터였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인간이 시간적 한계에서 작게나마 해방감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이는 착각일 뿐이다. 우린 여전히 시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은 시간의 흐름을 타며 때론 거침없이 때론 위태롭게 나아가는 서핑이다.
사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글을 쓰는 당사자가 쓰며 무엇을 발산하며 해소하느냐이다. 인공지능이 쓴 글은 말 그대로 인공지능이 쓴 글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아니다. 설령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약간의 도움만 받아 글을 완성했다고 한들 그것은 경험의 위조이다.
물론 그런 것이 모두 상관없는 사회가 된다면 인간의 유일한 희망인 예술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며 그에 따라 발생하는 감동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고유성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글을 쓰는 이유
그렇다면 나의 이유는 무엇일까?
글은 자살충동을 가라앉힌다. 인간이라면 삶에 치여 살아가며 한 번쯤은 자살 생각을 해봤을 것 같다. 나의 경우는 그 빈도가 잦았다.
중학생 때는 일기를 썼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사 온 후부터 심리적 고통에 시달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고향을 처음 떠나온 것에 대한 후유증인 것 같기도 하다. 당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부담, 끊임없는 사교육의 압박, 낯선 환경에 대한 적대감이 마음속에 득실거렸다.
처음에는 일기로 시작했다. 초반의 일기에는 긍정적인 나의 미래와 발전을 도모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점점 일기는 그날에 겪은 부당한 일, 고통, 부조리 따위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배설하는 공간이 되었다.
일기가 수필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매일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사실 그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삶과 죽음, 인생을 살아감에 대한 의문을 가졌지만 이토록 하루도 빠짐없이 고민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생명에 대한 의문이라면 이는 답이 없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다. 그래도 나만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삶에 의미부여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라도 하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민의 끝은 다시 원점이었다.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현재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뿐더러 타인은 전혀 눈치챌 수 없게 내 정신만 피폐해졌다.
그래서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 바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나를 포기하는 대신 글을 썼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을 때 글이 충동을 다스리도록 도와주었다.
처음에는 글에 중간중간 욕설이 난무했다. 무엇보다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감정이 단어 하나하나에 범벅이 되어 있다. 감정을 토해내듯 글을 써 내려가면 통쾌함과 동시에 현재 상황에 대한 해방감도 동시에 느껴졌다. 그렇게 무작정 감정이 가는 대로 글을 쓰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 함께 이런 슬픔과 고통을 공유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분명 살면서 나만 이런 절망감을 느껴보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때부터 감정을 무작정 배설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타인과 감정을 나눌 수 있도록 다듬어진 글을 써보기 시작했다.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이 처음 글을 시작하기에 재격이라는 마음이 들었고, 글을 쓰고 묵혀두는 것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진정성 있는 감정의 교류를 만들고 싶었다.
또 글을 쓰는 것이 때때로 현재 상황에 대한 회피로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있는 것은 아닐지, 현재를 너무 비관적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타인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려면 작가 심사가 있다. 글을 발행하고 싶어서 나름대로 목차와 콘셉트를 구성한 뒤 심사에 냈다. 하지만 떨어졌다.
뭐가 문제일까??
한동안 글에 손이 가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타인이 볼 거라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마음대로 글을 써버릇하고 있었다. 그래서 몇 달뒤 다시 냈다. 주로 학교 이야기로 가득했던 글을 대폭 수정하고 '나'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고, 어떤 것에 매료된 상태인지를 간접적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여기서 포인트는 '자연스럽게'였다. 억지로 말과 감정을 쥐어짜 내는 것이 아닌 최대한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글을 쓰는 것이었다.
제출하고 난 뒤, 누군가 꾸밈없는 나의 생각과 경험을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며칠 뒤 작가로 승인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글을 쓸 때만큼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슬며시 깨닫게 된다. '왜 살아가야 되는가?'의 늪에 빠졌을 때, 글을 쓰다 보면 완벽한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더라도 더 이상 혼란이 두렵지 않게 된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 인생이 아무리 답이 없고, 무의미하다 주장해도 적당히 무시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는 일시적이어서 무의미의 굴레에 빠지고 싶지 않아 꾸준히 현재의 자신을 들여다 보고 최근 느끼는 감정을 잘 살피며 기록할 뿐이다.
태도가 글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