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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moon Oct 21. 2023

정의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고전문학 독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생들은 애정과 사랑을 받을 가치는 있었지만 결코 하나의 개인으로 상승할 수는 없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중



책을 읽게 된 계기 

 현재 나의 취미 중 하나는 고전독서이다. 이렇게 말하면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또 어릴 때부터 책과 떨어지지 않는 문학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흥미롭게 읽은 것이라고는 만화책이 전부였다. 가끔 아동문학을 읽기는 읽었으나 책을 즐겨보는 어린이는 전혀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까지 사람들이 책을 도대체 왜 굳이 찾아서 읽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중학교 2학년을 맞았다. 그쯤 코로나가 터졌다. 학교는 가는 날 보다 가지 않는 날이 많았다. 당시 전학 온 지 3개월도 채 안되었기에 새 학기를 노려 새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못하자 자연스럽게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근데 집에서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매일 반복되니까 지루함이 몰려왔다.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상당히 조심스러워졌다.


 평소와 같이 집에서 한적한 오후를 즐기다가 갑자기 책장에 얌전히 꽂혀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심심한데 한 번 책이나 읽어볼까?라는 작은 호기심에서 나의 독서생활은 시작되었다.


 그 책은 인문학을 장려하는 자기 계발서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400쪽이 넘어가는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건만 굳이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읽어보니 지루하기 짝이 없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던 독서가 이상하게 너무나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책을 읽으면서 재밌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 뒤로도 책 읽는 재미에 매료되어서 일주일에 3~4번씩 서점과 도서관에 들락거렸다. 책은 점점 <타이탄의 도구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같은 자기 계발서와 경제 관련 분야에서 <이방인>, <화씨 451>과 같은 문학으로 바뀌었다. 소설은 감정에 언어를 부여했다.


 특히 나를 매료시킨 것은 고전 문학이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그 가치를 보존하며 인류에게 잊히지 않은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읽어볼 가치는 충분했다.


고전이 삶 한가운데에서 피어났다.


 시간이 지나며 자랄수록 의문이 생겼다. 학교에서 실행하는 교육과 고전에서 말하고 있는 가치 사이에는 투명하고 커다란 막이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책을 읽으며 사색을 거듭하고 나온 배움에 대한 생각과 학교의 교육은 달랐다. 크나큰 괴리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교육받고 있는 것이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란 것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의 교육은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다.


 시험을 보고 등급을 매기는 것은 이제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은 등급에 가려져 개인으로 즉,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교육과정은 시험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에게 인간답게 사고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하는 교육과정이 목적이 아닌 시험이 목적인 것이다. 이런 시험도 대부분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글을 쓰거나 창작하는 시험이 아닌 암기한 것을 뱉어냄에 그치는 시험이다.


 학교는 답이 없는 것에 대해서 너무 박하다. 학생들의 진심과 생각을 묻는 평가는 잘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토론은 더더욱 이루어지지 않는다. 유일하게 토론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국어시간에는 한 주제를 놓고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가르는 찬반 토론을 한 것이 전부였다. 물론 찬반토론도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 자신과 다른 주장을 가진 상대를 논리적으로 설득시키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자신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반대의견도 공부해 볼 수 있다. 또 타인의 논리적인 설명에 설득당해 자신의 의견을 재정립하게 되는 것도 참 재밌는 순간이다. 하지만 내가 겪어온 초중고에서는 국어시간마다 매번 찬반토론만 진행하여 다른 토론이나 토의를 겪을 기회조차 없었다. 이러한 토론만 계속되다 보니 개인이 다양한 의견과 특성을 드러내기는커녕 이분법적 편 가르기에 묻혀 버리는 경우가 생겼다. 친구 중 한 명은 토론을 하면 싸워야 할 것 같아서 토론 시간이 무섭고 말하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우린 정의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아무도 토론을 즐기고 싶어도 같이 할 친구가 없었다. 아마 대부분 지금까지 학교에서 해 온 토론에 몸서리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결국 동지를 찾지 못해 유료 고전독서토론 모임에 참여해서 어른들과 토론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며 토론, 토의하는 문화가 일상에 자리매김한다면, 세대 간의 갈등이나 이유 없는 혐오가  조금은 잦아들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고전 추천의 문장들>

고전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간의 문제는 사실 거기서 거기이다. 시대가 변해도 비슷하게 지속되는 공통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기본 욕구가 변하지 않고, 여전히 인간은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인간군상과 시대상을 보며 인간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언어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미술작품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것이다. 고전문학의 문장들은 지금까지 읽어온 어떤 문장들보다 아름답다. 단어들이 섬세함의 극치를 달린다. 순식간에 글자를 음미하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와 문장, 말들과는 다른 깊이감이 있다.


무엇보다 고전은 재밌다! 

무척 어려울 때도 있지만 번뜩하며 이해하게 되는 순간도 존재한다. 이런 깨달음의 순간이 고전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게 만든다. 몹시 짜릿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고전도 어찌 되었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간이 쓴 것이니 인간이 읽을 수 있다. 별의별 인물들의 인생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다. 더군다나 나와 비슷한 고민,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을 마주한다면 훨씬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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