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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moon Oct 21. 2023

그림이라는 본능

마음의 표출


 그림은 하나의 본능이었다. 

생생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손에 연필을 쥐고 당당히 자신의 의지대로 표현하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그림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8살 때, 항상 그리던 그림이 있었다. 그 그림은 그 당시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던 '메이플 스토리' 만화책에 나오는 캐릭터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몇십 번씩 반복해서 읽어 어느새 내 안으로 흡수된 만화 캐릭터들은 이제 나의 손을 뚫고 다시 태어나고 싶어 했다. 이렇게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여전히 기존의 창작물을 신나게 감상한 후 내 식대로 해석해서 재창조하는 것이 즐겁다.) 


2013년에 나온 겨울왕국은 30번도 넘게 보며 나의 여왕과 그녀의 나라를 종이 위에 옮겼다. 캐릭터이긴 해도 눈을 그릴 때만큼은 도화지 위에 살아 숨 쉬는 여린 생명을 대하듯 섬세하고도 충실하게 임무를 완성했다. 

이렇게 집에 있을 때면 늘 만화를 끼고 살며 그 세계를 헤엄치는 캐릭터를 따라 그리는 것에 푹 빠져있었다. 

이 시기가 다름 아닌 아무런 걱정과 고민 없이 본능에 충실하여 그림을 그렸을 때였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 되었다. 주변의 자연과 머릿속 떠나는 몽상, 그동안 보아온 만화의 그림체가 한데 모여 기묘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냈다. 스케치북은 나의 행성이었으며, 그곳에서 세상을 군림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미술시간은 나에게 단비 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은 본능을 가둬두지 않아도 좋았으며, 아이들이 보내는 거룩한 눈빛에 기분 좋게 심취할 수 있었다. 이때 처음 내가 그린 그림이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도 있고 때때로 그들을 감동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며 미술수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지만 약간의 희망은 있었다. 디자인과 학생 필수 참여 방과 후로 색채와 디자인 공부에 연결시켜 그림을 그리는 수업이 있었다. 1학년때만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수업이었다. 혼자서 자유롭게 생각과 상상을 백지 위로 실현시키는 일을 즐겨왔지만 던져지는 주제에 맞춰서 고민해 보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날짜를 거듭할수록 쌓여가는 작품들을 지켜보며 뿌듯한 마음도 느꼈다. 


수업때 그린 그림들과 컬러리스트 산업기사 수업



 해가 바뀌고, 나를 둘러싼 것들도 많이 바뀌었다. 전공수업은 작년보다 훨씬 늘어났다. 

입을 닫고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며 앉아있는 순간들로 매일이 휘감겼다.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나에게 개성이란 게 존재하긴 했을까? 

왜 삶을 지속해야 하지?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도록 꽉 닫혀버린 환경과 그 한가운데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사고 속에서 허무주의적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깊숙이 나를 파고들며 정신을 헤집어 놓았다. 


영화 '경계선'을 보고 그린 그림



 수행평가와 시험기간이 지나가고 바쁜 나날들에 기가 빨려 손 놓고 있었던 그림을 다시 찾았다. 

그림을 그리니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잃어가던 나에게 그림은 삶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를 주는 행위이자 의지 그 자체였다.  


연필, 색연필, 수채화와 오일파스텔 등 원래 사용하던 재료 말고 다른 재료를 사용해서 그려보고 싶었다. 질식할 것 같은 일상을 새로움으로 환시킬 수 있도록 약간의 균열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래서 유화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유화와의 첫 만남

 첫날, 처음으로 유화 물감을 캔버스 위에 발라보았다. 처음에는 습작으로 원하는 작가 작품을 모작해 보기로 했다. 색채의 정수를 마음껏 느껴보고 싶어서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을 골랐다. 이 작품은 과감하고 화려한 색을 사용한 게 특징 같아 보였다. 그러나 나는 조금만 잘못 칠해도 그림이 망쳐질까 봐 무척 조심해서 색을 발랐다. 그때 미술 학원 선생님께서 거침없이 하고 싶은 대로 물감을 발라보라고 하셨다. 나중에 미술을 더 배우게 되면 오히려 안전하게 색을 쓰고 그리게 된다며,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시도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과감하게 색을 도포하려 노력했다. 손에 걸려있는 안정장치를 풀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일기의 일부분


하지만 지금껏 안전한 삶을 추구하고,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에 충실한 믿음을 가지며 안온하게만 살려하지 않았는가? 


나에게 걸려 있던 안정장치는 생각보다 견고했다. 그게 한방에 벗겨질 리가 없었다. 그동안 남들 눈치를 쓸데없이 많이 보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오기가 생겼다. 날것 그대로의 '나'는 대체 무엇인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인생 첫 모작


 유화 작업을 할 때는 본작업에 들어가기 전 밑 칠을 하는 단계가 있다. 밑 칠을 함으로써 물감의 발색을 높이고 그림을 쌓아 올린다는 느낌으로 견고하게 만들 수 있다. 직접 해보니 밑 칠을 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웠다.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영상을 보면 쉽고 빠르게 끝내던데, 나는 3시간 동안 밑칠만 했다. 계속 색만 칠하다 보니 이제는 또 어떤 색을 조색해서 바르면 좋을지 고민되었다. 작품에 쓰인 색이 워낙 많다 보니 색을 만드는 데도 꽤 애를 먹었다. 유화 물감의 기름 가득한 물성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 생각처럼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 


 그래도 나이프로 유화 물감을 듬뿍 떠서 팔레트 위에 올리는 게 참 재밌었다. 주위가 조용해지면 ASMR처럼 들려오는 소리도 좋았다. 흰 캔버스를 물감이 가득 뭍은 붓으로 전과는 다르게 변신시키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붓으로 열심히 물감을 문지를 때면 묘한 쾌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거칠게 물감을 바르다 보면 잿빛이던 마음에도 생기가 돌았다.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현재 하는 행동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림이 눈앞에 있었고, 정신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그림 앞에 있었다.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작품을 만드는 일은 나에게 힘을 주었다. 그 힘은 바로 의지였다. 생기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 생기 넘치는 표정을 짓고 싶다는 의지, 생기를 담고 있는 무언가를 창작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전에는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것과, 새로운 감각이 몸속에서 고요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호수에 돌을 던진 것 마냥 마음이 무언가로 차올랐다. 


혼란스럽게 날뛰던 상념들이 돌들에 의해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아예 없어진 건 아니었다. 언제든지 불안함이 밀려올 때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허무의 늪에 빠져 무력감만을 느끼던 육체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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