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계고등학교와 청소년 노동 현장
어떤 영화는 예고편에서부터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아 몸을 자연스레 극장으로 이끌어당긴다. 나에게는 영화 '다음소희'가 그랬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광고로 예고편이 나왔는데 평소 같으면 재생시간이 지나면 넘겼을 광고를 도통 넘기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넘길 수 없었다. 그건 단순한 영화 예고편이 아니라 나와 친구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끌림을 참을 수 없어 같은 고등학교 선배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 잡고, 곧장 티켓을 예매했다.
<다음 소희>는 전주에서 일어난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열여덟 살 특성화고등학교 학생 '소희'는 학교의 방침에 따라 대기업 하청업체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다. 영화는 소희가 현장실습에 나가며 겪게 되는 사건과 대우,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한 소녀가 저수지에 스스로 몸을 던지기까지,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소희는 계약한 월급보다 적은 돈을 받고, 폭언과 성희롱을 견디며 연장근무에 시달린다. 학교 선생님은 소희를 회사로 부추긴 장본인이지만 정작 회사에 대해 잘 몰랐다.
'소희의 춤'
영화 속 계속해서 등장하는 춤은 소희가 일하기 직전부터 해온 행위였다. 몸을 스스로 조절해 가며 춤을 추는 모습에서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동작을 취할 때마다 생명력이 잔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품의 시작과 엔딩에 자리 잡은 춤추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쩌면 춤을 출 때 가장 자신으로서 온전히 살아있을 수 있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소희가 마지막으로 춤 연습실에서 나오며 올려다본 자줏빛 하늘에서는 새하얗고도 연약한 눈이 밤의 차분함을 도화지 삼아 흩뿌려지고 있었다. 찬란하고 자유롭게 휘날리다가 미련 없이 녹아 없어져 버리는 눈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소희의 미묘한 표정과 눈빛을 잊을 수 없다.
핸드폰 속 모든 연락처와 사진들을 지웠지만 춤추는 영상만큼은 지우지 않은 것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 직전까지 소희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삶을 향한 불씨 같은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 조절 못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소희의 감정에 깊게 동화되었으며 연민대신 공감을 느꼈다. 누군가 가슴 한편을 돌덩이로 막 짓누르는 것 같았다.
하나의 강렬한 체험을 한 듯 깊이 몰입한 영화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이 영화를 대답에 포함시시키고 싶다. 심도 있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나 자신도 마이스터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며 평소 교육기관이 가져야 할 본질적인 역할에 대해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직업계고등학교
특성화고등학교와 마이스터고등학교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마이스터고등학교는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학교로 특성화고등학교와 달리 학생 대부분이 대학 입학보다 취업을 한다. 일반계 고등학교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교육을 실시하는 반면 특수목적 고등학교에 포함되는 마이스터고는 취업을 목표로 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과정이 전공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수시 전형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학 입학을 희망한다면 먼저 회사에 3년 다니고 재직자 특별전형을 지원하거나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조기취업형 계약학과, 정원 외 특별전형으로 대학별 모집단위를 별도 설치하는 프라임 칼리지 등 선취업 후학습 제도를 잘 살펴보고 그 조건에 맞게 지원해야 한다.
이렇게 분명한 차이가 있는 두 고등학교이지만, 확연하게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현장실습'이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제7조(현장실습)에는 <직업교육훈련생은 직업교육훈련과정을 이수하는 중에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받아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학생들이 취업하기 전에 기업 현장에 투입되어서 해당 분야의 실무 역량을 기르는 교육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학생들이 추후 실제 노동 현장에 잘 적응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편한 긍정적인 목적을 가졌지만 소희처럼 학교와 업체 측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경우 학생 개인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채로 온전히 그 몫과 책임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학교는 일단 나가기 급급한 수업 진도와 취업률에만 집중하며 되려 가장 주의 깊게 대해야 할 학생들의 마음에는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남몰래 혼자 우는 일이 없도록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동법을 비롯한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방법을 최대한 가르쳐주어야 한다.
사회에 나가 정당한 분배와 몫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으려면 학교에서 이에 관한 실용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입시 걱정만큼이나 취업 걱정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 대학 입시 제도뿐만 아니라 청소년이 바로 노동현장에 투입되는 교육제도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우리 곁에는 다양한 청소년들이 존재하니까.
고등학교라는 교육기관이 저마다의 개성과 생각을 가진 다양한 청소년들을 골고루 담아낼 수 있는 모양의 그릇이면 좋겠다. 너무 반듯하기만 하다면 그곳에 몸을 담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형태를 변형해서 억지로 그릇에 짜 맞춰져야 할 것이다.
영화는 차가운 현실로 덤덤했지만 적막하지는 않았다. 분명 소희는 주위와 세상에게 외쳤다. 자신이 그 상태에서 낼 수 있는 최선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내었다. 소희의 외침은 숨 막힐 듯 침묵하던 강물에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 이 돌멩이는 크나큰 파도는 일으킬 수 없었지만 적막을 부수고 주위로 파동을 일으켰다. 파동은 조용했지만 그곳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는 닿았다. 이 작지만 호소력 가득한 울림이 많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현장에서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지만 묵묵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러 주었다.